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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May 30. 2022

천천히 가더라도

나의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아들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들이 미술시간에 가위로 같은 반 친구 지우(가명) 가방 끈을 잘랐다는 것이다.


친구가 자신의 가방을 가위질하면

가방 주인인 피해 친구는 슬프고 화가 났을 것 같고

그 친구의 엄마는 아이의 학교생활이 걱정되고 속상했을 것 같다.


당연히 사과는 해야겠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진심으로 미안하고 나도 슬펐지만

가방을 다시 사준다는 것은 이 일을 가볍게 여긴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고..

대체 어떻게 사과해야 옳을지 망설이다가


그냥 마음에 있는 대로 사과의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이런 답이 왔다.


지우 동생에게 장애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런 상황을 자주 겪어요.
얼마나 미안할지 이해합니다.


이런저런 일로 지친 퇴근길에 터덜터덜 걷다가 문자를 확인하고는 울컥했었다.


이 일만큼은 커지지 않고 있구나.. 하는 위안도 느꼈다.



아들과 지우는 그 이후 단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이

같은 학교를 6년째 다녔다.

그런데 둘은 절친한 친구가 되어

몇 년간 매일 아침 학교에 같이 갔고,

지우는 주말에 종종 우리 집에 와서 게임도 함께 했다.


얼마 전 아들이 지우에게 쓴 편지를 보았다.

전학을 앞두고 쓴 편지였다.

"모두가 나를 무시할 때 나에게 잘해주고 놀아줘서 고마워. 사랑해."


아들은 나를 닮았다.


나도 초등학교 생활이 힘들었다.

온통 왜 하는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체육시간에 허들 넘기 달리기(장애물 달리기)를 하면 달리다가 허들 앞에서 멈춰 섰다.

발에 걸려서 넘어질까 봐 무서웠고

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한 번도 그걸 넘지 못했고

허들을 넘지 못하는 것처럼

실과시간에도 요리와 바느질을 못하고

과학시간에는 알코올에 불을 붙이지 못해서 친구에게 성냥을 낚아 채이고

그림도 못 그리고 리코더도 못 불고 노래도 못 부르고

놀이규칙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글쓰기도 못하고 무엇이든지 다 못하거나 어리바리했다.


그런 나를 어른들은 답답해하고 혼을 냈다.

중요한 건 태도와 의지라면서.



나는 눈치도 없고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잘 못 따라가는 느린 아이였지만

결국은 어린 바보가 어른 바보가 되고 말 것이라는 주변의 예상을 깨고

밥벌이도 하고 아이도 키우면서 살고 있다.

허들은 넘지 못했지만 더 심한 인생의 장애물도 넘었고

100미터 달리기에서 너무 느려서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한라산을 등반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발톱 2개가 빠졌지만

묵묵히 등반을 마쳤다.


적응 측면에서는

초등학교보다 중학교가,

중학교보다는 고등학교가,

고등학교보다는 대학교가,

대학교보다는 사법연수원이 조금 더 수월했다.

그것은 나와 함께 할 사람들도 점점 더 자랐으며

나이가 들수록

타인에게 적절히 무관심해지고 자기 인생에 더 신경 썼기 때문이기도 했고.


나도 느리지만 결국엔 자랐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더 감당해야 할 일이 있지만

허들은 안 넘어도 되고 리코더도 안 불어도 되고

실전 어른의 생활에는 내가 꽤 경쟁력 있는 부분도 있었다.


아들은 나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옮긴 듯

느리고 특이하고..

아들이 지금은 친구들과 잘 지내지만

서러운 시절이 길었다.


나의 아들은 곧 지우와 헤어진다.

전학 날짜가 정해졌다.

사실 나는 내 생애 통틀어 나에게 잘해주었던

모든 사람들보다 더

지우에게 감사한다.

아들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늘 지우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지우와 우리 집에서 놀 수 없겠는지 물어보았다.


근황 얘기를 하다 보니

지우 엄마는 지금 둘째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했다.


발달장애가 있는 둘째도 형아와 함께 크고 있었다.


나는 발달장애인들이

천천히 가더라도 우리와 함께 갈 수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가족에게 맡기기보다는

국가와 사회가 함께 돌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그러한 취지의 글을 여러 곳에 기고하기도 했고

이번 달에는 모 연구회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는데..


취지는 좋지만

그건 그거고

나는 또 산만하고..


집중이 너무 안되어서 준비하기 어려웠다가

오늘 지우 엄마와 연락하면서 다시 힘을 얻었다.


정말 부모 형제가 없어도,

극단적인 고통을 받지 않아도

발달장애인이 국가와 사회로부터 존중받으면서

돌봄 받을 수 있을까요.


정말 그런 세상이 올까요.


지우 엄마의 메시지에 답했다.


네.


나는 정치인도 아니고 아무런 힘이 없지만

그래도 느리지만 함께 가자고

천천히 가더라도 함께 가고

너무 힘들 때 조금 나누자고 목소리를 내는 일을 멈추지 않고 싶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우가 성인이 되었을 때

동생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동생을 부양해야 해서

결혼하기 쉽지 않다고 말하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도록 하고 싶다.




해바라기를 키워본 적이 있다.

어두운 곳에 화분을 두어도

해바라기는 밝은  해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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