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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Nov 28. 2020

법정에서 울다.

내가 구치소로 접견을 갈 때마다 우는 피고인이 있다.

그와 오랜 시간 마주 앉아 있어도 그말하는 일은 드물다. 그가 끊임없이 울고 말을 잇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무기력해서이기도 하다. 그의 절망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는 평범한 30대 가장이다. 부모님 없이 누나와 함께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경북의 한 소도시에서 용접일을 하고 살았다.


그는 필리핀인 여성과 결혼했다. 그 여성에게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은 필리핀에 있었다. 그는 부인의 필리핀 딸도 자신의 딸로 생각하며 필리핀으로 생활비와 학비를 보냈다. 그리고 피고인은 부인과의 사이에서 두 아이를 낳았고, 올해 큰 아이가 5살, 작은 아이가 2살이 되었다.    


필리핀인 부인이 한국말을 하지 못하고 주변에 필리핀인이 없어서 우울증을 겪자 그는 부인을 위해 다문화가정이 많은 경기도의 한 동네로 이사를 하면서 일자리를 그만두게 되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으나 코로나로 금방 잃게 되었다.

   

일용직도 하고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고 가족을 부양하던 중 그는 아르바이트 광고를 보게 되었다.


고수익 알바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면접을 보았고,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 증명서를 제출하여 일자리를 얻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두 팀으로 나누어지는데 한 팀은 피해자를 속이는 팀(주로 검사 사칭), 한 팀은 아르바이트를 가장하여 현금 수금책을 모집하는 구인팀이 있다. 보이스피싱 주범이나 몸통 조직의 입장에서는 피해자나 아르바이트생이나 속이는 대상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아르바이트생도 소모품처럼 이용하고 버리는 것이다.


보이스피싱 피해금은 몸통이 가지고, 아르바이트생들은 '알바비'로 소액의 일당만을 받는다.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을 알았든 몰랐든 보이스피싱과 연관이 되는 일을 한 사람은 엄벌을 피하기 어렵다. 주범은 필리핀, 중국, 대만, 마카오 등에 있고 보이스피싱 몸통의 검거는 거의 불가능하다.


피고인은 아르바이트 여러 건에 대해서 1건은 징역 1년 4월, 한건은 징역 1년 6월을 받아 총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항소를 했다. 나는 항소심 국선변호인이고, 피고인은 무죄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로 피해회복을 하고 합의하기 위해 항소한 것이었다.


부모님 없이 자란 피고인에게는 어머니 같은 누나가 있었는데, 피고인보다 더 가난하면서도 가내수공업 같은 부업을 해서 피해자 여러 명과 합의를 했다.


피고인의 누나가 말했다.


어려운 사람 형편은 어려운 사람이 더 잘 알지요. 동생이 처벌받는 것이 끝나도 내 이 돈은 꼭 다 갚을 겁니다.

 


피고인의 재판에는 늘 피고인의 누나, 피고인의 필리핀인 부인, 5살 아들이 함께 나왔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재판을 지켜보고 법정을 떠나곤 했는데,

나는 매번 그 5살 아들이 미동도 없이 선비처럼 법정에 앉아 있는 것이 기특했다.   

 

그리고 어제 피고인에 대한 마지막 재판 날이었다.


검사의 구형과 내 변론이 끝나고, 피고인이 피해자들과 가족을 고통에 빠트려 죄송하다는 참회의 최후진술을 마쳤다. 선고기일을 지정하고 재판이 끝났다.


교도관들이 피고인을 데리고 나가려는 순간    

방청석에 앉아 있던 피고인의 누나가 머뭇거리며 일어났다.


“재판장님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해 보세요.”    
“피고인의 아들이 아빠 손을 한 번만 잡아 보게 해 주세요..”    


피고인의 누나가 손으로 입을 막고 울었다.

법정에는 정적이 흘렀다.      

  

교도관은 재판장님께 “방역 때문에 안 됩니다.”라며 피고인을 막아섰다.        

법정에 다른 방청객은 없었다.

피고인의 아들은 혹시나 아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는지 방청석과 재판정을 가로막은 문 앞으로 다가섰다.


아이의 눈동자가 별처럼 반짝였다.    


나는 속으로 '안 되겠지... 누나가 괜히 애만 울리겠네.'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돌렸다.


서류를 바라보고 있는데, 재판장님께서 “아이가 몇 살이지요?”라고 물었다.


“다섯 살입니다.”    


한참을 가만히 계시더니

경위 손소독제 가져오세요.   


법정 경위가 손소독제를 가져와 아이 옆에 서자

재판장님이 아이를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손.”    


아이가 손을 내밀자 경위가 손소독제를 아이에게 뿌렸고, 이어 피고인에게도 뿌렸다.

피고인과 아이를 가로막는 방청석과 재판정 사이의 문이 조금 열리고 그 사이로 아이가 다가섰다.

교도관이 안된다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재판장님은 “앤 데...”라고 하셨다.


아마 성인가족의 손을 잡으려 했다거나 방청객들이 여럿 있었더라면 그렇게 해주시지는 않았겠지만, 그 아이는 매번 법정에서 조용히 있었고 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빠 없이 몇 년을 자라야 하는 아이와 여러 사정을 고려하신 것 같다.    


피고인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이 손을 잡고 나직하게 말했다.


“아빠가 없는 동안, 엄마 말씀 잘 들어야 해..”    


피고인은 아이와 짧은 눈 맞춤을 하고 잠시 손을 잡은 다음 바로 일어섰다.

양쪽에 교도관이 피고인을 끼고 법정 옆에 있는 문으로 데리고 나갔다.

피고인은 뒤돌아보지 않고 나갔고, 아이는 교도관과 함께 나가는 아빠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이 옆에 서 있던 피고인의 부인과 누나는 소리 없이 흐느꼈다.

아무런 오버액션도 없었고, 윙크하듯 짧은 만남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울컥해서 내가 법정에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넋 놓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꿈뻑꿈뻑하면서 더 이상의 눈물이 나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아! 테스 형, 눈물샘이 왜 이래.    


나는 이 재판장님을 존경한다. 꼼꼼하고 합리적이시고, 법정에서 건강한 권위가 있으면서도 따뜻하시다.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찰나와 같이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 아이는 몇 년 동안 아빠를 보지 못할지라도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계절이 몇 번 돌고 키가 크고 학교에 입학하고 학년이 올라가는 동안 아빠가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아빠가 손을 잡고 자신을 바라보았던 모습을 잊지 못할 것이다.


미안함과 슬픔이 담겨 있는 아빠의 눈빛은 아이 마음속에서 함께 하겠지.

    

그리고 피고인은 다섯 살짜리 아들의 손을

수의를 입고 잡아야 했던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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