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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Aug 06. 2024

용서하고 세월이 흐른 줄 알았다.

내가 아픈 이유를 찾았다.

이제 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많은 이야기를 내놓았지만  하지 못한 이야기.


나는 처음에 글을 쓰기 전 내가 아픈 이유가 엄마 없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리움이 커서 아픈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어느 날 아파서 까무룩 잠이 들고 꿈을 꾸고 알았다.


꿈에 방에 작은오빠랑 있었다.


우리는 놀고 있었다. 그런데 오빠가 나를 화나게 했다. 나는 욕을 했다.


오빠는 문을 닫았다.


(문을 닫는다는 것은 이제 본격적으로 나를 때리겠다는 신호이다.)


마음이 두렵고 공포스러운 순간이다. 나는 때리는 도구를 찾는 작은오빠에게  소리쳤다.


 "나를 한 번이라도 때리면 나랑은 이제 인연 끝나는 거야."


아주아주 크고 단호하게 소리쳤다.


오빠는 망설이더니 도구를 내려놓고 포기한다. 씩씩거리지만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꿈에서나마 강하게 저항하며 내 목소리를 냈다.


꿈에서 깨니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있다. 아직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다.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엄마 없어도 잘 사는 나였다. 숙제 잘하고, 학교도 잘 가고, 공부 잘하고 상도 잘 타오고, 운동도 잘했다. 밖에서도 대장 노릇하고 재밌게 살았다. 엄마 없이도 잘 사는 아이였다. 그리움이 클 뿐 그것이 아픈 이유가 아니다.


 내가 아픈 이유는 장기간의 폭력의 노출이다. 나는 성인이 되기 전 장장 20년을 아버지와 작은오빠에게 맞았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유일한 분노 표출의 대상이었다. 그저 그들이 수틀리면 몇 시간이고 때렸다.


나는 얼굴에 멍이 든 채 학교에 간 적도 있다. 너무나 수치스러워 그냥 어디서 부딪혀서 다쳤다고 둘러댔다.


그들은 내가 여자인데도 아무 데도 가리지 않고 때렸다. 이제 숙녀가 돼가는 봉긋한 가슴도 주먹으로 사정없이 때렸다. 발을 비틀고 머리를 쥐어뜯고 구석으로 패대기치고 몇 시간이고 때렸다. 입에 담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욕을 하며 저녁이고 새벽이고 때렸다. 이유는 그저 밥을 성의 없이 차려줘서, 말대꾸해서 등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다. 저항하면 할수록 더 맞으니 오로지 맞을 수밖에 없다. 훈육이 아니라 명백한 폭력이었다. 그런 몸으로  그들의 밥을 차려주고 빨래를 해줬다. 작은오빠도 아버지에게 기절할 정도로 맞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 모습이 불쌍했지만 오빠는 나에게는 가해자였다. 같은 편이 돼야 할 작은오빠는  인정사정없이 더 악랄하게 때렸다. 폭력의 대물림이었다.


그들에게 인간이 아닌 짐승처럼 무기력하게 맞고 나면 내가 무엇을 잘해야 저들에게 더 이상 맞지 않을까 비위를 맞추려 노력했고 아픈 몸이 치유되는데 몇 날 며칠이 걸렸다.


 미워하고 증오했지만 매일 같이 밥을 먹고 매일 얼굴을 봐야 했다. 아버지가 없으면 나는 생존을 못하기 때문에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있었다.


성인이 돼서 그들을 외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그들도 불쌍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족이니까 다시 얼굴을 보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아파서 죽겠다.


 아버지는 68살에 돌아가셨다. 벌써 십여 년이 흘렀다. 작은오빠는 젊은 나이에 디스크 수술 후유증으로 뇌경색이 와서 대소변도 제대로 못 가리고 아기가 돼서 휠체어 타는 몸으로 요양원에 있다.


 나는 아버지도 그렇고 작은오빠도 그렇고 아플 때 자주 찾아가지 않았다.  사랑이 빠지고 애증과 불쌍함만이 남아서 가족이라는 이름의 의무감만 남은 사람들이다. 그 인생이 불쌍하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죽어가는 시간만 기다리는 그들을 만나고 오면 착잡함, 씁쓸함, 애통함만 있는 사람들이다. 오로지 불편함만 남은 사람들이니 어떡해서든 안 갈 궁리를 했다. 실제로 우리 가정도 총체적 난국이니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들이 잘해줬던 순간도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마음 푹 놓고 미워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의 폭력이 노출된 시간이 장장 이십여 년이다.  가족이니까. 불쌍하니까. 저렇게 병원 신세 더 불쌍하게 됐으니까. 미워하는 내 마음을 인정하지 못했다.


 여태 증오하고 미워하는 감정은 감춰두고 불쌍하고 용서하는 마음만 갖다 썼다.


왜냐면 가족이니까 유일한 가족이었으니까. 이들마저 없으면 나는 그럼 정말로 아무도 없는 고아가 되니까.


용서하고 세월이 흐른 줄 알았다.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아프다. 모든 정서적인 면이 망가져서 아이들도 바라보지 못하고 시체처럼 누워있을 때가 많다. 나는 그럴 때마다 마음의 동굴에 들어가니 주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헤매길 반복한다.


나의 상태가 좋을 때만 사람들을 만났으니 내가 이런 사람인 줄 오래 알고 지낸 사람도 몰랐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기까지 내가 이상한 줄만 알았다. 드디어 이유를 찾아낸 것이다.


이제 나는 그들을 실컷 미워하려 한다. 이제껏 실컷 미워한 적이 없다. 미워하다 용서하고 미워하다 용서했다. 섣부른 용서로 내 마음을 너무 몰랐다.


이제 정말 맘껏 욕하고 미워하려 한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 세상에서 나를 제일 못살게 굴었던 사람들. 99% 정말 나빴던 사람들.  그들이 누구든 간에. 처지가 어떻든 간에 맘껏 미워할 것이다.


나는 말한다.


그러지 말았어야지. 쪼끄만 애였잖아. 아무 잘못도 안 했잖아. 세상 사람들이 잘못한 거보다 당신들이 잘못한 게 훨씬 훨씬 커... 


'이 악마들 같으니라고. 당신들 때문에 나를 사랑하기가 어려웠어. 행복해지는 법도 몰랐어. 우리 아이들한테 잘해주지도 못했어. 엄마가 제정신이 아니니까. 나는 당신들 때문에 아직도 괴로울 때가 많아.'


아버지는 이 세상에 없지만, 작은 오빠는 세상을 살아갈 힘이 없는 무기력한 사람이 됐지만, 내 마음속의 그들은 영원히 나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나만 아는 아픔을 꺼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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