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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바벨 Jul 02. 2019

소설책을 선물로 고르지 않는 이유

막내 작가 이름이 조지 오웰이던가.

합정이나 종로에서 약속이 잡힐 때면 굳이 일찍 출발해 근처 대형서점을 들른다.


그러고선 더 굳이, 소설 코너에 가서 사지도 않을 책을 제철 과일처럼 구경하다 이내 에세이 코너로 발걸음을 옮겨 친구에게 선물할 책을 고른다.


소설책을 선물로 고르지 않는 이유는

1. 선물 받을 친구가 그 책을 다 읽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뿐더러,

2. 친구가 어떠한 결심으로 책을 펴 꾸역꾸역 읽어나가다 갑자기 기지개를 켠 뒤 "롤이나 한판 할까?" 하며 컴퓨터를 켜는 모습을 미래에서 보고 왔기 때문이다.


나 또한 소설책을 집어 읽는 일 자체가 부담으로 느껴질 때가 많은데,

이야기를 받아들일 방이 무언가로 잔뜩 어지럽혀져 있을 때 그렇다.


'내 이야기도 풀리지 않는데 남의 이야기에(더군다나 허구 따위) 관심을 가져서 뭐 해?'라는 식의 태도이거나,

풀릴 리 없는 내 피로 탓에 어느 소설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완성한 서사는 도무지 부담스러워 끝까지 읽어낼 자신이 없다.


그런 상태의 내가 누군가한테 소설책을 읽으라며 선물하는 건,

'나는 이렇게 좋은 책을 읽은 사람이야'하는 자기 자랑을 작가의 네임드와 함께 포장해 건네주는 일이다.

데미안을 선물하자니 꽤 미안하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물어볼 바에 감바스나 먹으러 가자 할 것 같다. 동물농장은 일요일 오전 9시에 하는 짜파게티 같은 TV 프로그램일 뿐이다. 막내 작가 이름이 조지 오웰이던가.


여하튼 그런 탓인지 에세이는 소설보다 서로에게 많이 오가고 쉽게 손에 잡히는 것 같다.

나는 내 돈을 주고 떡볶이를 사 먹지는 않지만 떡볶이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꽤 많이 알고 있고,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대책 없이 따뜻해 보이는 친구에게 내 지갑을 열기도 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선물하며 나의 이야기에 대해 생각한다.


세상에는 이미 좋은 이야기가 널려 있으니까 굳이 내 이야기까지 의미 좋을 필요는 없겠다.


그럼에도 왜인지 친구를 내가 사는 동네로 부르려다 중간쯤인 합정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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