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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칠

스물세 번째.

by 운전하는 Y
liana-s-f1L4xMQmoeU-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Liana S


청록색 핏줄이 곤두선, 여전히 꽁꽁 얼어있는,

아직도 겨울에서 깨지 못한 손발이

연신 입김을 맞으며 늦잠을 잡니다


다들 봄이라고 하던데 거리엔 노랗고 하얗고

개나리도 벚꽃도 벌써 지천에 피었던데

가끔 노랗고 하얀 꽃잎이 흩날리기도 하던데

산책 나온 강아지들도 모두 옷을 벗었던데

그래서 다들 봄이 왔다고 하던데



봄이 와서 좋은가요-

늦잠을 자던 손발이 아직 깨기 싫은 손발이

한껏 부푼 봄을, 실눈으로 훔쳐보며 말합니다



날아다니는 칼날에 베이는 게 당연한 겨울 뒤에 숨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추운 척 겨울이라 추운 척 너도 추우니까 나도 추운 척

이상하게 보일리 없는 당연히 추운 척


그러다 털 보숭보숭하게 일어있는 이불 안으로 파고들면

그래서 따뜻한 척 언 몸이 녹은 척

그래서 축축이 젖어도 얼었다 녹아서 그런 척

이상하게 보일리 없는 당연히 따뜻한 척

겨울 안에는 숨을 곳이 많습니다



언뜻언뜻 살구색 손목 발목이 보이는 봄의 거리에

퍼렇게 질린 손발은 숨을 곳이 없습니다

따뜻한 봄이라 하는데 홀로 추우니

어찌하여 봄은 겨울보다 더 춥습니다



재채기 나오는 바람의 손 끝은 이미 한껏 데워져 있는데

헐벗어 마른 몸 드러냈던 나뭇가지도

갓 움튼 쨍한 형광연두 새순 걸쳐 입고 꽃망울 터뜨렸는데


(아직도 추운데 여전히 추운데 이제 누굴 핑계로 춥다 말하나요)


그래서

올봄엔 색을 칠할 거예요

손발톱에 가장 따뜻한 색을 입히겠어요

춥다 말하는 청록색 핏줄이 눈에 띄지 않도록

겨울에 머문 청록색 보다 눈에 띄는 색으로

손발에 화사한 봄의 꽃밭을 칠할 거예요


추워하는 걸 알아채지 못하게

따뜻한 봄이 온 척

봄을 가득 칠하겠어요







커버이미지 출처: 사진: UnsplashAnastasia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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