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가고 사람은 변한다
나는 그날 저녁 동기와 산책을 즐겼다.
발에는 눈이 차이는 추운 겨울이었지만,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그를 위로하는 듯 보였다.
낮부터 있었던 가장 큰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동기도 그것을 말하려고 날 불렀을 터.
처음엔 멍하니 걷기만 했다. 그도 내 곁에 발걸음을 맞췄다.
근처에 듣는 사람이 없도록 자리를 옮겼다.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본론을 물어봤다.
“왜 헤어졌어? 둘이 진짜 잘 어울렸는데.”
“처음에는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았어. “
그러고 이어서 우리가 겪었던 일병 생활을 언급했다.
맞후임이 인사 안 하면 우리가 혼나던 날,
체력단련실을 병장이 쓸 때는 기다려야 했던 날,
선임의 세탁기 자리가 부족하면 빨래를 돌리다가도 자리를 빼야 했던 날.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의 사건들을 말했지만,
모든 일들은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재생됐다. 마치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그는 언덕에서 걸음을 멈췄다. 내 신발도 발자국을 만들기를 그만두었다.
“선임이 세탁기 자리 뺏어서 내 빨래 썩었던 날, 나는 여자친구한테 토로했어.
처음에는 그녀도 열심히 들어줬지. 하지만 내 여자친구는 군필이 아니잖아.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어떻게 군생활을 이해하겠어. 듣는 사람도 짜증이 나는 내용인데.
어느샌가 우리의 전화 내용은 내 한탄이 주를 차지하게 되더라.
그러다 내 여자친구가 폭발했어. 내 이기심이 그녀를 괴롭혔나 봐. 그러면 안 됐는데. ”
그는 한숨을 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의 어조가 빨라지는 것은 감정도 고양됐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녀도 많은 고충이 사회에서 있었나 봐. 사소한 대학 생활 적응부터, 이 과가 자신에게 맞는지,
시험기간 스트레스 같은 무거운 내용까지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지. 하지만 난 내 말만 했어.
나는 내 스트레스도 감당하기 벅찼어. 그녀의 괴로움을 나누기엔 너무나 여유가 없었어. ”
나는 그의 말에 격한 공감을 느꼈다. 첫 휴가를 나갔을 때 친구들에게 군생활을 설명할 때를 회상했다.
그들은 그저 들어주기 밖에 하지 못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입대해서 그런지,
내 고충을 이해해 주는 친구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어른들에게 이야기해도 돌아오는 것은
“요즘 군대가 군대냐? 라떼는 말이야! …”
요즘 군대가 예전 군대보다 편해진 것은 맞지만, 나도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다는 말은 언제나
내 목구멍에서 멈췄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예나 지금이나 자기소개서에는 자신의 장점이 경청이라는 사람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하지만 친구들이나 어른들이나 진실된 경청을 해주는 사람은 나는 일병 때 보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힘들다고 자기주장하기 바빴던 것이다. 이 사실은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 처지가 너무나 힘들어서 남에게 집중할 여력이 없었다. 그저 그뿐이었다.
나는 일병생활을 고마우신 분들 덕분이 견딜 수 있었다. 바로 내 부모님들이다.
내 군생활은 휴가 때마자 부모님만이 들어주셨고, 아픔을 나눠 간신히 견딜 수 있었다.
아픔을 나누지 않았다면 나는 그 기간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내 동기는 그 상대가 여자친구였을 뿐이다. 누군가 자신의 고통을 들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녀도 자신의 고통을 들어주길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나 천생연분 같았던 둘은 다툼으로 가득찬 통화를 반복했다.
몇 번 화해도 시도해 봤지만, 결국 같은 이유로 싸우긴 마찬가지였다.
누구의 잘못이라 말할 수 있을까. 잘못은 둘을 갈라서게 한 국방부에 있던 것이 아닐까.
과연 군대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모든 국방부 커플은 그럼 헤어질 운명인 것인가.
그날 산책은 그렇게 끝났다. 이별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한 산책이었지만, 내 궁금증은 더 많아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