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여기뿐일까. 어쩌면 나갈 수도 있지. 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 김서는 한 걸음도 더 딛을 수 없었다. 몸뚱이가 장벽이었다. 그러나 이 벽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남김없이 던진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목소리에 김서는 떠밀렸었다. 그 목소리는 노랗게 타들어갔고 그럼에도 사무치게 천진했다.
오, 이런 원리를 생각해 봤다. 우리가 아직 외계인이 살고 있는 행성에 닿지 못한 건 플루토늄 같은 핵연료에 너무 의존해서다. 핵연료를 믿으면 핵연료가 통하는 곳에나 갈 수 있을 뿐이지. 우리는 마음과 몸이 있는 곳에 닿고자 한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우리와 다른 외계인을 발견하고 싶지 않다. 우리 같은 사람을 찾고 싶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러니 내가 연료가 되어야 한다.
김서는 밧줄을 쥐었고, 검게 흘러내리는 언니의 머리칼이 의자 등받이에 짓눌리도록 밧줄을 끝까지 감아 매듭을 조였다. 언니는 꼿꼿이 앉아있었다. 김서는 지문인식기에 손을 대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동안 심장소리가 귓구멍을 벌렸다 오므렸다 제멋대로 울려 퍼졌다. 김서는 발작적으로 되돌아섰다. 닫힌 철문이 막아 세웠다. 언니와 자신을 가르는 한 겹이었다. 김서는 똑바로 주시했다. 철문이 눈앞에서 점도 높은 입자들의 배열로 바뀌어갔다. 멀어지고 끈끈히 수축해 들어가는 입자들. 심장을 죄는 기이한 점탄성이 느껴졌다.
새들의 재빠른 움직임에서는 점탄성이 느껴져.
공원을 산책하던 언니가 말했었다. 나무줄기를 오르내리는 기민한 것들, 딱따구리나 청설모, 참새 같은 생명들은 고무의 탄력과 진액의 점성이 동시에 느껴지는 움직임을 보인단 거였다. 언니는 그러한 점탄성이 개개의 생명체가 공기와 맺고 있는 관계 내지는 친밀도와 연관이 있다고 추론했다.
그에 비하면 인간의 동작은 푸석한 느낌이야. 자연 그대로의 탄력적이고 끈기 있으면서 부드러운 성질을 되찾아야 해.
언니는 진지하게 말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피부 탄력은 잃어버리더라도 마음의 탄력만은 잃지 말자.
천진한 어조였다. 콕콕콕콕, 딱따구리가 딱딱한 나무껍질을 쪼는 듯한 감각이 두 무릎을 파고들었다. 김서는 눈을 감고 철벽에 이마를 붙였다. 쇠의 찬 기운이 전신에 퍼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모든 감각이 무뎌져 있었다. 김서는 이마를 뗐다. 인터폰에 대고 감압실을 개방하라고 지시했다. 희미하게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릎이 꺾였다.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언니는 이곳을 ‘흑주’라고 불렀다. 본딧말은 ‘흑암우주’였다. 알지 못했기에 '흑암'이었고, 빠져나갈 수 없는 한계였기에 '우주'였다. 이곳은 관측한 것과도, 알려진 것과도 많이 달랐다. 흑주는 뚫려 있지 않았다. 지구탈출속도에 이른지 플랑크시간 이내에 돌연 막혀버렸다. 핵연료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대원들은 점점 의욕을 잃어갔다. 조종간과 싸우던 조종사도 이젠 양손을 깍지 껴 뒤통수를 받친 채 앉아서 잠만 잤다. 애써 가야할 이유라도 있냐며 한숨 쉬는 대원들도 여럿이었다. 김서는 안대만 한 유리 너머로 흑주를 내다보았다. 검음. 착시도 환각도 허용치 않는 검음. 보면 볼수록 이 검음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굳어지게 만드는 검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별들은? 이토록 완강한 검음을 뚫고 어떻게 그런 피 흘리는 것 같은 찬란함을 터뜨릴 수 있었지?
언니가 그들의 별이었다. 언니는 온종일 깨어있으며 환풍구 격자틀 위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썼다. 전면 유리창으로는 거의 눈길을 주지 않았다. 언니가 바라본 것은 연필심으로 그려 적는 세상이었다. 커터 칼로 심 끝을 예리하게 깎는 언니의 옆모습은 극도의 몰입으로 비장해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흑요석을 정밀하게 다듬는 호모에렉투스의 마지막 후예 같았다. 공책을 파고드는 심 끝에서 콕콕콕콕, 소리가 흘러나왔다. 날렵하고 끈기 있으면서 단호하고 집요한 동작. 언니의 이론은 그렇게 움직여간 심 끝에서 나왔고, 대원들이 귀 기울여 듣는 동한 흑주를 지워버릴 만큼 힘이 있었다. 흑주가 새로이 영향을 끼치기 전까지는.
모두가 언니의 주장을 말렸다. 하지만 흑주는 그들의 신진대사를 방해했고, 감각중추를 교란시켰으며 생리욕구마저 앗아갔다. 아무도 먹지 않았고 아무도 누지 않았다. 감정도 사라졌고 생각도 말도 나오지 않았다.
흑주는 생명을 허용치 않아.
앙상한 뼈마디를 닮은 글씨체로 언니가 말하였다. 김서는 가만히 있었다.
시도를 해야 해.
김서는 외면했다.
서!
언니가 심이 부러지도록 불렀다. 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슬 퍼런 감촉이 자신의 손목에 닿았을 때 더는 시치미를 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공책을 넘겨 한쪽 귀퉁이를 접은 뒤 건넸고 김서는 말없이 받았다.
바닥이 덜커덩하더니 몸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떨어질 때 뒤통수가 바닥을 쳤다. 충격이 셌던가. 아무리 애써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폐가 타듯이 아파왔다. 김서는 숨 쉬고 싶었다. 참으로 고대하던 덜컹임이었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속절없이 등허리로 바닥을 쓸며 미끄러져가다가 발끝이 문가에 부딪혀 겨우 멈췄다. 숨이 콱 터져 나왔다. 김서는 바닥을 짚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당장 확인해야 했다. 언니가 흑주에 변화를 일으켰다. 김서는 닫힌 문짝에 기대어 무릎을 끌어올렸다. 눈앞이 까매지며 휘청했지만 오른손을 정확히 지문인식기에 맞댔다.
조종사가 한 손으로 코를 막은 채 레이더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자 손바닥에 고인 피가 보였다. 조종사는 반대편 손가락으로 레이더망에 포착된 한 점을 가리켰다. 검은 화면 한쪽에 푸른 점 하나가 헐떡이듯 명멸하고 있었다.
이 좌표가 갑자기 나타났어.
피에 전 입으로 조종사가 말했다.
언니야. 언니가 흑주에 영향을 줬어.
김서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조종사는 허리 숙여 왼쪽 운동화를 벗어 들었다. 깔창에 손안의 코피가 스미게 닦고 외부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찾았다. 그들이 지쳐 있는 동안에도 기계는 변함없이 돌아가 언니의 마지막 순간을 새긴 것이었다. 너무나 순식간이어서 재생 속도를 최대한 늦춰 보아야 했다. 감압실이 열리자마자였다. 긴 머리채가 쫙 뻗쳤다. 정강이가 번쩍 들렸다. 머리칼이 야금야금 짧아졌고 두 다리에서 두 무릎으로, 두 팔에서 두 팔꿈치로 몸이 졸아들었다. 감쪽같이 목 위의 얼굴이 없어졌다. 양 겨드랑이와 늑골을 아우른 덩어리만 똑같이 조각난 파란 천에 덮여 밧줄 안에 떠있었다. 심장 모양을 한 덩이였다. 그것마저 흡입되다시피 지워졌다. 빈 의자와 등받이에 걸린 팽팽한 밧줄뿐이었다. 살인에 이바지한 그 물건 조각들만이라도 구하러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마저 삼켜지고 없었다. 화면은 비정했다. 김서는 숨도 쉬지 않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이대로 끝날 리 없었다. 김서는 핏발이 서도록 주시하였다. 반짝, 했다. 처음엔 착시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반짝임은 순간적인 것도 국소적인 현상도 아니었다. 아주 미세한 빛 구멍에서 다이아몬드 분말 같은 것들이 탁탁 튀어나와 급속도로 퍼지며 고집스런 암전과 정지 상태를 화면 밖으로 밀어냈을 때, 그 눈부신 폭우 앞에 김서는 왈칵 주저앉았다.
새 좌표는 신생별을 의미했다. 갓 태어난 이 별이 단단한 검음을 속속들이 문질러 말랑말랑하게, 지나갈 수 있게 변화시켜준 거였다. 김서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이 별을 언니라고 믿었다. 언니는 별이 되었다. 그들에게, 동생에게, 갈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조종사는 이 좌표에서 비롯된 중력이 비행선을 끌어당기고 있다며 홀로그램 영상을 띄워 모두가 볼 수 있게 했다. 푸른빛을 내는 이 별에서 곧 특이한 무늬가 발견되었다. 별 중심부에 박힌 우유 빛깔 무늬였다. 슬개골 모양에 가까운 무늬는 좌우가 대칭이었고 연골 같은 질감이 느껴졌다. 그들은 이 별에 슬하성(星)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언니, 김슬하를 기리는 의미에서, 또 이 별이 자신들과 같은, 무릎을 가진 이들의 별이기를 바라는 뜻에서였다. 그리하여 걸을 수 있고, 걷는 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기를 바랐다. 그런 주민들이라면 허기지고 갈 데 없는 떠돌이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잠시라도 두 무릎을 펴고 쉬어가도록 허락해줄 것이다. 쉴 곳, 지금 그들에게 간절한 것은 단 하나의 쉴 곳이었다. 오금을 펴고 닳은 연골의 물렁함을 잠시라도 회복할 수 있는 곳. 언니의 꿈이 그들의 꿈이 되어 있었다. 김서는 그러나 인정할 수 없었다. 그들은, 아니 자신은 언니의 죽음을 거들었다. 그 사실을 잊게 할 수 있는 의미란 없었다.
대원들은 빠르게 생기를 되찾아갔다. 갈 곳이 생기니 본능이 돌아왔다. 그들은 다시 먹고 누고 생각하고 말을 했다. 하지만 대화는 뜸했다. 의식적으로 한 자리에 모였을 때도 그랬다. 누구도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김서는 허벅지에 올려놓은 공책에 손을 얹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곁눈질로 옆 사람을 살피며 혼자 생각에 골몰해 있는 표정들이었다. 모두들 자신의 경험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말하면 미친놈 취급받겠지, 하는 얼굴들이었다. 차라리 흑주에 갇혀 다 같이 죽어버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인간들이란, 어떻게 해도 바뀌질 않는군. 김서는 이를 악물고 생각했다.
대원들끼리의 관계는 하루하루 폐쇄회로를 맴도는 것과 같았다. 매번 같은 문제로 비위가 상해 서로들 입을 닫고 통신장치를 꺼버렸다. 한순간의 방심이 곧장 비상사태로 돌변할 수 있는 흑주에서 소통의 단절은 소리 없는 총기난사와도 같았다. 선장이 있어야 했다. 선장의 역할은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서로 간에 다리를 놓아 개인적인 감정에 함몰되어 일을 그르치지 않게 하는 것, 끊임없이 전체를 상기시켜 한낱 의견다툼으로 끝장나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조율하는 일이 선장의 최우선 임무였다. 그러자면 선장 될 사람에겐 특수한 덕목이자 자질이 요구됐다. 바로 심장, 어떠한 상황에도 견디어내는, 아니 견디어내는 걸로는 모자라다, 어떤 상황도 녹이어 설사 연거푸 문제가 발생해도 녹여내고 또 녹여낼 수 있는 지속적인 핵융합이 가능한 그런 심장이었는데, 그런 심장이 아니고서는 대원들을 한 몸처럼 움직이게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연료는 불살라졌다. 이제 그들에겐 폭발하지 않는 강력한 엔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김서는 실격이었다. 김서는 잡초 앞에서도 폭발해버리는 사람이었다. 보도블록 틈새, 배수로의 격자틀 사이로도 비집고 자라나는 잡초들을 보며 아, 생명은 어디서도 길을 내는 질긴 본능이구나, 하고 미소 짓게 되지 않았다. 김서는 그보다 잡초로는 만족이 안 되는, 어떤 불안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그 초록빛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어둡게 어른대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것은 숲을 꿈꾸고 있었다. 광활한, 자기만의 번듯한 토양을 가지고 있는, 마음껏 활개 치며 가지를 뻗고 풍성한 잎들을 바람으로 채워 가볍게 딸랑이는 동시 땅속으로 무진장 제 깊이를 확보해가는 큰 나무들이 너른 간격을 두고 끝없이 펼쳐진 세상. 그것은 살아있느냐의 문제이기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와 관련된 감정이었다. 잡초, 그것은 지독히도 절박하게 숲을 갈구했다. 잡초에 오롯이 마음이 포개지던 주옥같던 시간도 있었다. 햇볕 속에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 기뻤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 상태로 머물 순 없었다. 잡초가 올려다본 하늘이 더 넓고 높았다. 잡초의 그 처절한 용솟음, 절망적인 몸부림이 여기까지 이르게 했다. 잡초의 뿌리가 있는 곳이었다. 이미 뽑혀버리고 없는.
33040시간이야. 누군가 말했다. 통제실 담당이라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시곗바늘이 몇 바퀴 돌았는지 셈하는 얘기라면 지겨웠다. 김서는 시선을 거두고 공책을 열었다. 귀퉁이가 꺾인 면이었다. 언니가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어 한 내면. 오래전 오늘로 거슬러 들어간 이야기였다. 언니는 또 다른 색조의 초록빛 흔적에 대하여 쓰고 있었다.
오늘 아침도 녀석이 먹이를 걸렀다. 녀석은 고 작은 머리를 홱 돌리더니만 끝이 올라간 퉁방울눈을 끔뻑끔뻑하며 먼데를 보았다. 녀석은 떠나려는가 보았다. 사과 살을 얇게 저미듯이 깎아 수면에 구름처럼 떠다니게 해줬지만 먹지 않았다. 아치꼴 돌다리에 몸을 얹고 등껍질을 햇볕에 말리고만 있었다. 벌써 석 달이 다 되어간다. 동면에 든 것도 아닌데 어떻게 버티는지 모르겠다. 춥고 배고파도 깨어만 있고 먹지 않는다. 여름 되면 보내줄게. 거북은 온도에 민감하다기에 물을 갈 때 헌 물을 다 버리지 않았다. 삼분의 이 가량만 비우고 배설물과 찌꺼기를 훑어낸 다음 새 물을 섞어 입수시켰다. 좀 더 따뜻해지면 보내줄게. 아무리 달래고 약속해도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5월이었다. 수온이 괜찮을까? 녀석의 형을 땅에 묻고 난 뒤였다. 지난겨울의 일이었다. 너만은 보내줄게. 난 녀석에게 맹세했다. 수온이 올라갈 즈음 널 보내줄게. 형은 두상이 펑퍼짐하고 꺼벙해 보이는 퉁방울눈에 입매가 느긋한 생김새였다. 형은 우직하게 수조 속 생활을 견디다 병을 얻었다. 눈자위에 허연 막이 끼더니 어느 날 퉁방울이 왕방울만해졌다. 나는 무지했다. 이 경우에 어떻게 하면 형을 구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지식에 의존했다. 대다수가 인정한 방법이었다. 나는 그 방법대로 형을 식염수를 채운 바가지에 담가 세 시간씩 두기를 날마다 되풀이 되풀이하였다. 눈은 낫지 않았다. 형은 차츰 식욕을 잃어갔다. 불어서 너덜너덜해진 먹이를 지나쳐 아치꼴 다리 위로 올라가 배를 얹고 쫙 펼친 지느러미발을 뻗쳐 햇볕만 쬐고 있는 날이 많았다. 그날도 형은 빈속에 일광욕을 하는 중이었다. 고개가 모로 꺾여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 자세 그대로였다. 비긋이 이쪽을 향한 눈이 감겨 있었고 다른 쪽 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조심스레 형의 머리를 붙잡아 당겼다. 미끄덩거리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더 힘을 주었다. 끄떡도 없었다. 아무리 잡아당겨도 꿈쩍하지 않는 형 앞에서 나는 비로소 힘을 뺐다. 힘을 줘봐야 소용없는 것, 그것이 죽음이었다. 손가락에 남은 비누 같은 이질적인 감촉만이 되살아나 몸을 떨게 할 뿐이었다. 동생마저 그렇게 죽일 순 없었다. 병들기 전에 떠나보내야 했다. 의지대로 나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했다. 그것이 형에 대한 속죄이자 유일한 바람이었다. 나는 한때 형을 치료차 격리시켰던 주황색 바가지로 동생을 옮긴 뒤 수조의 물을 동생이 뜰 만큼 붓고 우윳빛 봉지에 담았다. 동생의 초록빛 모가지가 부풀었다 오므라들었다 하는 걸 확인할 수 있게 손잡이 사이의 매듭을 느슨히 했다. 나는 동생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햇살이 모닥불 같은 온기로 내 어깨를 토닥여줬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나는 경쾌하게 보도 위의 신축줄눈들을 넘어갔다. 하늘에 얇게 저민 사과 살 같은 하오의 달이 떠있었다. 드물게 맑은 날이었다. 오후 세 시가 되기 전 구름 없이 푸른 1월의 하늘에서나 볼 수 있는 달이었다. 나는 마음껏 숨을 내쉬고 들이쉬며 부지런히 나아갔다. 한순간도 멈춰 서지 않았다. 심지어 횡단보도 앞에서도 그랬다. 신호등은 내가 다가가는 동안 지체 없이 바뀌었고, 나는 빠르게 길을 건너 공원으로 이어진 다리를 올랐다. 봉지 사이로 팽창하고 수축하는 초록빛 모가지가 보였다.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차근차근 계단을 내려왔다.
공원 입구였다. 우리는 그 열린 문을 통과해 구불구불한 산책로로 접어들었다. 호수의 반드러운 수면이 조용히 시야 가득 펼쳐졌다. 나는 길을 따라 기슭으로 걸었다. 수풀이 우거진 얕은 물가로 천천히 나왔다. 매듭을 풀었다. 동생을 놓아주었다. 동생은 망설이지 않았다. 지느러미발로 성큼성큼 나아가더니 앞발을 들어 수풀을 헤치고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나는 멈추어 바라보았다. 수면 위로 초록빛 뒤통수를 보이며 동생은 헤엄쳐갔다. 동생이 향하는 쪽은 넓었다. 그동안 갇혀 있던 수조 속 세상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규모였다. 원도 한도 없이 사지를 뻗겠구나. 네 스스로 그만하고 싶어질 때까지 마음껏 물길을 터보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넓이를 끝까지 누벼라. 나는 약간 복받쳐서 생각했다. 한순간 동생의 고개가 빙글 돌아와 내 쪽을, 내 눈을 물끄러미 보았다. 놀라웠다. 나한테 작별인사를 한 건가. 눈앞엔 어느새 잔잔하게 퍼져 흐르는 물결뿐이었다. 나는 우두커니 머물러 있었다. 방금 전 동생의 고갯짓과 순간적인 눈 맞춤, 그 돌아봄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나중에야 그 호수 역시 거대한 수조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탁 스쳤다. 그곳은 인공 호수였다. 정기적으로 수질 관리를 받는 고인 물이었다. 하지만 동생에겐 호수가 인공이든 자연이든 별 상관이 없을 거였다. 그 속의 다른 거북과 비단잉어, 오리, 연꽃, 숱한 생명들과의 관계가 언제나 생생한 야생의 느낌을 자아낼 테니까. 나는 그놈들이 텃세를 부리지 않기만을 바랄 따름이었다. 아니, 그건 괜한 기우일지 모른다. 동생은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해서 정체 모를 뭔가가 앞에 나타나도 겁먹지 않을 것이다. 자기를 살피고 상대를 가늠해 적시에 움직일 것이다. 맞서거나 물러서거나 동생은 언제나 최선일 것이다. 나는 동생의 본능을 믿었다. 어쩌면 호수 속 생태계를 주름잡는 새로운 실세로 거듭날지 모르지. 나는 동생의 고집 센 두 눈을 떠올렸다. 굳게 다문 입매는 또 얼마나 표독스러웠는지.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게 느껴졌고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걷는 게 즐거웠다. 동생의 마음을, 아니 본능을 이해할 것 같았다. 동생의 본능은 나의 본능이기도 했다. 더 가고 싶은 본능. 더 멀리, 더 탁 트인 지평으로 나아가고픈 본능. 꿈틀거리며 재촉하는 생명의 본능. 내가 살아있다는 이 느낌. 동생은 가르쳐 주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