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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Oct 21. 2020

산밭 세상

제철을 만난 산밭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다

생명의 신비는 창조주의 선물이다. 제철을 만난 산밭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다. 승용차로 15분 정도 달리면 갈 수 있다. 중고 자동차 매매센터 주차장 맨 위쪽에 차를 세우고 10m쯤 올라가면 300평 남짓한 산밭이 나온다. 경계면을 중심으로 도시와 농촌의 삶이 함께 공존한다. 한쪽은 중고 자동차 매매센터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산밭이 있다.


숲 속에는 자기들끼리 어울리는 까치, 소쩍새, 산비둘기, 꿩 등 여러 텃새들이 함께 산다. 나무 위에는 매미, 장수풍뎅이 등이 살며 땅속에는 벌레와 미생물이 사는가 하면 두더지가 통로를 만들어 놓고 오고 간다. 두더지를 쫒으려면 많은 연구가 필요한 곳이다. 이들은 서로 의지하고 산다.


바람 부는 세상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 산밭에 들어서면 세상이 맑아진다. 책임질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책임질 사람이 있는 곳이다. 날마다 맑은 공기로 환기시키며 똑같은 하루를 시작한다. 그곳에 앉으면 그곳에 맞는 농부의 행동과 가치관이 따라 나온다.

밭이 나에게 말한다.

“나는 너보다 먼저 이 세상에 있었지.”

“여기에 온 연유를 말해보게.”

“이런 소리 들어본 적 있나?”

“이런 생명의 신비를 보았나?”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묻어 놓을 것이 있네.”

“움트고 나오는 소리가 들리네.”

“원초적인 삶이 보이네.”

“자연의 신비가 보이네.”

나무 그늘 밑에 휴식처를 만들었다. 처음 보는 산새들이 소란스럽게 우짖는다. 저 산새들이 내 옆에 와서 저토록 재잘대니 무슨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저 소리는 커피를 마시라는 신호인 것 같다. 종이컵을 코에 대니 커피 향이 다르다. 재활용할 물건들을 이용하여 의자와 깔방석으로 둔갑시켰다. 밭 주변 둑은 재활용 플래카드로 풀이 자라지 못하게 덮었다. 이곳은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곳이다. 빗물을 큰 플라스틱 용기에 받아놓았다.


생명의 신비는 그대로 우주의 조화이다. 그 조화는 전부터 있었다. 자연의 질서가 더 단순해진다. 너그러운 산밭에서 솟아나는 싹이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산새들이 드나들면 손끝이 쉬어 가고 나비가 날아들어 작은 깨달음으로 나풀거린다. 농작물 사이로 개미 한 마리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벌레 한 마리 물고 그들만이 알 수 있는 페로몬 길을 찾아 잘도 간다. 흙덩이도 넘고 거꾸로 넘어지며 무리 지어 핀 꽃길 사이로 사라진다.


상치, 오이, 고추, 가지, 들깨, 강낭콩, 호박, 옥수수, 고구마, 참깨, 부추, 토마토, 수박, 더덕, 마, 팥, 대파, 매실나무, 오미자가 우리 식구들이다. 찰옥수수가 줄을 서서 여물어 간다. 팥에는 작은 나비 모양의 꽃이 피고 꼬투리가 매달린다. 꼬투리 안에는 10개 남짓한 씨앗이 들어앉는다. 비타민이 많은 팥알은 자줏빛을 띠는데 그 빛깔이 곱다. 고추의 하얀 꽃에서 초록색 고추가 열리고, 빨간 고추로 변한다. 오이에는 노란 꽃이 피고 초록색 오이가 매달리고, 토마토에는 노란 꽃이 피고 빨간 토마토가 열린다. 가지의 연분홍 꽃에서는 갈색의 가지가 열리고, 초롱 모양의 하얀 참깨 꽃에서는 수많은 하얀 씨앗이 쏟아지고, 노란 호박꽃에서 초록색 애호박이 열리고 연붉은 늙은 호박이 된다.


집에 돌아올 때쯤이면 호박 덩굴이 따라오고 저물녘 노을에 농부의 그림자가 그려진다. 열매를 따다 먼저 얼굴을 대하는 사람들과 나눈다.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면 산밭 세상도 저문다. 산밭 세상이 저 혼자 내일을 준비하면 별들이 내려앉아 이슬을 먹고 내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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