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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규 Sep 28. 2024

4-7. 외딴 가게라도 신뢰는 생명

구석쟁이 난곡동, 구직자 구하기

"안녕하세요? 거기 직업 안내하는 곳인가요?

"네. 정다운 직업소개소입니다."

"식당 일할 곳 찾는데요. 일자리 있나요?"

"찾으면 있습니다."

"사무실이 어디세요?"

"난곡동입니다."

"난곡동? 어떻게 찾아가요?"



사무실이 멀어요


보통은 구직자가 사무실에 찾아와서 계약서를 씁니다. 그래서 찾아오게 하려고 사무실 위치를 전화로 설명합니다. 


"2호선 신대방역에서 버스를 타고 세이브마트에서 내려서 50미터 정도 올라오면 수협이 있는데, 거기서 몇 건물만 더 올라오면 있습니다." 


전화기 너머 상대방의 당황하는 기색이 조금 느껴집니다. 신대방역까지는 찾아가 볼까 하다가 거기서 버스 타라는 얘기 나오는 순간부터 관심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옵니다. 그러다가 버스 내려서 걸어 올라가고 수협 어쩌고 하면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눈에 보이듯 합니다. 


처음 개업할 때는 직업소개업 사무소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 줄 몰랐습니다. 전화로 처리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모든 직장이 그렇듯이 직업소개소의 위치가 좋아야 합니다. 유리한 위치에 있어야 뛰어난 구직자를 모을 수 있습니다. 


직원이 일 나가서 열심히 안 하면 업계에 소문납니다. 그러면 업주들이 00 직업소개소에서 사람 알선받는 것을 회피하게 됩니다. 이런 험한 꼴 안 당하려면 성실한 구직자를 선별해야 합니다. 


선별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면접입니다. 처음 전화 왔을 때 사무실로 오게 해서, 외모도 보고 느낌도 느끼고, 여러 가지를 물어보다 보면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어느 정도 측정 가능해집니다. 


그런데 난곡동에서는 그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난곡동은 관악산 골짜기에 있는 동네입니다. 예전에는 빈민촌으로 유명했던 곳입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난곡동을 검색해 보면 개발 이전 난곡동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많이 발견됩니다. '난곡동의 사계' 뭐 이런 식의 제목으로 어렵던 그 시절을 회상하는 영상들입니다. 


사무실 주소는 법원단지길 34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알려주면 경우에 따라서는 엉뚱하게도 산 쪽 골목 끝으로 안내해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벌써 몇 명이 엉뚱하게 골목 끝에서 내려서 고생한 경험이 있습니다. 


혹시 지번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구청에 문의를 했습니다. 

"법원단지길 34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면 이상한 곳으로 안내하는데 지번 부여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구청직원의 답은 잘못 부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공무원이 아니라고 하면 그러려니 해야지, 방법은 없습니다. 


사업 초기 급한 마음에 면접 없이 알선도 해봤습니다. 사업 초기인 그때는 경험이 없어서 사람을 선별하지 않고 연결되는 대로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 큰일이 생겼습니다. 아침 10시에 사람을 보내주기로 했는데, 10시 10분경에 전화가 왔습니다. 오기로 한 사람이 안 온다는 것입니다. 너무 놀랐습니다. 급하게 가기로 한 분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런. 불통입니다.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 않았습니다. 


더 좋은 다른 업체로 갔는지, 자느라고 못 받는 건지, 아니면 갑자기 귀찮아졌는지, 이유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 수 없습니다. 들은 얘기가 없으니까요. 


직업소개업을 하면서 여러 애로사항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급할 때 불통'입니다. 보통 때는 전화가 곧잘 되던 사람도 본인이 불리한 상황일 것 같으면 전화를 안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이 곤란한 일이라도 본인이 책임질 일이 있으면 일단 전화를 받아서 상황을 해결하려고 할 것 같은데, 의외로 사회에는 안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책임지기


통화가 안된다는 얘기를 업체에 전화해야 하는데,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화를 낼게 뻔하니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래도 저마저 도망칠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다짐을 새삼스레 했습니다. 


'책임을 회피하지 말자. 욕을 먹더라도 책임질 때 도망가지 말자.'


 책임져야 할 때 책임지는 게 주변의 신뢰를 얻는 비결입니다.  책임질 때 책임지는 게 사업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하기로 약속된 사람이 안 오니 그쪽 업체는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욕도 많이 먹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습니다. 


곰곰 생각하다가 카카오에서 약간의 선물을 골라서 전송했습니다. 너무 비싸면 부담 느낄 테니 안 비싼 걸로 보냈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수를 만회하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걸 왜 보내냐고 거절했습니다. 그래도 취소 않고 버텼습니다. 그랬더니 결국 수락했습니다. 수락했다는 것은 조금이나마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뜻이라고 판단되어, 너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후 지금은 신뢰할 만하지 않으면 알선해주지 않습니다. 크지만 허점투성이 회사보다 작더라도 신뢰 가는 회사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꿸 수는 없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구직자는 결국 회사에 손해를 줍니다. 신뢰를 확인할 수 있는 절차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은퇴 후 창업은 재도전이 없습니다. 인생 마지막 도전입니다. 실수해서는 안됩니다. 성장 속도는 늦어도 됩니다. 어차피 속도를 빨리 올릴 필요도 없습니다. 꾸준히 10여 년 운영하는 회사면 만족합니다. 



노화는 자연의 법칙이며, 그 법칙 안에서 우리는 지혜를 얻게 된다

- 피터 드러커 (미국 미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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