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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hayn May 09. 2022

재난의 시대

전 지구적으로 가장 보편적이며 가장 긴박한 인류의 생존 문제



재난이 숙명적인 것은 
인간이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라는 것이다.



기후위기 

개인의 실수 또는 부주의, 고의로 일어난 사고로부터 교통사고, 화재, 태풍, 해일, 폭설 등 재난의 종류는 다양하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전염병의 대유행도 가히 재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 기후 위기 Climate Crisis는 전 지구적으로 가장 보편적이며 가장 긴박한, 인류의 중요한 문제다. 인류가 직면한 위험성을 강조하고자 국제사회는 비상사태에 준하는 경고를 꾸준히 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지구는 역사상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했고, 그 결과 따뜻해진 세계 곳곳에서 극단적인 폭염이나 대형 홍수, 전례 없는 규모의 산불 등의 이상 기후가 발생했다.




아시아

범 지구적 위기임에도 기후 위기는 아시아에서 파괴력이 더 크다. 지리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적, 제도적 장치의 부재로 대처가 어렵고, 재난 이후의 피해 복구도 원활히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 재난의 38%가 아시아에서 발생하지만 전체 피해자 중 90%가 아시아인에 해당한다. 재난은 과거 아시아의 상처들을 더욱 곪게 하고 경제적 몰락을 촉진하여 재기불능 상태의 굴레에 빠지게 한다. 아시아의 서사는 재난 앞에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더욱 복잡해진다.


Climate Risk Index 2019, Germanwatch


국가별로 보면 2005년부터 2014년 사이에 기후변화 관련 재해 발생은 필리핀이 가장 많았으며(167건), 그다음이 인도네시아(95건), 베트남(72건), 방글라데시(57건)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기후 관련한 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미얀마가 가장 많고(138,760명) 그다음으로 필리핀(17,849명), 방글라데시(7,219명), 파키스탄(6,477명)이 뒤를 따르고 있다. 기후 관련한 재해로 인한 전체 피해자는 필리핀이 가장 많으며(97,521,885명) 그 뒤를 파키스탄(44,431,785명), 방글라데시(42,013,516명), 에티오피아(22,216,469명)가 따르고 있는데 24개 중점협력국 중 주요 피해(빈도수, 사망자, 피해자 수 모두 고려)는 아시아 지역이 다른 지역 보다 훨씬 많이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홍은경 (2016), 개도국의 기후변화 취약계층에 대한 논의. 국제개발협력 Vol. 11, No. 486. 73-96.




복잡성

아시아의 복잡성 만큼이나 기후 재난은 여러모로 복합적인 문제다. 단순한 기온 상승을 넘어 인간과 자연, 부유한 국가와 개발도상국, 국제적 힘의 관계 등 다양한 요소가 상호적으로 작용한다. 또한 현실과 이상 사이 균형을 맞추며 모순과 합리성 사이 간극을 조율해야 한다. 발생 주기나 강도, 지속 시간 등이 매우 불규칙해 예측이 어려운 엘리뇨처럼 해결 방법 또한 단순하지 않다.


Hans Keune, A healthy turn in urban climate change policies; European city workshop proposes health 




인간-자연

재난은 인간으로부터 인간에게 향한다. 세계는 나를 기준으로 설정된다. 나를 둘러싼 환경은 나로부터 인식되고 만들어진다. 지금의 위기는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지배했는지 말해준다. 인간은 자연을 대립항에 두고 착취의 대상으로 여겨왔다. 자연 식민의 역사가 인간에게 위협으로 돌아온 것이다. “재난이 숙명적인 것은 인간이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라는 것이다.”라는 말은 인류의 비극을 잘 드러낸다.


Hermann Josef Hack, “Globale Soziale Plastik”,




식민

경제적 선진국들은 자연과 대륙, 인간을 선점하며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그들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 자본주의와 식민주의는 인간과 자연의 착취를 그 근본에 두고 있으며 그 결과 우리는 기후 위기를 겪게 되었다. 해결 방법 또한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된다. 소위 말하는 강대국이 주축이 된, 세계 리더들의 “해결책”은 후기 식민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세계기상기구 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가 <지구기후보고서(2015~2019)> 말미에 "기후변화가 식량 안보, 보건, 인구 이동 등에 미치는 영향은 특히 개발도상국에 집중될 것이다."라고 지적한 대로 그들은 산업 쓰레기들을 ‘세계의 다른 곳 elsewhere in the world’, 즉 ‘개발 도상국 developing world’으로 배출하고자 한다. 그러나 정작 폐기물을 책임지게 되는 국가들은 개발이 덜 된 만큼 쓰레기 생산에도 소극적이었다. 강대국들의 명석한 해결책은 결국 저개발국에 대한 식민 행위와도 일치한다. 


Brighton에서 UK Student Climate Movement (UKSCN) 소속 학생들이 시위하는 모습.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해결 방법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강대국이 부스터 샷을 맞고 파티를 즐길 때 백신을 구하지 못한 국가의 국민들은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지구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서, 코로나19의 종식을 위해서 백신과 치료제의 공평한 분배가 이뤄져야 한다.


독일의 사회과학자 하랄드 벨처 Harald Welzer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문제로 가난한 나라들이 심각한 고통에 처해 있으며, 세계적 갈등은 새로운 유형의 잠재된 폭력성으로 전쟁이 야기될 것이다. 과거 인류의 재난이 전쟁이었다면 현재 인류의 재난은 기후변화이다."




위기를 기회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 위기는 소재로서 소비된다. 기후 위기를 새로운 산업으로 인식한 기업들은 재난을 기회로 삼아 새로운 매출을 창출한다. 유행에 합류하기 위해 앞다투어 ‘그린 워싱 Green-washing’을 한 기업들은 친환경의 탈을 쓰고 시장에 침투하여 시장을 교란시킨다. 

"석유 생산 대기업 셸은 자사를 풍력발전소로 광고하며, 코카콜라는 가난한 나라에서 모든 샘물이 마를 때까지 퍼 쓰면서 자사를 비축된 세계 지하수를 보호하는 주인공이라고 표현한다. 몬산토는 유전자를 조작한 씨앗과 독성 있는 살충제까지 판매하지만 자사를 기아와 싸우는 데 기여한다고 여긴다. 화학업계의 대기업 헨켈은 에너지업계의 거물들과 손잡고 핵발전소와 석탄 화력발전소가 유지되도록 애쓰면서도 풍력으로 움직이는 터빈에 “재생 에너지에 중요한 기여를 합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인다. 유럽에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전기 회사 RWE는 숯가마가 생물종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유인즉 발전소의 냉각탑에 새가 둥지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스타벅스 코리아가 진행한 <리유저블 컵 데이>는 그린 워싱의 아주 좋은 사례다. 그들은 환경보호를 위해 새로운 플라스틱 컵 100만 개 이상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술의 대응 

정부나 사회 같은 큰 단체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확신을 갖고 합의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세계의 리더들이 “blah blah blah” 하며 기후 변화의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을 때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현실의 복잡한 상황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예술은 급진성을 특징으로 경계 없는 상상을 펼친다. 다음의 사례들을 통해 미술의 대응 방식을 알아보자.


Greta Thunberg mocks world leaders in 'blah, blah, blah' speech, BBC News, 2021. 9. 29.







Hermann Josef Hack

독일 작가인 하크는 Global Brainstorming Project의 설립자로 미술의 현실참여를 촉구하며  “오직 예술만이 기후 변화를 중단시킬 것이다. Only art will stop climate change.”를 슬로건으로 내세운다. 그는 기후재난의 원인을 선진국들의 앞다툰 세계화로 보고 그들의 안일한 태도를 미술적 대응으로 비판한다. <난민캠프>는 그의 대표적 실천으로 공공장소에 작은 크기의 텐트를 설치하여 결정권자들 앞에 재난 난민들을 소환하는 것이다. <난민캠프>는 그 영역을 세계로 넓혀가며 참여자들을 독려해 토론하고, 지구 안의 존재로서 우리의 역할을 일깨운다. 그는 설치와 행동, 회화와 슬로건이 병행되는 총체 미술을 시도한다.


Designboom, climate refugee camp’ by hermann josef hack, 2009



Ruben Orozco Loza

스페인 빌바오의 네르비온 강에 거대한 여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멕시코의 루벤 오조르코가 설치한 작품 <Bihar>는 바스크어로 ‘내일’을 뜻한다. 얼굴 조각은 강물에 잠겼다 드러나기를 반복하며 시민들에게 환경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도록 메시지를 보낸다. 밤사이 설치된 조형물에 시민들은 놀랐고 휴대폰을 꺼내들며 저마다 관심을 보였다. 한국의 여러 매체에서도 이 작품을 소개했는데, 아마도 독자들의 클릭을 유도하기 좋았던 소재가 한몫을 한 것 같다.


@rubenorozcoloza

전문가들은 미술이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을 촉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론에 영향을 주기 위해 매체를 사용해라.’, ‘황금 시간대를 공략하라.’, ‘젊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라.’ 와 같은 정치적 전략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루벤의 작품은 이 전략에 꽤 부합해 보인다.  

인터넷 갈무리



Olafur Eliasson

비슷한 전략으로 대중의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모험을 한 작가가 있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Ice Watch>를 제작하기 위해 30개의 빙산을 그린란드 피오르에서 런던으로 가져왔다. <Ice Watch> 는 지구 온난화로 세계에서 가장 큰 빙상 중 하나에서 분리된 얼음덩어리를 바다에서 인양해 런던의 관람객들에게 자연의 경고를 직면하게 했다. 런던의 관람객들은 테이트 모던 앞에서 실시간으로 녹는 빙하의 조각을 만져보며 자연재해가 남의 일이 아닌 바로 우리의 일임을 깨닫고, 재난과 일상을 연결시킨다. 그러나 그린란드에서 유럽의 도시로 무거운 얼음조각을 운송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었다. 비단 이 작품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와 작품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지구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Olafur Eliasson’s London Ice Watch Installation. Photo by Matt Alexander/PA Wire.


Workers loading ice at Nuuk Port and Harbour, Greenland, for OLAFUR ELIASSON’s Ice Watch (2014). Pho



Cai Guo-Qiang

차이 구어 치앙은 화약 gunpowder 드로잉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에게 화약은 그의 조국, 중국이 이룩한 역사적 성취에 대한 존경이면서 억압적인 정치, 문화적 상황을 은유한다. 또한 굉음을 내며 터지는 폭죽은 인간이 자연에 저지른 횡포와 전쟁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는 착취의 흔적을 쫓아 인간의 어두운 역사를 기록하고 미래의 희망을 그린다. 화약 드로잉은 화약과 퓨즈, 스텐실 판지 등을 바닥에 펼쳐진 용지 위에 놓고 폭발시킴으로써 그 흔적을 기록하는 행위다. 화려한 폭죽으로 하늘을 수놓는 작업들 또한 파괴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MoCA, Cai Guo-Qiang - Drawing with Gunpowder, 2012.

또한 그는 동물 복제품을 활용한 설치작업으로 자연 파괴와 가파른 멸종 속도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다.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나무배에 99조각의 동물 복제품을 채워 띄운 <The Ninth Wave>는 2013년 황푸강에 떠내려온 16,000마리의 돼지 사체를 상기시키며 심각하게 오염된 중국의 환경을 드러낸다. <Tiger>는 공포에 질린 동물을 폭력의 피해자로 묘사하여 인간의 공격성을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Mystery Circle: Explosion Event for MoCA, Los Angeles, 2012.



City 2030: Climate Change and Clean Energy

350.org는 글로벌 풀뿌리 운동을 통해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국제 환경단체다. 2017년 베트남 지부는 환경 문제에 대해 공공의 관심을 촉구하고자 호치민시에서 벽화 대회를 개최했다. 기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지만, 그것을 나의 문제로 잘 연관시키지 못하곤 하는데, 대회의 수상자 중 한 명인 Henna는 이번 대회를 통해 자신의 마을에서 환경 문제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벽화를 통한 선전은 마치 중세 시대 종교를 전파하기 위해 제작했던 성화나 민중미술의 프로파간다를 떠올리게 한다. 신자를 계몽시키기 위해, 또는 특정한 방향으로 시민을 선동하기 위해 제작되었던 과거의 벽화들은 무관심하고 무지한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애석하게도 지금의 벽화의 목적도 옛날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Tuong Nguyen, Climate Change Art: Artists Speak Up for Climate in Vietnam 2019




몇 가지 작업을 통해 재난에 미술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미술의 역할과 목적에 정답은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거대한 재난의 담론을 ‘나’의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무관심했던 시선을 거두고 단순히 생존을 넘어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직면하게 하는 것, 그 복잡성에 숨겨진 힘의 논리를 이해하고 끊임없이 경계하게 하는 것, 무력했던 과거를 털고 작은 행동부터 시작하게 하는 것. 미술은 성실하게 자기 몫을 해내고 있다.





참고문헌

박연수 소방방재청장, 2010. 05. 12.

홍은경 (2016), 개도국의 기후변화 취약계층에 대한 논의. 국제개발협력 Vol. 11, No. 486. 73-96.

Chloe Suen, Remember when contemporary art solved the climate crisis, ArtAsiaPacific Issue 117, 2021.

글로벌 백신 공급 메커니즘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의 세스 버클리 대표는 코백스가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임을 단언하고 있다. 2020.

하랄드 벨처, 『기후전쟁』 영림 카디널, 2010, 128-135.

카트린 하르트만, 이미옥 역, 『위장환경주의』 에코리브르, 2018.

김향숙, 재난과 미술적 대응: 헤르만 조셉 하크(Hermann Josef Hack)의 기후난민 프로젝트, 한국미술이론학회, 미술이론과 현장 제 14권, 2012, 53-83.

The Guardian, 12 ways the arts can encourage climat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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