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일상도 해방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일요일, 창 밖의 새소리를 들으며 둘째 낮잠을 재우고 있는데 문득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생각이 났습니다.
창문으로 달이 뜨는 집은 동화 속에나 있는 줄 알았다던 구씨의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이곳이 해방일지에서 구씨가 말하는 곳이랑 비슷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문으로 달이 환하고, 도시와 다르게 배달 오토바이, 차와 지나가는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밤.
고양이 소리, 아주 가끔 고라니 소리, 여름에는 개구리 소리, 가을에는 귀뚜라미 소리만 가득 한 밤.
가로등 하나가 달빛을 방해할 정도로 밝게 느껴지는 시골.
구씨가 어쩌다 살게된, 치유를 받는 곳과 비슷한 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15화에서 구씨와 미정의 대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왔습니다.
편하지,
나무 바람 돌은 우릴 거슬리게 하지 않잖아.
사람들 많은데서는 이상하게 신경이 곤두서.
커피숍 옆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도 거슬려.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앉아만 있는데.
그 대화가 참 공감이 되더라고요.
진짜 정원에 생각없이 씨앗을 뿌려도, 아무 곳에서 피어나는 꽃이 거슬리지 않습니다. 콘크리트로 지은 네모난 집 안에 걸린 시계나 액자는 조금만 비뚤어져도 신경이 쓰이는 데 말이죠.
도망치듯 도시를 떠나와서 시골에서 치유를 받았던 내 삶이 사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속 구씨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드라마 속 구씨의 거친 삶과 강약은 다를지라도 그냥 도시를 떠날 때의 그 삶의 버거움이 그랬거든요. 삶에 지친 사람들은 한 번씩 느꼈겠지만, 저에게도 지나가는 사람 하나 하나가 거슬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냥 부는 바람에서, 지천에 보이는 녹색에서, 흙냄새에서 그렇게 천천히 나아져서 이젠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요.
맨날 시골에서 살던 삼남매는 산포가 지긋지긋 했겠지만(미정이는 상대적으로 덜 했을지도 모르지만), 드라마 후반에서 느낀 그들의 삶의 뿌리가 척박한 흙에서 자라는 강인한 잡초의 그것과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잘 몰랐겠지만, 그들의 뿌리가 땅 속에서 길게 단단하게 뻗어 있어서 어떤 아픔이나 슬픔을 겪어도 와르르 무너져 버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하게 달이 창에 가득 들어차고 나무와 바람, 초록초록한 생명들이 지천에 널린 곳에서 자라난 삼남매라서 그랬겠죠. 그냥 그들의 일상이 참 멋지고 대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삼남매의 가장 큰 뿌리는 일상의 반복되는 삶을 묵묵히 견디며, 티나지 않게 그들을 서포트 해준 부모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것이겠죠. 그런데 이미 잘 알고 있는 그 삶을 돋보기로 확대해서 보듯 찬찬히 들여다보자니 너무 슬픈 감정이 찾아오는 겁니다. 느릿느릿한 시각으로 부모님의 아무 이벤트 없는 반복되는 일상을 표현하는 드라마는 사실 잘 없으니까요. 우리네 삶에서 부모님의 희생이나 노력은 너무 잘 알아서 어쩌면 가끔은 모른 척 하고 싶은, 들여다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일텐데, 자세히 또 천천히 들여다보니 감사함을 넘어선 먹먹함이 한동안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런데 또 그 끝은 어떤가요?
죽음으로 반복되는 일상에서 해방을 맞는 어머니와 병으로 일에서 해방이 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니, 삶이 다 그런거라고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한 번 더 상처에 소독을 하듯 쓰라린 기분을 느꼈습니다. 이 작가님의 전작에서 나온 대사처럼 이 분들도 끝에는 편안함에 이르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전 장면에서 나왔던 부모님의 일탈 아닌 일탈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더군요.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낮에 집이나 밭에서 있지 않고, 깔끔한 정장차림으로 큰 딸의 남자친구를 보러 가던 어머니의 모습과 신경쓰이게 하는 외제차를 추월하던, 처음으로 격한 감정선을 보이던 아버지의 모습.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부모님의 일상이 계속 그려져서 드라마 속에서라도 두 사람의 일탈이라는 게 참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탈의 끝이 행복감이 아닐지라도 사람이라면 가끔 일탈이 필요한 것 같아요.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서 잠깐이나마 후련하고, 내 속에 이런 내가 있구나, 하는 감정이 느껴지는 시간 말이죠.
그래서 일요일 낮에 저도 잠깐 일탈을 했습니다.
남편하고 애들이 잠깐 없던(이것부터가 일탈의 요건에 불충분할지라도) 낮 시간에 나의 해방일지를 거실 커다란 TV에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며, 컵라면을 먹는 일 말이죠!
이 정도가 일탈이냐고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요즘의 저에게는 굉장한 일탈이었어요.
일단 거실 TV로는 아직 아이들이 어려 어른들의 드라마를 트는 일이 거의 없어요. 아무래도 거친 대사나 잔인한 장면 등이 나올 때가 있어서 그런 장면에 대한 시청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함인데요. 어쩌다 보니 그게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화질 좋은 커다란 TV를 온전히 제가 즐기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 갑자기 슬프게 느껴져서 오늘은 소리마저 크게 드라마를 틀어버렸어요. 그런데 그 속에서 나온 주인공들이, 아무래도 드라마가 결말로 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뭔가 편안해지고 해방을 느끼게 되는 모습에 갑자기 동요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맥주를 따고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는 것으로 다음 일탈을 이어갔습니다. 컵라면은 일단 알러지가 많은 둘째때문에 집에서 거의 즐기지 못하는 식품이 되어, 또 하나의 일탈 거리가 되었고, 주말이라고 할 지라도 낮에 맥주를 먹는 일도 저에게 거의 없는 일이라 이 자체가 참 신선하게 느껴지더라고요.
10여년 전에 유럽에 갔을 때 평일 낮에 밥을 먹으러 간 가게에서 사람들이 정장 차림으로 가볍게 맥주 한 잔을 즐기는 상황이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어요. 일하다가 점심시간에 나온 사람들 같았는데 맥주를 이 시간에 먹어도 되는 걸까?, 라고 혼자서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우리는 운전과 일터로 갈 필요가 없는 여행자였기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가게 안에 우리처럼 낮에 맥주를 마시는 팀들이 대부분이라 신기했던 데다가, 그들의 표정이 꽤 유쾌해 보여서 신선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낮맥의 자유를 그 이후로 꽤 오래 가져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임신과 출산, 육아를 반복하며 어쨌든 낮에는 아이들을 돌볼 일이 많아서 조금이라도 술이 들어가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저의 FM적인 성향과 언제든 운전을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등이 저를 이렇게 옭아맸던 것이죠.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지만,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세 가지 일탈 아닌 일탈을 해 보았습니다.
막상 잘 하지 않던 일을 세 가지나 해 보니까 되게 후련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드라마 속에서 외제차를 추월했던 아버지와 나 이제 일 더 못해요 하고 정장차림으로 혼자 낮에 외식(티나지 않게 큰 딸의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한 방법이었지만)을 했던 어머니의 그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틀에 박힌 부모의 삶을 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일탈 아닌 일탈일지라도, 나만의 일탈을 해보자, 라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그냥 순간 참 시원한 그 기분이, 속이 탁 트인 것 마냥 후련하더라고요.
오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끝이 납니다.
벌써부터 기대 반, 그들과 헤어져야만 한다는 아쉬움 반이 찾아오는데요. 그들이 해방으로 가는 여정에 함께 했다는 것 만으로도 그동안 참 기쁜(조금은 감정적으로 힘든)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아직 결과를 모르니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해방을 위한 파이팅을 보내며,
오늘처럼 저의 해방을 위한 일들을 조금씩 해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