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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치료사 문 주 Nov 25. 2024

보라의 심리적 속성

    독자 여러분에게 “보라색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색을 섞어야 할까요?” 라고 묻는다면 빨강과 파랑이라고 아주 쉽게 대답할 것이다. 이는 초등학생도 알 수 있을 만큼 아주 쉬운 답이다. 하지만 두 색이 가진 어마어마한 온도 차이를 극복하고 섞여야만 만들 수 있는 색이라는 점에서 보라는 커다란 대립을 하나로 통일하는 색이라 말할 수 있다. 빨강과 파랑, 여성적인것과 남성적인 것, 감각적인것과 정신적인 것의 혼합이 바로 보라색이듯 대립하는 것과 쌍을 이루는 다소 혼란스러운 심리적 속성을 가진 색이다. 그래서인지 시대에 따라 잠시 유행하기도 했었으나 보라는 특별히 인기가 있는 색은 아니다. 




   하지만 보라는 초기 기독교 시대를 거치면서 비잔틴 제국의 통치자만이 입을 수 있는 색이었다. 산비탈레(San Vitale) 성당에 있는 모자이크화에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보라색 옷으로 휘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보라색 옷을 입은 유스티니아누스.  547




     자연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보라는 썩어가는 달팽이에서 나온 물질을 열흘 동안 은근한 불에 달여 햇볕에 오랜 시간을 말리고 또 말려야 하는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색이었다. 이렇게 생겨난 보라(purple)는 햇빛을 통해 생겨난 색이므로 햇빛에 바래지 않는다. 보라색이 영원함, 권력을 상징하게 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대림절과 사순절은 예수의 부활과 탄생을 기다리는 마음과, 참회 절제를 상징하는 보라색으로 제대를 장식하고, 고해성사를 집행할 때 신부는 보라색 영대를 길게 늘어뜨린다. 그렇지만 교회가 갖는 보라가 갖는 의미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속적인 현실에서의 상징성은 매우 다른 것 같다. 보라는 여성스럽고, 자유분방하고, 평범하지 않으며, 사치와 허영을 상징하는 색이다. 이렇든 보라는 늘 대립의 쌍을 이루는 속성을 가진다. 


   

    보라색에 관하여 여러 심리학자, 화가들은 각기 자신들의 관점에서 파악했는데 분석심리학-융 학파에서는 그림에 나타난 보라색을 파랑과 빨강이 아직 분리되지 않은 남녀 양성적인, 또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별이 아직 구현되지 않은 발달 단계에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칸딘스키는 “보라는 육체적, 심리적 의미에서 가라앉은 빨강이다. 이러한 이유로 보라는 병적인 것, 힘을 잃은 것, 슬픈 어떤 것을 지니고 있다.” 라고 하였듯 보라색이 내담자의 그림에서 많이 보인다면 다소 혼란스럽거나 분화되지 않은 어떤 갈등을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거꾸로 보라를 기피한다는 것은 융화되고 싶은 욕구를 억제하거나 아직 무언가와 통합될 조건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색채심리학자 스에가나 타미오의 사례를 보면, 난치병을 고치기 위해 미국까지 가서 어려운 수술을 받고 귀국한 5세의 아동의 그림이 있다. 그녀의 해석은 아동의 그림에서 보라색이 지나치게 많이 보일 경우, 신체적인 질병과도 유의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 아동은 수술 직후 병동에서 오직 보라색 물감만을 사용하여 마구 붓칠하듯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출처:TamioSuenaga『색채심리』 .예경



   보라색은 이성적 프로세스와 활동에 대한 욕구가 합쳐져 활발한 두뇌활동을 자극하기도 하고, 생체리듬에도 영행을 준다.

   호텔 체인지업체트레블로지(Travelodge,2013)의 영국 2,000세대 가정을 대상으로 숙면에 도움이 되는 침실의 색상과 수면시간 관계 연구에서 파란색 (평균 7시간 52분)에 비해 보라색(평균 5시간 56분)이 현저하게 숙면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혹시 불면으로 고생하는 독자분의 방에 보라색이 많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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