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잡담 2024년 11월호
가을 하늘 같은 두브로브니크
- '왕들의 전쟁' 같았던 내전의 상흔을 품고 있는 도시에서 모니터 밖 왕좌의 게임을 온몸으로 느껴보다 -
[ 프로듀서·사진작가 최주영 ]
드디어 가을이다. 지긋지긋 질척거리던 더위가 물러가고 이제야 정말 가을이다. 가끔 찬 바람이 훅하고 얼굴을 건들 때면, 기분 좋은 저릿함이 몰려온다. 유리알 같은 하늘, 적당한 온도, 울긋불긋한 내음…
히말라야 자락 아이들의 눈동자처럼 맑은 하늘이 우릴 반길 때면, 문득 그리워지는 곳이 있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다. 크로아티아 최남단 아드리아해 연안에 있는 도시로, 이곳에 한 발짝 발을 내딛는 순간 독자는 어느 중세 시대 떠돌이 상인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 전체가 거대한 중세의 성벽으로 이뤄져 있다. 성 블라이세 성당과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을 중심으로 구시가지가 형성되어 있고, 우리가 흔히 동유럽 하면 떠올리는 ‘오렌지 지붕’ 건물들이 메인 거리를 따라 늘어서 있다. 게다가 성벽 바로 앞은 너무 투명해서 발을 헛디딜 것만 같은 아드리아해가 쫙 펼쳐져 있다. 이곳 경제가 관광업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TV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사실 그 이후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 더 유명해졌다. 특히 왕좌의 게임 제작진은 이곳의 부서진 곳을 제외하고는 거의 CG(컴퓨터 그래픽)를 쓰지 않았는데, 이곳이 얼마나 중세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는가.
드라마 촬영지를 안내하는 표지판은 따로 없지만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어딘가를 찍고 있다면 바로 그곳이다! 촬영지 중 가장 유명한 장소는 배 투어를 통해서도 볼 수 있으니, 시간이 된다면 꼭 해보길 추천한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투어는 역시 성벽 투어다.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성벽을 따라 천천히 걷노라면, 오른편으로는 새푸른 바다를 만끽하며 왼쪽으로는 오래된 성 너머 구시가지를 관람할 수 있다. 편도 약 한 시간 정도 생각하면 되는데, 중간중간에 사진 포인트가 워낙 많고 들렀다 가라고 손짓하는 듯한 숨겨진 카페들도 있어서 성벽 길이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태양이 아드리아 바닷속으로 슬슬 들어갈 때쯤이면, 두브로브니크의 하이라이트인 ‘스르지산 전망대’에 꼭 올라가야 한다. 스르지산은 두브로브니크 성 바로 뒤에 있는 산인데, 이 곳에서는 도시 전체는 물론 바다와 주변 모든 풍경까지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다.
스르지산에서 말도 안 되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역사적으로 많은 나라들이 왜 그리 이곳을 모두 탐냈는지 이해가 되는 듯하다. 이곳은 케이블카나 택시를 이용해서 올라갈 수 있는데, 해가 지기 1시간 전 케이블카를 통해 올라가 여유를 즐기고 일몰 후 택시를 통해 도시로 돌아오기를 추천한다!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리는 이곳. 하지만 도시 곳곳 아픈 역사의 상흔이 남아 있다. 나폴레옹의 지배도 받았을 정도로 오랜 기간 여러 침략이 있었는데, 가장 큰 상처는 역시 유고슬라비아 내전이었다. 1991년부터 1992년까지 유고슬라비아 인민군과 몬테네그로 영토방위군이 도시를 포위하며 공방전을 벌였다.
당시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은 두브로브니크 공화국이라는 괴뢰국을 만들어 도시 근교를 약탈하고 세계 유산에 포격을 퍼부었다. 유네스코는 두브로브니크를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지정했고, EEC(유럽경제공동체)는 이례적으로 크로아티아를 독립국으로 인정했다. 그렇게 크로아티아는 치열한 전투 끝에 도시를 지켜냈고, 지금의 우리가 아는 아름다운 도시로 남게 되었다.
아름다운 곳에는 아픈 기억이 있기 마련. 이곳에도 이동하는 경로 곳곳에 아직 복구되지 않은 건물들과 총탄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맑은 하늘 속에서도 왠지 마냥 가슴이 기쁘지만은 않았던 두브로브니크.
가을날,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살짝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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