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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n 05. 2020

어떤 생일

(생일 축하한다는 말, 들어본 적 없는데요?)

 

나는 어느 날 국선변호인으로, 구속되어 있는 정신장애인 사건을 맡게 되었다. 나와 나이가 같은 여자였다. 사건 내용은 기차역 근처에서 주운 신용카드로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 먹었다는 것이다.    


기록을 보니 피고인은 정신장애 1급, 하지신체장애 1급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피고인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학대했다.


 피고인은 성인이 된 이후에는 주로 노숙을 하면서 살았다.         

피고인은 나에게 잘못한 다 인정 할 테니, 빨리 내 보내달라고 했다. 같은 정신장애인이자 노숙자인 남자친구 동욱이가 기다린다고. 피고인은 비슷한 잘못으로 집행유예기간이었기 때문에 징역형이 선고되어 나갈 수 없을 가능성이 컸다.    


사건 기록에 있는 피고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유심히 보니 피고인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체 언제 나갈 수 있는 거냐고 묻는 피고인에게, 아무래도 이번 생일은 지나야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피고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생일요?”    


나는 피고인이 그렇게 뻥 찐 표정을 짓는 게 이상해서 “실제 생일하고 주민등록상 생일하고 다른가 봐요? 난 또 주민등록번호에 있는 이 날이 실제 생일인줄 알고..”라고 했다.

“뭐라고요? 실제 생일요???

“정임씨(가명) 집에서 생일 축하하는 날 있잖아요, 미역국 끓여 먹고 막 그런 날이 몇월 몇일이에요?”

그러자 피고인이

“생일 축하한다는 말 들어본 적 없는데요?”라고 했다.    


피고인은 왜 태어났냐는 말은 들었어도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살면서 들어본 적도 없고 케이크를 먹은 적도 없단다. 미역국은 무료급식소에서 나오는 날 먹는 거라고 했다.    


그런 질문을 해서 피고인에게 미안했다. 나는 생일을 앞 둔 피고인에게 먹을 것이라도 넣어주고 싶어서 생일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넣어 주겠다고 했다(구치소에서는 몇 가지 과자를 구입할 수 있다). 피고인은 오감자를 꼭 먹고 싶다고 했다. 피고인에게 오감자가 있으면 넣어주겠다고 약속하고 구치소 민원실 구매물품 넣는 곳으로 가보니 오감자는 없었다.   

 

대신 다른 과자를 넣어주고 며칠 뒤 재판에 나갔다. 재판장님은 재판하는 날 이틀 뒤로 선고기일을 잡으셨다. 나중에 선고결과를 보니 미소가 지어졌다. 결과는 벌금300만원이었다.


 구치소에 구금되어 있는 기간을  1일 10만원으로 계산해서 벌금형에서 공제하는데, 피고인이 선고받던 날은 구속된지 30일째였다. 그래서 피고인은 그 날 석방되었다.    

    

정임씨는 이번 생일에 남자친구와 오감자를 먹으면서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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