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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염려증

-오후 4시 카페인이 땡긴다 너무나-

by 책방별곡

어릴 때부터 쓸데없는 걱정을 참 많이도 하는 아이였다. 이런 나를 보며 결혼 전에는 친정엄마가, 결혼 후에는 신랑이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미리부터 걱정한다며 핀잔을 준다. 성격이라서 고쳐지지도 않고 가장 많이 하는 걱정은 바로 건강 관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것을 꼭 먹어야 하는 내 몸뚱이는 비만이다. 매일 달다구리를 입 안에 넣으면서도 머리로는 계속 ‘이러다 병에 걸리면 어떡하지?’ 걱정하고 있다.


이런 건강염려증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다. 할아버지가 신부전증, 당뇨병, 위암 이렇게 종합 3종 세트 합병증을 앓다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돌아가셨다.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2년을 넘게 같이 살며 엄마가 병간호했다. 그때 그녀가 고생하며 몰래 눈물 훔치는 모습, 첫 손녀라며 나를 끔찍이도 예뻐하시던 할아버지가 위암 말기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모습들이 아직도 떠오른다.


‘아프면 사람이 저렇게 변하는구나, 가족들을 참 힘들게 하다가 원망을 받고 떠나는구나.’ 열두 살은 아픈 할아버지를 보며 다짐했다. 죽기 전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가야지. 내 몸은 내가 챙겨야지. 그래서 커피라는 카페인 덩어리, 검은색 독극물 느낌의 음료를 결혼 전까지 잘 마시지 않았다. 임신 중에도 우리 아이에게 악영향을 미칠까 봐 단 한잔도 입에 대지 않았다. 커피도 중독이니 마약처럼 느껴졌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식후에 한 잔씩 마시는 커피 믹스를 한 모금 맛보고는 입에 대지 않았다. 마시고 있을 때 누군가가 어린이가 벌써부터 커피를 마시면 뇌가 멍청해진다는 소리를 들었던 거 같다. 수험생 시절 잠이 쏟아질 때도 커피는 마시지 않았다.

그렇게 건강을 챙기던 나는 아이가 모유 수유를 끊은 그날부터 하루에 커피를 2~3잔 마시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커피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가 없었다. 자주 아프고 통잠을 자지 못하는 아이 때문에 잠을 깊이 잘 수 없었고 커피라도 마셔야 버틸 수 있었다. 결국 서서히 커피 마시는 횟수를 늘려가며 육아로 시작된 만성피로를 커피라는 각성제로 무마시키고 있다.

화면 캡처 2023-04-05 114116.png


그러던 어느 날. 귀에서 한 번씩 소리가 나는 이명 증상의 빈도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이명이 아프지는 않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인분이 이석증으로 괴로워하고 증상이 심한 날에는 차라리 죽고 싶었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지금까지 피곤하다는 핑계로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진 않았나 덜컥 겁이 났다. 게다가 몇 개월 전에 유전자 분석 검사를 했는데 나는 술과 커피에 강한 유전자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 분석만 믿고 커피를 더욱더 벌컥벌컥 마셨다. 집에서 오전에 캡슐커피 한 잔, 오후에 커피 믹스 두 잔, 저녁에 신랑이 퇴근하면 밤 산책을 나가서 스타벅스에 들러 한 잔. 삼시세끼 밥은 챙겨 먹지 않아도 커피는 그렇게 석 잔 이상씩 규칙적으로 마셨다.


그림책 『커피 마신 제이크』를 읽으며 오후 늦게 커피를 마시니 숙면을 못 하고 밤에 서너 번 깨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주인공 제이크 역시 엄마 몰래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고 그날 밤 카페인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귀여운 내용의 그림책인데 또다시 건강염려증이 시작된 나는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면 숙면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기사가 머릿속을 스쳤다. 결국 숙면을 위해, 그리고 삐~소리가 나는 이명 증상을 줄이기 위해 커피를 오전 10시쯤 딱 한 잔만 마시려고 노력 중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이제 일도 시작했기에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하다 오후 4시쯤 되면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래도 참는다.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하기에. 누가 나를 걱정해 줄까? 아프면 나만 손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커피 대신 따뜻한 차를 마신다.


물론 인테리어가 멋진 카페에 들러 예쁘게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일이 소소한 행복 중에 하나다. 스타벅스에 프리퀀시 이벤트라도 뜨면 상품을 받기 위해 재빠르게 스탬프를 적립하기도 한다. (이런 나에게 신랑은 스벅충이라고 놀려댄다. 열받지만 아니라고 말은 못 하겠다) 그러나 그럴 때도 이제는 커피 대신 다른 차를 마시려고 고민한다. 쉽지는 않다. 가장 좋아하는 아인 슈페너도 마시고 싶고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달콤한 케이크를 먹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건강염려증이라는 병(?)에 걸린 나는 오늘도 딱 커피 한 잔 이상은 마시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중이다.

화면 캡처 2023-04-05 114339.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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