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아빠와 똑같은 인간이 되어갔을까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아빠의 '유전자'

by 윤해원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모여서 술을 마신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 알코올은 일탈이었고 해방이었다.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고 있다는 감각이 개운하고 상쾌했다.


아무리 알코올에 허용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한들, 밖에서 어른을 대동하지 않고 술을 마시는 것까지 아빠가 허락해줄 리는 없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부모님 눈치를 봐야 했으니 그런 술자리는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우리끼리 술을 마실 땐, 당연히 한 사람도 빠짐없이 취하는 게 목적이 되었다. 언제고 마실 수 있는 술이 아니었으므로.


우린 다 마시지도 못할 만큼 많은 양의 술을 사서 비어 있는 친구네 집에서 몰래 마셨다. 술은 항상 남았다. 아무도 몸을 '사리지' 않았는데도 애초에 너무 욕심을 부려 많이 산 탓에 술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폭음하는 건, 마치 혈관에 피가 아닌 다른 것이 흐르게 만드는 것처럼 강렬한 경험이었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 술을 마시면 더 즐겁게,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다. 술을 마시면 내가 나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다. 더 용감해질 수 있다. 평소라면 못 할 행동, 평소라면 못 할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바로 술의 나쁜 점이었다.


술에 취하면 흥이 오르고 마음이 들뜨다가도, 어느 순간부터는 이유 없이 화가 났다. 분노가 치밀어올라 몸이 떨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술판을 뒤집어엎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아무 잘못도 없는 친구에게 욕설을 하고 독한 말을 쏟아부었다. 말리는 친구에게 주먹을 날리거나 발길질을 한 적도 많다.


위 문단을 쓰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가 정확히 무슨 행동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술주정뱅이들에게는 블랙아웃이라는 아주 편리한 도피처가 있다. 일명 '필름이 끊겨서' 기억이 안 나는 상황 말이다. 그들은 실제로 기억이 날아갔을 수도 있고, 사실 모든 걸 선명하게 기억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척할 수도 있다.


기억이 나든, 나지 않든, 사람들은 술주정뱅이를 용서해준다. 술에 취해 '실수'한 거라고 생각하며.


나도 그런 식으로 숱하게 용서받았다.


좋았다.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용서받는 일이. 친구들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것이 기뻤다. 만약 처음으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렸던 날에 친구들이 나를 비난했다면, 모두 나를 떠나갔다면 부적절한 음주 습관을 교정할 수 있었을까?


나는 용서받는 것에 중독되었고, 만취하여 공격적으로 행패를 부리는 일은 스물둘 무렵까지 지속되었다.




내가 저지른 짓들을 명확한 이름으로 부르자. 주취폭력이라고.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 초반까지 나는 왜 주취폭력을 상습적으로 일삼았을까?


아주 뻔한 말들로 그 이유를 가늠해볼 수 있다. 아빠는 술만 마시면 나를 때리는 사람이었고 때로는 맨정신으로도 때렸다. 알코올과 폭력은 내게 한 세트였다. 술을 마시면 내면의 공격성이 드러난다는 건 내가 경험을 통해 깨우친 상식이고 진실이었다.


그러나 아빠와 대작하며 만취할 만큼 술을 마시더라도 내가 아빠를 때리는 일은, 당연하게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에 바로 끔찍함이 있다. 술만 마시면 '개'가 되어버리는 사람들은 오직 그래도 되는 상황 속에서만 그런다는 사실.


물론 모든 주취폭력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아빠와 나는 그랬다. 아빠는 나를, 엄마를, 할머니를 정말 심하게 때렸다. 엄마는 아빠에게 맞다가 소변을 지린 적이 있고 할머니는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날이 있었다. 식칼을 들고 마구 휘두르며 오늘 누구 하나 죽어보자는 식으로 난리를 피우는 일도 흔했지만 아빠에게는 폭력 전과가 없다. 밖에서는 그런 짓거릴 안 했다는 의미다. 가족을 상대로 한 폭력이었고 우리 중 누구도 신고하지 않았으므로 아빠의 폭력은 아무런 기록이 남지 않았다.


아빠는 우리를 '때려도 되고, 때릴 수 있어서' 때렸으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생 여자아이였던 내가 감히 아빠를 때릴 수 있었을까? 아무리 술에 떡이 됐어도 그런 쪽의 사고는 비상하게 돌아간다. 만취하여 아빠에게 주먹을 휘두른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친구들은 아빠와 달랐다. 동등하다는 것은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다. 동공이 풀린 채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싸움을 걸었다. 그 애들이 신고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른들 몰래 술을 마시다 벌어진 이 상황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으리라는 걸. 술이 가져다주는 강력한 열기 속에서 나는 폭발했다. 아빠의 폭력을 견디며 참고 있었던 모든 감정을, 그런 폭력과는 전혀 상관도 없고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던 친구들을 향해 터뜨렸다.


술에 취해 누굴 꼭 때리지 않더라도 혼자 소리를 지르며, 악을 쓰며, 욕을 하고 울부짖으며 한밤중의 주택가 골목을 걸어 귀가할 때가 많았다. 억울하고 분해서 미칠 것 같았다. 누구를 향해서인지도 모르게 화가 났다. 조용히 하라는 외침과 함께 창문을 탁 닫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도 분노에 찬 오열을 멈출 수 없었던 수많은 밤들이 있었다.


때로는 알코올에 취한 와중에도 정신이 명징해지며 섬광처럼 번뜩이곤 했다. 그런 순간이면 이런 생각에 잠겼다. 난 왜 이럴까? 이건 아빠가 나한테 하던 거랑 똑같은 짓들인데, 왜 나는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아빠와 똑같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대부분의 딸들에게는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내게는 아빠가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빠를 사랑했다. 가정폭력범을 사랑하다니 이해할 수 없다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나를 버리지 않는 아빠를, 나를 죽이지 않는 아빠를 사랑했다. 지금보다 더한 고통을 내게 안겨줄 능력이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아빠의 은혜에 늘 감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빠는 내가 결코 닮아서는 안 되는 무언가였다. 술버릇뿐만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아빠는 한심한 인간이었다. 사춘기 특유의 들끓는 마음 때문에 가끔 할머니께 소리를 지르고 말았던 순간에, 할머니가 '지 애비 닮아서 승질이 개떡같다'고 하면 그건 어떤 말보다도 강력한 비수가 되어 내 심장을 찔렀다.


나는 아빠와 정말 똑같이 생겼다. 눈썰미가 없는 사람이라도 부녀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어딜 가든 옆에 아빠가 있으면 꼭 듣게 되던 '어머, 아빠랑 똑같이 생겼네'라는 말은 마치 저주처럼 느껴졌다.


난 그 정도로 아빠와 비슷한 딸인 것이다. 물론 아빠에게도 좋은 점이 있고, 나도 그런 부분들을 물려받았을 테지만, 아빠의 나쁜 점까지 내 행동 속에, 표정 속에, 말투와 사용하는 단어 속에 깃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끔찍하게 두려워졌다.


어릴 때 자주 꾸던 꿈이 있다. 꿈 속에서 나는 아름다운 거울을 발견해 집으로 가지고 온다. 벽에 걸어놓고 보니 거울은 몹시 지저분해서 아무것도 비추지 못한다. 나는 거울을 닦는다. 수 분 내지는 수 시간에 걸쳐 부지런히 닦아낸 거울엔 내가 아니라 아빠의 모습이 비친다. 나는 그게 아빠라는 걸 꽤 오래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다 거울을 부수고 도망친다.


아빠는 나를 '유전자'라고 부르곤 했다. 우리 유전자, 넌 하나뿐인 내 유전자잖니. 그 말은 내게 공포와 불안을 불어넣는 주문이었다. 반드시 적중한다는 델포이의 신탁 같았다. 난 아빠와 똑같은 어른이 될 거야. 아빠와 똑같은 선택을 하고,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면서, 결국 자기 자식에게도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이 될 거야. 난 망할 거야. 아빠가 자길 망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 삶을 망칠 거야. 난 아빠의 유전자니까.


'결코'라거나 '절대 안 돼'라는 마음속 선언은 오히려 나를 그쪽으로, 가지 말아야 할 길로 더더욱 이끄는 듯했다.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순간마다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라는 걸. 이건 아빠가 내 나이에 저질렀던 실수와 완전히 똑같다는 걸. 그러나 알고 있다는 게 도움이 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지 기분만 나빠질 뿐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내면의 헛똑똑이 현자 양반이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니까, 그럴 만해서 그랬다는 거야? 살아온 인생이 너무 힘들어서? 엄마는 니가 꼬마일 때 집을 나가버렸고 그 후로는 부모답지 못한 부모 밑에서 고통을 견디며 살아왔으니까. 괴로웠으니까. 넌 학대 피해자였으니까 개차반처럼 굴 수밖에 없었다고 합리화 중인 거 맞지?


반쯤은 합리화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반쯤은 진실이다. 알코올 중독에 주취폭력을 휘두르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똑같은 어른이 되는 걸, 우리는 실제로 흔히 보곤 한다. 그런데 한 가지 기억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렇게 자라지 않는 아이도 많다는 것. 비슷한 환경 속에서도 어떤 아이는 결코 부모의 잘못을 대물림하지 않으며, 자기가 받지 못한 사랑을 가족과 타인에게 베푸는 어른으로 자란다. 다만 나는 그렇게 자라지 못했다.


아빠의 폭력, 어린 나는 그걸 끔찍이 싫어했지만, 그건 내게 가장 익숙한 감정 표현 방식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우리 집 사람들은 '대화'할 때면 항상 서로를 향해 짜증 섞인 목소리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곤 했다. 돌이켜보면 그것도 폭력이었을 것이다. 주먹으로 때려야만 폭력인 게 아니니까.


한편 '절대로 아빠처럼 되지 않겠다'는 공허한 다짐 속에는 아빠만이 있을 뿐, 정확히 어떻게 행동하겠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어린 시절 내내 나는 오로지 아빠만을 생각하면서, 지긋지긋한 아빠의 행동만을 끝없이 되새김질하면서 시간을 낭비해온 셈이다.


그러나 이건 인생의 한 시기를 지나온 후 개인적으로 덧붙여보는 주석일 뿐, 정말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째서 술주정뱅이가 되어야만 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중요하지도 않다. 내가 알코올 중독이든, 한때 습관적으로 술자리에서 물건을 집어던지고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던 사람이든, 과거는 중요하지 않고 오늘과 그 다음만이 중요하다. 지금 내가 나아지기 위해 기울이고 있는 노력과 내일의 내가 새롭게 해나갈 일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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