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으니까 중독입니다 : 브런치북을 시작하며

by 윤해원

옛날 얘기를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부모 탓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할 나이도 이젠 지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아예 안 할 수는 없다. 어렸을 때 내가 놓여 있었던 환경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게 사실이니까. 아무 일도 없었는데 하루아침에 짠, 하고 중독자가 되는 게 아니니까.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엄마가 없었다. 술만 마셨다 하면 때리는 남편을 견디고 또 견디던 엄마는, 어느 날 문득 집을 나가버렸다. 나에게는 '갑자기'였지만 엄마에게는 '갑자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는 다신 돌아오지 않았고 아빠의 폭력은 나에게로 옮겨 왔다. 참 많이도 맞았다. 엄마가 아빠를 견딘 세월보다 내가 아빠를 견딘 세월이 더 길다.


아빠는 자상함과 폭력이라는 양면으로 이루어진 동전이었다. 내 의지와는 관계 없이 언제든 위로 던져져 앞면 또는 뒷면을 무작위로 보여주는 동전. 앞면이 나오면 아빠는 친근하게 장난을 걸고 다정하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되었고, 뒷면이 나오면 무자비하게 나를 구타하는 사람이 되었다.


결과를 짐작할 수 없는 동전 던지기에 비유해야 할 만큼 아빠는 예측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화내는 이유도, 욕을 하는 이유도, 나를 때리는 이유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행동 하나하나를 할 때마다 불안한 마음부터 앞섰지만 '조심'한다고 해서 아빠의 뜻모를 분노를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언제 아빠가 난리를 피울지 모르니 항시 움츠러든 상태로 있게 됐다.


가장 큰 문제는 아빠의 '술 교육'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술을 마셨다. 주도(酒道)를 가르친다는 명목하에 아빠는 열두 살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까지 꾸준히 술을 먹였다. 처음에는 아빠가 반주를 할 때 소주를 한 잔씩 받아 마시는 정도였지만 음주량은 점점 늘어갔다.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에는 아빠와 대작을 하며 소주 두 병쯤은 거뜬히 해치울 수 있을 만큼 술에 익숙해져 있었다.


아빠는 술을 잘 마시는 나를 보면서 뿌듯해했다.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고, 그래야 나중에 실수를 안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빠는 술만 마시면 '실수'를 하는 사람이었는데 술을 아버지한테 못 배우고 아무렇게나 배워서 그런 거라고 내게 설명하곤 했다.


스무 살의 나는 이미 알코올 중독자였다. 남들은 이제 갓 출발선에 섰을 시기에 난 너무 멀리까지 와 있었다.


서른 살에는 술 때문에 회사에서 잘렸다. 하루가 다르게 몸이 나빠져가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각종 중독행위를 하느라 모아둔 돈도 0원, 정말로 0원이었다. 저축은커녕 빚만 산더미처럼 있었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이 된다고 최승자 시인은 말했다. 이제는 모든 걸 바로잡아야 할 시간이었다.


이 책의 초반부는 술에 관한 내용이 중심일 것이다. 하지만 난 술에만 중독된 것이 아니었다. 중독의 매커니즘은 동일하기에, 어느 한 가지에 중독이 되어본 사람은 다른 것에도 쉽게 중독된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실패의 기록이다. 내가 중독이라는 덫에 걸려 얼마나 자주 넘어졌는지 이야기하는 연대기이다.


숱한 중독의 고개를 넘고 넘어 마침내 깨끗하게 치료되는 결말을 기대한다면 허무할 수도 있다. 어떤 중독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완치'란 없고 회복만이 있을 뿐이며, 그 회복조차 점진적이다. 때로는 회복되는 속도가 너무 더뎌서 내가 영원히 망가져버린 건 아닌지 의심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은 나 자신을 향한 끝없는 의심과 자꾸만 고개를 드는 불신 속에서 씌어졌다.


내가 넘어져 뒹구는 과정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답답하고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중독 환자 스스로도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서 괴로워하는데 타인이 보기에는 오죽할까. 혹시 당신이 중독자의 가족, 친구, 연인이라면 환자를 애써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해할 수 없으니까 중독인 것이다. 내 글을 읽으면서도 답답한 바보천치라고 마음껏 욕해도 좋다.


만약 당신이 중독자라면, 나도 당신이 겪는 일들을 똑같이 겪어왔고 지금도 겪고 있으니, 당신의 문제는 당신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내가 당신을 당장 중독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별난 게 아니라고, 당신의 의지나 자제력이 약한 게 아니라고, 당신이 겪고 있는 건 '증상'이라고 말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평범한 가정집에서 중독 환자들이, 그리고 중독 환자의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책이 운좋게 그들에게 닿아 조금의 위로라도 건네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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