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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포레relifore Sep 07. 2021

30대에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이유

어쩌다, 무작정 아이랑 전원주택 라이프의 시작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이유?




저희 동네 전원주택 마을엔 12가구 정도 있는데 다들 이사온 지는 3년 정도, 나잇대는 50대시더라고요.


저희 부부처럼 30대에 전원주택에 사시는 분은 없고요. 이건 다른 곳도 거의 비슷 하더라고요.


음...

그렇죠. 사실 병원, 마트, 유치원, 학교가 밀집된 도시, 아파트가 편리해요.

저도 쭉, 그렇게 살았고요.


그런데 왜 갑자기 계획에도 없던 전원주택에 이사를 왔을까요?


보통 랜선 상에서 본 30대 부부의 전원주택 이사 이유는 건강, 가치관, 교육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희는 그 중에서 아이들의 건강 때문에 이사를 오게 됐어요.(가치관과 교육관도 비슷하긴 하지만, 이런 결정을 당장 내릴 만큼 큰 것은 아니었거든요.)


이제는 담담하게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칠흑과도 같은 어둠 속에서 집을 구했던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올해 1월 처음으로 내 집 장만을 하고 예쁘게 리모델링해서 들어간 아파트에서, 이사간 지 한 달도 안되어 다시 전원주택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이사 가자마자 이사를 준비하다니 아이러니죠.) 결혼 후 쭉 살고 있던 동네의 아파트고 너무나 상권이 밀집된 편리한 동네였지만, 공단의 한가운데에 있어서 공기가 안 좋았어요. 미세먼지가 없어 창문을 열어도 매캐한 냄새가 나서 창문을 닫기 일쑤였죠. 주변 분들은 그런 냄새를 잘 모르겠다는 분들도 많았지만, 저는 예민해서 그런지 가끔 새벽에 창문을 열고 자면 목이 칼칼해서 깬 적도 있을 만큼 일상 속에서 느끼고 있었습니다.(그 냄새에 머리가 아플 때마다 다음엔 이 동네를 떠나야지, 했지만 근거리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일상의 편리함을 버리긴 힘들더라고요.)


그런 이유 때문만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첫찌는 4~5살 이후쯤부터는 편도염으로 한달에 한 번씩 열이 올랐어요.(그때는 어린이집 단체 생활때문에 어쩔 수 없구나,라고만 생각을 했었네요.) 입원도 세 번 했었고, 주치의와도 같은 소아과 의사 선생님은 이 정도로 자주 편도염이 고열로 오면 제거 수술을 결심해야 한다는 말씀도 해주실 정도였습니다. 열이 시작되고 먹는 약은 끝나려면 한달에 2주 이상 먹게 되었던 것 같아요.(항생제에 소염제까지요.)


둘찌는 6개월쯤 시작된 아토피, 돌이 지나며 아토피는 끝나갔지만(약한 스테로이드 연고를 의사선생님과 상의하에 발랐어요.) 밀가루, 우유, 계란, 땅콩 알러지도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다 18개월쯤에는 자가면역질환 중에 하나인 탈모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13개월쯤부터 숭숭 빠져서 배냇머리가 늦게 빠지는 줄로만 알았는데, 대학병원까지 가 보니 자가면역질환인 원형탈모 종류라고 하더라고요. 그 중에서도 만명에 한명 정도 걸린다는 전두탈모라네요. 절망적인 것은 어릴 때 발병할 수록 치료 예후도 안 좋고 재발률도 잦다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그 부분에 딱 맞는 치료 방법도 없더라고요. 너무 어려서 쓸 수 있는 약도 적고.


남편은 빠박이가 되니 신생아처럼 귀엽다라며 아이가 아픈 병이 아니라 다행이다,라고 다독였지만,


그때의 저는 반짝반짝하는 새 집에서 진짜 아이러니하게 제일 암흑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그 동안도 여러가지 인생의 쓴맛을 봐왔다고 자부하며 살았었는데 내 자식에 관한 고통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저 병을 제가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평소에 잘 하지도 않던 기도를 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시절은 정말,

요즘 즐겨 듣는 BTS 가사처럼,



어느 날 세상이 멈췄어.
아무런 예고도 하나 없이.




딱, 그랬습니다.

결국, 저희 부부는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일단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좋은 음식 위주로 먹여보자.

비단 아이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이 무렵, 도시에서의 생활에 제가 제일 지쳤거든요. 도시를 제일 좋아하던 저인데 말이죠. 평범하고 일반적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자 따가운 시선들이 느껴지더군요. 지나가다 아이를 힐끔보는 시선들,


머리를 왜 저렇게 잘랐대?, 하는 쉬운 말들에

움츠러들고,

어느 순간은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잔뜩 세우고 있었어요.


아무튼 기적처럼 며칠 만에 딱, 원하는 집을 발견하고 이사를 했습니다. 아파트로 이사간 지 두달도 안 되어서 말이예요.




자연에서
마음치유
시작



초봄, 쌀쌀한 날씨에도 해가 잘 들어 낮에 따뜻했던 우리집. 얼어붙은 마음을 햇빛이, 나무가, 바람이, 새소리가 조금씩 녹여주더라고요.


아이들은 마당냥이 까망이랑 놀고,

우리 부부는 마당에서 커피 한 잔을 하며,

여행하듯 하루하루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전원주택 입성 둘째날의 몇 가지 느낌을 인스타그램에서 옮겨 봅니다.



1. 전에 살던 아파트 창문을 열면 왕복 6차선 도로에 차 다니는 소리 뿐이었는데 이곳에선 바람 부는 소리가 들린다. 특히 밤에 조용하다. 고요하다는 말이 이런거구나.


2.진짜 깜깜해서 별이 잘 보인다. 도시의 빛 공해가 이리도 심했다니.


3.아침에 아이들과 산책을 하면 옆집 앞집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아파트에선 제대로 소통하던 이웃이 없어서 익숙치 않지만 좋은 동네라며, 이사온 것 환영한다는 소리에 기분이 따뜻해진다.


4.앞에 닭을 키우시는 아주머니가 방금 낳은 달걀을 꺼내 주셨다. 방금 낳은 달걀은 따뜻했다.


5.아이들은 마당에 자주오는 동네 고양이들, 지저귀는 새들 보며 좋아하고 땅을 파고, 사방치기를 하고, 근처 시냇가에 돌을 던지고 논다. 아파트에선 유투브, TV만 봤었는데


6.특히 요즘같은 코로나 시국에 마스크 안 쓰고 나갈 작은 마당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7.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정말 좋은 것이었구나.(하지만 늘 나만의 주차 자리가 있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8개월
살아본
후기


일단, 진짜 좋은 건 아이들 건강입니다.

그렇게 한달에 한 번은 꼭 편도염으로 열이 나던 큰찌는 8개월 동안 한 번도 열이 나지 않았어요.

둘찌는 여름이 지난 후 부터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했고요.

두번째로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요.

새소리, 바람소리, 꽃과 나무, 나비, 고양이 같은 자연에서 조금씩 상처받은 마음들이 치유 됩니다. 아이들은 흙을 만지고, 고양이랑 놀고, 나비를 찾아 다니며 자연과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저렇게 큰찌랑 냉동실에 쟁여놓은 아이스크림 하나씩 가지고 마당에서 먹으면 피로가 살살 녹습니다.


맨날 하던 그림그리기도 마당에서 하면 더 색과 주제가 다채로워집니다.


동네 한 바퀴 걸으면 여기가 우리 가족만의 산책로가 되죠.


달이 진짜 크고 밝은 날 밤엔 마당에서 한참을 쳐다봤습니다.


주말엔 데크에 캠핑의자를 펴고 앉아 멍을 때려 봅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평소에 먹던 빵과 커피도 마당에서 먹으면 어디 카페에 브런치 먹으러 온 것 같고요.


길던 이번 장맛비도 마당에서 보면 진짜 운치 있었어요.





이곳에서의
8개월



이 집을 찾은 것을

남편과 저는

진짜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진짜 좋은 집,

진짜 좋은 숲,

진짜 좋은 이웃,

진짜 좋은 고양이들을 만나


소소한 행복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찾아와도

삶은 계속되죠.

그래서 인생이 힘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그 문제는

가끔은 무시해 버리고,

가끔은 다른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힘들 때는

그냥 멀리 보려고 하지말고

당장의 오늘을 열심히, 묵묵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 곳에서

배웠습니다.


높은 산을 올라갈 때

당장의 발 밑만 보고 걸음을 내딛으면

언젠가는 정상에 도착하고

또 내려갈 일이 있는 것 처럼요.


이 긴 글을

어떻게 끝을 맺을까 하다가 감명깊게 보았던

'눈이부시게'의 명대사로 마무리 할까 합니다. 지금의 저한테도 해주고 싶은 말이예요.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2020.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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