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매번 가스라이팅 당할까.
험담의 부정적 요소
나는 호구되기 딱 십상의 사람이다. 이유는 남의 말을 편견 없이 잘 믿고 휘둘리는 편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큰 딸애와 설빙에서 망고빙수를 먹은 적이 있다. 최근에 발견한 소소한 행복이다. 우리는 만나면 여러 가지 주제로 대화를 많이 나눈다. 주로 만나면 잘생긴 남자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진짜 몇 시간이고 한다.(큰 애도 나 닮아서 남자 잘생긴 걸 좋아한다. 이 죽일 놈의 유전자)
그날의 주제는 '험담'이었다. 나는 조금의 험담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대통령도 뒤에서 욕하는 판에 약간의 험담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나는 이십 대에 나의 험담을 악의적으로 하는 사람을 만나 피해를 본 적이 있다. 그 후로 험담을 되게 싫어해서 안 하게 됐었다.
최근 들어 긴장이 풀어진 건지 나이 들었는지 험담에 대해 약간 너그러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다 이해한다는 듯이 너그러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무엇보다 몇십 년 동안 사람 험담을 안 하니 입이 간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너그러워지며 나에게도 면죄부를 주고 싶었다.
나이 들어 감에 따라 약간 마음이 넓어졌다고 허세를 부리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험담에 대해 너그러워지며 나도 그 대열에 스멀스멀 합류하려던 찰나였다.
큰 애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험담하는 사람을 좋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살짝씩 험담에 대해 너그러워지고 있는 중이라 험담의 순기능에 대해 솰라솰라 떠들어댔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둥.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산다는 둥. 보편적인 인간의 특성이니 이해해야 한다는 둥.
그래도 별로 나의 이야기에 동조를 안 하는 큰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험담하는 사람이 왜 싫어?'
망고 빙수를 열심히 먹던 큰애가 대답한다.
"남의 이야기를 부정적으로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때문이야. 그 여론 조성이 아주 나쁘다는 거야."
순간 머리가 '딱' 하고 깨달음이 왔다. 나는 누가 다른 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면 무척 휘둘리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에 대해 싫은 감정이 하나도 없다가도 갑자기 가까이하기 싫어진다.
만약에 그 사람이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도 나는 분명히 영향을 받는다. 도마 위에 오른 그 사람에 대해 편견이 생겨 버린다. 여태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다. 그 험담을 여러 사람에게 하게 되면 그게 '여론'이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작은 일이 아닌 것이다.
결코 작은 일이 아닌 것이다.
나는 궁금해서 또 큰애에게 질문을 쏟아낸다.
"너는 그럼 험담을 안 해?"
"너는 직장에서 누가 누구 험담하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해?"
"응, 나는 험담을 안 해. 그리고 그 험담하는 사람이 별로라고 생각하고 딱 멈춰."
그러니까 험담하는 사람의 영향을 전혀 안 받는다는 얘기다.
나는 순간 큰애에게 존경심이 들었다.
"야. 너 되게 멋있다."
내 생각보다 괜찮게 컸나 보다. 나는 큰 애를 키우며 큰애를 좀 얄미워했었다. 어째 자기 할 말을 따박따박 따지고 좋고 싫음이 분명한 게 배려심이 없다고 생각해 얄미워했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는 큰애의 모습을 보며 엄마를 안 닮아서 다행인지 고차원의 도덕성이 있는 모습이 꽤 멋지다.
나도 못해내는 일인데...
험담에 휘둘리지 않는 것 말이다.
나는 내가 생각할 때 가까운 사람이 그러면 여지없이 흔들린다.
없던 감정이 생긴다는 것이다.
딱 그 사람이 싫어지고 여러 가지 잣대로 그 사람이 별로라고 느껴지니 그때부터 그 사람과는 거리를 두게 된다. 그야말로 쉽게 험담에 휘둘린 거다.
부끄러운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이십 대에 한양대에서 보육교사를 공부할 때다. 우리 교실에는 대략 60여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중에 내 앞자리에 영옥이라는 나보다 어린 동생이 있었다. 우린 앞 뒤 자리에 앉아서 친하게 지냈다.
2학기에 학교에 와보니 뭔가 반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다. 방학 때 우리 반 몇 명이 현장학습 차원에서 일본여행을 갔는데 영옥이가 실수를 많이 했나 보다.
나는 돈이 없어 그 여행에 가지 않았었다. 상황을 보지 못했다.
2학기에 등교하니 어떤 이가 와서 영옥이 험담을 잔뜩 했다. 공항 시간에 지각했다는 둥, 눈치가 없다는 둥. 나는 그때까지 영옥이에 대해 부정적 감정이 없던 사람이다. 그 험담을 듣고 나니 뭔가 영옥이랑 친하기 싫어진 것이다.
그때부터 뭔가 친근함이 덜했다. 영옥이도 느꼈을 것이다. 묘하게 반 분위기가 바뀐 것을... 영옥이는 2학기를 다하지 못하고 나오지 않았다.
알 수 있었다. 영옥이가 나오지 않은 이유를....
영옥이는 공부를 끝까지 끝마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오십이 넘은 지금까지 미안함이 남아있다.
그것이 여론 조장이었고 나는 그것에 놀랍도록 귀 기울여 듣고 참고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영옥이의 큰 잘못은 없다. 설사 잘못이 있었어도 좀 감싸주지...
늘 그런 식이었다. 사람의 말에 쉽게 흔들리는 나..
그것이 가족의 일이라면 어떨까. 나는 너무 부끄럽고 모자란 엄마이다. 나는 어쩌면 가족 안에서도 누구에 관해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는 사람이었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가스라이팅이다.
'내가 그 사람을 못마땅해하는 것처럼, 너도 그 사람을 못 마땅해해.'
그렇게 여론이 조장되는 가스라이팅에 자주 휘둘렸다.
이 일은 많은 문제점이 있다.
비폭력대화를 공부하며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배웠었다. 판단하는 것, 단정 짓는 것,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의 부여.
그것은 상대방과의 관계에 원활한 소통에 방해요소이다. 판단하는 말로 사람과 대화하면 정확한 소통이 어렵다. 편견이 잔뜩 있는 상태에서의 대화는 평범한 대화와 사뭇 다르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은 짠돌이야, 또는 그 사람은 이기적이야 하는 등의 판단하고 단정 짓는 말을 말한다.
사람은 당연히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이기적이어야 맞다. 나의 기준이 다르고 상대방의 기준이 다를 뿐이다. 사회에 또는 나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그 사람은 이기적이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 이기적이라는 것의 기준이 뭘까. 모호하다. 각자의 기준이 다 다르다. 어떤 것에 대한 이기적임일까. 짠돌이에 대한 기준도 천차만별이다. 내 기준에 짠돌이처럼 보일 뿐이다.
그렇게 딱 단정 짓고 말하고 바라보면 다 몹쓸 이기적인 사람이다.
세상에 남는 사람이 없다.
내가 감당할 수준의 사람과 만나면 된다. 이것이 되게 중요하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별로여도 내가 그렇게 문제가 아니면 된다. 그리고 사람을 가까이하거나 멀리하는 것의 판단은 자의적이어야 한다. 험담을 듣고 나서가 아니고...
험담의 문제는,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만든다.
나는 쉽게 전염되고 쉽게 휘둘렸다. 사람이 싫어졌다. 이렇게 저렇게 다 별로이면 남는 사람이 없다.
부끄럽지만 그랬다.
큰 애에게 어떻게 그 '여론'조성에 대해 깨달았냐 물어봤다. 책을 읽었든지 유튜브를 봤나. 너무 궁금했다. 그냥 주변 사람들을 보아하니 그렇단다. 살면서 알게 됐단다.
나는 얘보다는 성경, 책, 브런치 등등 더 읽는 편인데... 하. 때로는 자식한테 배운다. 나를 안 닮아 다행이다.
앞으로 험담도 안 하고 험담을 듣고 어떤 이에게 편견도 생기지 말아야 하는데..
이 글을 쓰고 안 그러길 바란다.
험담은 나쁜 여론을 조장하는 일이다. 이것은 그 당사자에 대한 평판을 부정적으로 물들이는 것이고, 공동체의 분위기를 망가뜨리는 문제적 행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