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봄이 되었다

스물네 번째.

by 운전하는 Y



magnolia-7137316_1280.jpg pixabay의 성 수한님의 사진

팔레트 속 색들은 거리로 나와 몸을 겹쳐 누웠다

무채색 두툼한 이불은 새로운 것 뒤로 빨랫감이 되어 걷혔다


서로를 바라보는 틈 사이에 봄이 차오르고 피어나고 채워질 때,

너에게 나에게 몸을 맞댄 봄은 맞닿은 어깨에 고개를 살포시 내려놨다

너에게 나에게 몸을 맡긴 봄은 새어 나온 휘파람에 흩날리며 나풀댔다


빠짝 마른 옥수수낱알이 봄의 터치에 여며둔 새하얀 속살을 펼쳤다

눈부신 속살은 눈물찬 사월만큼이나 새카만 밤에 매달렸다

송이송이 뭉게뭉게 부풀었고,

까만 밤하늘에서 새하얀 구름을 보았다


잠시잠깐이었다

고갤 들었을 때 환희에 가득 찬 눈빛은 발아래로 떨어지며 환멸로 둔갑했다

포근한 손끝에서 탄생한 순간의 순백의 마음을 뚫고 거뭇한 멍자국이 솟았다

보이지 않는 멍자국을 안고 태어나, 결국 온몸에 멍 칠을 하고 떠났다



추앙받다가 이내 짓밟히는

환하게 피어나 금세 어둡게 지고 마는

따뜻하지만 그래서 슬프고 어쩌면 더 추웠다



멍자국 숨긴 목련 송이가 어깨 위로 떨어졌다

목련 꽃잎 하나에 갓 태어난 숨을 후-

그는 땅에 닿기 전, 풍선처럼 부풀어 한 번 더 날아올랐다

목련 꽃잎 또 하나를 베어 물었다

그는 땅에 닿지 않고 매콤 달달하고 따뜻하게 묻혔다

어둡지 않고 그대로 봄으로 남았다



*


겨우내 얼어 발이 묶인 마음에 봄바람 한줄기 휘-

냉기가 가셔서 좋은가, 발을 뗄 수 있어 좋은가

냉동실 밖 아이스크림처럼 말랑거리다 곧 녹아버릴 게 뻔하다

그러다 형체도 없이 뭉개져 밑바닥을 흐를 게 뻔하다

그렇게 달달한 환희는 사라지고 끈적한 자국만 남을 게 뻔하다



봄바람에 말랑해진 네 마음이 기어이 녹아

자국만 남기고 떠나기 전에

얼른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푹푹 떠먹었다

뭉개져 끈적한 자국이 솟기 전에 내 안으로 삼켰다


네 마음은 이제 내 안에 있다

따뜻한 혀끝으로 녹여 내 안에 담았다

너도 나도 그렇게 (억지로나마) 따뜻하니,

우리도 봄이다







*목련에 바람 후-- 불어넣으면 목련풍선ㅎㅎ


커버이미지 출처 : 사진: UnsplashMark Grafton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