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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Sep 17. 2021

[아이의 사생활] 두 번째 반장선거에 나서며...

"반장이 되면 1000원! 떨어지면 2000원!"

 천진난만하던 우리 첫째가 3학년이 된 지도 반학기가 지났다.

제법 장난기가 사라진 얼굴에선 의젓함도 묻어 나온다.

 학교에서 공지가 날아왔다. 바로 2학기 반장 선거 계획이었다.

1학기 때 추억(?) 떠올라서 가슴이 콩닥거렸다.


"반장 선거 나갈 거야?"

가슴을 졸이며 딸아이에게 묻자,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이번엔 꼭 반장이 될 거야."

 

 "너 그럼 반장선거 때 할 공약 같은 거 생각해봤어?"

 "응... 사실 나 계속 반장 선거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어."

 딸아이가 반장선거에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자, 너무 가볍게 안 나가길 바란 게 아닐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럼 생각해 둔 공약이 뭔데?"

 "음.... 일단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해 줄 거야."


 "음.... 그거 말고 다른 건?"

 "음...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지낼 거야."

 "음... 그거 말고는?"

 "음..... "

 아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을 잇지 못했다.


 "반장 선거 나가면 내가 왜 반장이 되어야 하는지, 반장이 되면 우리 반을 어떻게 하겠다. 그런 공약들이 있어야지. 그냥 친하게 지내자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같은데...."

 영어 숙제를 하던 딸과 반장선거에 나갈 공약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지키지 못할 공약 같은 건 안 쓰는 게 좋아. 네가 실제로 지킬 수 있는 것 중에 친구들에게 와닿을 수 있는 게 좋은데..."


 아이의 장점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우리 딸의 장점은 착하다. 친절하다. 모든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아이와 엄마는 반장선거에 나갈 문구를 함께 고민하고 작성했다.


 1차 원고가 끝나자 딸에게 낭독을 시켰다.

 "한 번 해볼래?"

 딸은 정리된 종이를 받아 들고 한 줄씩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1학기 때 반장선거에 나갔던 이야기를 동네 언니와 얘기한 적이 있었다.

"친한 친구들도 있다길래 걱정하지 않았는데... 진짜 0표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애들이 얼마나 냉정한데. 친하다고 찍어주지 않아. 공약도 보고, 꼼꼼하게 뽑아. 일단은 반장 선거할 때 목소리는 무조건 크고 또 롱 또 롱 하게 하는 게 중요해"

 선배 언니의 조언을 꼼꼼히 분석한 다음 딸에게 전달했다.

 "첫째, 둘째, 할 때는 강조를 하면 어떨까?"

 원고를 3번 정도 낭독시켰더니 딸은 이내 관심이 떨어졌다.

 "반장이 되고 싶으면 열심히 해야지."


  내가 어릴 때 반장 선거 나갈 때는 나 혼자 원고를 쓰고 혼자 4~5번 외울 정도로 낭독을 했는데 반장은 꼭 되고 싶다던 딸은 천하태평이었다.

 '그래.. 안되면 어때. 0표만 면해라.'


1학기 때는 꼴랑 5줄이었던 자기소개를 이번에는 2~3배로 늘렸다.

또 반장선거에 0표가 나왔다고 상처 받지 말기를 바라며

가장 반장이 되었으면 하는 사람(?)을 뽑기로 하고 굳게 약속을 했다.


"반장 되면 1000원!"

"와 진짜?"

아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반장 떨어지면 2000원!"

"어? 왜?"

 아이의 표정이 아리 송송 해졌다.

"반장이 되면 반장도 되고, 1000원도 받으니 기분이 좋고, 반장이 떨어지면 상금이 2000원이니까 기분이 좋고 어때?"

 "칫, 그래도 난 반장 할 거야."

 동생과 게임을 하던 첫째가 루미큐브 조각들을 정리하며 말했다.

 "왜. 떨어지는 게 더 좋아. 2000원이잖아. 2000원이 더 많아."

 7살짜리 둘째가 거들었다.


 "아니야. 그래도 난 반장 할 거야."


 반장을 할 정도로 야무지지도 똘똘한 편도 아니지만 마음만은 진심인 반장 후보.

1학기 때 펑펑 울던 얼굴이 떠올라서 2학기엔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1학기 땐 그저 나가보라고 말만 했을 때도 부끄러운 듯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던 첫째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을까?


"엄마, 엄마가 장난쳐서 기분이 별로야."

"엄마가 장난을 했어?"

"응.. 회장 되면 1000원, 떨어지면 2000원 이랬잖아."

"엄마, 장난치는 거 아니야. 네가 떨어져서 울고 속상할까 봐 그렇지."


마음만 진심의 딸의 반장 도전... 

어찌 됐든 나는 내일 2000원을 들고 딸의 귀가를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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