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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정수에 다가가다.

(나이 드는 것의 장점)

by 몬스테라

요즘 내 휴대폰 앨범은 꽃 사진으로 가득하다.

그림도 꽃 그림을 자주 그린다.

화면 캡처 2022-05-21 150714.png

동네에서도 일터 근처에서도 예쁜 꽃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게 된다.

쪼그려 앉아서 들꽃을 보기도 하고

애매한 높이에 있는 꽃을 찍기 위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꽃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나이가 든 증거라던데.

어차피 꽃 사진 안 찍어도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는 충분하니 억울하지 않다.

나이가 들면 꽃 사진만 찍게 되는 건 아니고 여러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


1. 삶의 정수에 몰입

(- 족보에도 없는 운동을 하는 것에 대한 이해)

아침에 아파트 거실에서 밖을 내려다보면 늘 비슷한 자리에서 운동하시는 어머님 아버님들이 보인다.

나는 주로 스쿼트를 하면서 밖을 보는데,

그분들의 맨손체조? 스트레칭?을 보면 웃음이 나서 자세가 무너지곤 했다.


하루는 독수리가 날개를 활짝 펴듯 팔을 펴고는 허리를 90도로 구부렸다 폈다 하는 것이다.

퍼득퍼득 거리면서. 날갯짓은 일정하고 엄숙했다.

그런 날갯짓 이외에도 온몸을 야시꾸리하게 배배 꼬는 운동도 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그걸 따라 해 보았다.

독수리가 날아오르듯 시동을 걸고 큰 날갯짓으로 퍼덕이며 상체를 접었다 폈다했다.

아.. 이것은 러너스 하이 이상의 무언가를 주었다.


이 근본도 없는 몸짓은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하여 유산소 느낌을 줌과 동시에

하체를 강하게 지탱하여 근력운동도 되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새가 나는 듯 명상효과와 마음의 평온까지 느껴졌다.


꽈배기처럼 배배 꼬거나 몸을 꿀렁거리며

예측하기 어려운 동작들을 정적으로 연결시키는 운동

평소 쓰지 않는 근육을 자극하여

피로를 풀고 스트레칭 효과가 있는 느낌이었다.

야생의 필라테스 같은 느낌.




나는 이 두 운동을 각 '이글 플라이'와 '바디 트위스트'로 이름 짓고 은밀히 따라 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예전에는 앞뒤로 손을 손뼉 치거나 뒤로 가는 어르신들, 특이한 동작으로 몸을 푸시는 분들 보면

풋. 했는데 지금은 그게 삶의 정수에 다가가 있는 몸짓처럼 느껴진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내 근육을 푸는 것과 편안함만 추구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논다는 것에 대한 의미 재정립

예전에 80대 노인분을 국선 변호한 적이 있었다.

그분은 산을 가지고 있는데, 지인이 산에 흙을 좀 퍼가도 되겠냐고 물어서

호의로 그래라고 했다가 '산지관리법'으로 재판받게 되었다.

자신의 산이라도 허가받지 않고 산에 변형을 가하거나 훼손행위를 하면 안 되는데,

잘 모르고 하신 것이다.


이 분과 상담 약속이 오후 3시에 있었는데 이 분이 1시에 도착하셨다.

나는 3시 이전에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상담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두 시간 뒤에 다시 오시라고 했다.


두 시간 뒤,

"두 시간 동안 힘드셨지요? 두 시간 동안 뭐 하셨어요?"

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노인분이

놀았지.

라고 대답했다.


법원, 검찰청 근처에 놀데가 어디 있나?

근처에 친구가 있었냐고 물으니 없다고 하셨다.

맛집에 가서 맛있는 것을 드셨냐고 하니

그냥 집에서 싸 온 계란을 까먹고 사과를 먹었다고 하셨다.

그럼 *튜브 같은 거 보면서 어디 앉아 계셨냐고 하니 아니란다.


우리 사무실 바로 옆에 나무가 예쁜 곳 아래 벤치에 앉아서 두 시간 동안 계셨다고 한다.

거기서 아이들 노는 것도 바라보고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날씨가 좋아서 하늘도 보고 그러고 있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다.



그게 어떻게 노는 거지?


나는 놀기로 약속하면 맛있는 것 어떤 것을 먹을지 어디에 갈지 등 계획을 짠다.

최대한 잘 놀고 무언가를 경험하려고 했다.

신나야 하고 맛있어야 하고..

그래선지 노는 날은 자주 오지 않았다.

놀 기회와 노는 날은 늘 부족했다.

놀지도 못하고 산다는 느낌에 때로 억울하고, 늘 노는 것을 갈망했다.


그러다 정작 놀면, 노는 것이 노동이 되는 결과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놀았지."라는 말이 이해되는 날이 내게도 왔다.


사소하고 작고 평범한 것들만으로도 내가 채워지는 날이 온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정보다는 내 마음의 평온이 더 중요해지고,

추앙받지 못해도 채워지는.


이젠 자극적인 재미가 없어도. 누가 옆에 없어도.

날씨만 좋아도. 예쁜 꽃과 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이 있으면 더더욱 좋고.

걷기에 좋은 곳이나 앉기에 좋은 곳이 있으면.

혹은 산책하거나 재래시장을 걸을 때에도

놀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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