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울 에너지드링크
진안 현장에서 대웅이형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하겠다)
대웅이형한테 미안하지만(솔직히 닮아서 조금 미안하다.) 첫 만남에 느낀 점은 키가 작고 떡대가 큰 것이 마치 한 마리의 고릴라를 보는 기분이었다. 양 옆머리와 뒷머리는 잔디만 남긴 것처럼 빡빡 밀고선 가운데 머리만 길어서 뒤로 넘기고 다니는…. 폼나는 고릴라랄까….? 실물을 못 보여줘서 고릴라라는 설명 하는 내가 억울할 정도로 나에게는 고릴라 같았다.
고릴라 아니 대웅이형은 이미 진안 현장에 한 달 남짓을 일했다고 했고 그동안 형과 같이 일하던 또 다른 반장님이 빠지면서 자연스레 내가 그 자리에 합류하면서 영혼의 진안 파트너가 되었다.
보통은 일을 나가다 보면 현장소장이 일을 시키기 때문에 하라는 일만 하면 된다. 그런데 대웅이형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데리고 인사만 간단히 시키고는 본인이 소장이라도 된 것 마냥 내게 일 지시를 시키고는 각개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순간 어벙벙했지만 나도 모르게 형이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여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정신이 잠에서 깨기도 전에 부랴부랴 2시간이 지나서야 형과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형님 여기 직원인 줄 알았어요, 지시받지도 않고 바로 일을 시작해 버리네요?”
물론 대웅이형이 미쳐서 첫날부터 소장인 것 마냥 굴었던 건 아니다. 첫날부터 그렇게 했더라면 소장도 어이가 없어서 나오지 말라고 선을 그어버렸을 것이다.
“형이 여기 분위기 많이 바꿔놨어, 처음에는 여기 반장님들 몇몇이 형한테 반말 찍찍 뱉으면서 ‘야 이거 해라, ‘야 저거 해라’ 개무시했지.”
노가다에서는 나이가 좀 있으신 반장님들은 어린 사람이 오면 무시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요즘에는 호의적인 반장님들도 많다고 한다. 아니 내가 겪어보니 대부분 호의적이시다.)
“형 그럼 참고 계속 일하신 거예요? 근데 여기 반장님들 이야기해 보니까 다 착하시던데요?”
‘나이 드신 반장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감히 고릴라와 같은 몸짓을 보고 막 대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속으로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말을 꺼낼 순 없었다.
'그럼 그렇지 야생 고릴라가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가만히 있었을 리가!'
“바로 뭐라 했지, 초면인데 반말로 야, 너, 이거, 저거 하는 게 맞냐고 성질냈지. 아닌 건 아니니까 확실하게 해야 돼 그래야 반장도 소장도 함부로 못 대해”
그날 이후부터였다고 한다. 다른 공정의 반장들이 오면 소장은 항상 대웅이형을 꼭 소개해주었고 한 달을 넘게 별 다른 마찰 없이 반장님들하고 대웅이형은 조용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대웅이형은 항상 소장이 시키는 일들은 완벽하게 해냈으며 시키지도 않은 일 또한 직접 찾아서 하니 소장도 딱히 귀찮게 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대웅이형은 고릴라도 고릴라지만 충성을 다하는 군인과도 같았다.
‘해야 되는 일인가?’ 싶으면 소장한테 가서 허락 맡고 일을 진행했으며 ‘해야 하는 일이다’ 싶으면 곧바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 한... 짬이 좀 찬 일병 말 정도는 되어 보였다.
그런 대웅이형 덕분에 나름 일은 편하게 했지만 캐릭터에 걸맞는 사명감? 인지는 몰라도 일의 강도를 뽑아냈기에 솔직히 힘들었다 많이 힘들었지만 따라오는 뿌듯함에 취해서인지 퇴근이 좋아서였는지 집 가는 길은 늘 가벼웠다. 강도를 뽑아낸 몸을 이끌고 편의점에서 사서 마시는 에너지드링크는 잠들기 전 맥주보다도 쾌락의 강도는 강했다.
대웅이형은 내가 이 배경에서 인정한 대단한 사람이었다. 어딜 가서도 이쁨 받고 어디에서도 환영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하고 누구보다 현장에 자신의 땀을 몇 배는 더 바쳤을 것이다.
3주라는 시간을 같이 보내고 우리는 흩어지게 되었다. 어떤 현장에서 볼 지는 모르겠지만 이 현장치고는 오래 만난 인연이라 그런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전에 우리는 금세 다른 현장에서 또 만나고야 말았다.(끈질긴 인연이구나)
나름 호흡을 맞춰 봤던 우리는 새로운 현장에서도 빠르게 적응했고 서로 의견을 내고 이끌었으며 항상 에너지드링크를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3주라는 시간이 다시 흘렀고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다음 현장에서 만날 약속을 하려던 찰나 대웅이형은 내게 작별을 알렸다. 이후 나는 대웅이형을 다른 현장에서는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내게 제안을 건넨 형은 나의 조심스런 거절이 무색하게 웃으며 흔쾌히 떠났다.
대신에 형식적인 약속이 아닌 새로운 약속을 했다. '전주에 현장 잡히면 한 번 만나시죠 형님' 알겠다며 긴장과 설렘을 반반 안은 형님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버스에 올라탔다.
가끔 대웅이형이랑 쉬는 시간에 바로 앞 GS편의점에 가서 마시던 에너지드링크가 그립기도 하다. 일하다 정들었던 사람이 좋은 이유로 갔음에도 이유 모를 아쉬움과 오지랖의 뿌듯함인지 같이 땀을 바치고 빠진 땀을 채워 넣었던 에너지 드링크가 아쉬운 건지 아마 같이 마실 사람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대웅이형은 나에게 노가다라는 명칭을 또 한 번 새롭게 정의해 준 사람들 중 한 명으로 남게 되었다.
어쩌면 노가다가 아닌 내가 살아온 인생의 기억에 남을 인물들 중 한 명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