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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Nov 17. 2019

방황이 끝나자 공허함이 찾아왔다

"난 치르치르의 파랑새를 알아요~"


어렸을 때 자주 듣던 동요 '파란나라'의 가사 중 일부분이다.

벨기에 작가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라는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주인공인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 꿈 속에서 요술할머니의 부탁으로 파랑새를 찾아 떠나지만 결국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잠에서 깬다. 그리고 자기 집 안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를 찾게 된다는 짧은 이야기다.


20대의 나는 꿈속에서 파랑새를 찾던 치르치르와 닮아 있었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내 전공에 자신이 없었다. 재미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남들보다 뛰어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할지 끊임 없이 고민하고 그것을 찾는 게 인생의 목표인 듯,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방황의 시작


내 방황의 시작은 스무살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대학생활을 즐기느라 아무 걱정 없고 마냥 밝고 행복했던 일년을 보냈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았고 시험 점수가 나오지 않아도 정말 못봤다며 웃으며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긍정적이였고 밝고 조금 철이 없었다. 딱 스무살다운 스무살을 보냈다.

그리고 2학년에 올라가면서 전공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해도 생각한 것 보다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고 그때서야 나는 어떤 길을 가야하지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다. 2학년 때 일년은 도서관에서 책만 읽었던 시기였다. 전공 공부에는 흥미가 가지 않았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고. 나에게 주어진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책 속에 있기라도 한듯 소설이며 에세이, 고전 등을 가리지 않고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역시 책안에서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위안과 용기와 잠시동안 나의 현실을 잊을 수 있게 해줬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휴학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학교를 벗어난 그 일년 동안 나는 좀 더 많은 것을 경험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 나는 어렸고 또 초조했다. 휴학을 하는 동안 답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답을 얻지 못한 채 또다시 일년이 흘렀다.  남들이 하는 것에 뒤쳐지지 않으려 애를 썼는데 어느순간 고개를 들면 빙글빙글 제자리돌기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3학년이 되면서 나는 취업이라는 목표를 잡고 취업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나갔다. 전공공부를 잘하진 못했지만 원서를 넣을 수 있을정도의 점수를 만들었고 자격증을 땄고 영어점수를 땄다. 그리고 어쨌든 졸업과 동시에 전공을 살려 취업을 했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대학교때처럼 내가 가야할 '길'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조금 나아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20대 때 나는 남들이 말하는 그 꿈이라는 것이 직업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꿈이 있는 사람은 항상 활기가 넘치고 긍정적이고 열정적이라고 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를 몰랐던 나는 그것들을 알기 위해 고민하고 도전하고 경험하고 다시 방황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렇게 조금씩 내가 어떠 사람인지 알아갔고 좋아하는 것도 생겼다. 하지만 그것들을 직업으로까지 연결시키는 데는 현실적인 것들이 참 많이 걸렸다. 그렇게 머뭇머뭇 거리고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다시 복직을 했다. 



방황의 끝


서른살이 되기전 끝나겠지라고 생각했던 진로에 대한 고민은 그보다 2년이 더 지난 32살, 올해 여름에 끝이 났다. 답을 찾았기 때문에 끝이 난 게 아니라 이제는 끝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내 스스로 방황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방황을 끝낼 수 있었던 건 10년동안 많은 것들을 경험하면서 어떤사람인지를 솔직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도전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도전했지만 내가 가진 것을 한번도 놓은 적이 없었고 막연한 미래 속에 번지점프를 하듯 나를 밀어넣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도전에 따라오는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 큰 사람, 나는 소심한 안정주의자였다. 그리고 나는 미래의 더 큰 행복보다는 현재의 행복들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즐기고 싶었던 수많은 행복들을 미래에 두고 바라보기만 했었다. 


파랑새를 찾아 떠났던 스무살의 나는 10년이 지나고서야 깊은 잠에서 깨어나 이제서야 나를 둘러싼 현실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퇴근 후 가족과 보내는 시간들이 내 삶에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정도로 조금은 철이 들었다.

 

20대가 내가 한 지난 선택들을 후회하며, 이번 생은 망했다고 자책하고 스스로를 참 못살게 굴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그동안 한 내 선택들이 그때 당시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몰아세웠던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자 나의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방황의 시절도 그렇게 끝이 났다.



안정된 삶, 그리고 공허함



지금의 나 자체를 받아들이자 일에도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가족들과의 시간도 아무런 걱정없이 그 순간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내 삶은 이전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흘러갔고 특별한 일 없이, 특별한 사건 없이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렇게 안정된 삶 속에서도, 충분히 나 자체를 다 받아들였음에도 뭔지 모를 공허함이 가끔씩 밀려왔다.


늦은 밤, 아이가 잠들고 나서 혼자 불을 끄고 잠이 들려는 그 아주 짧은 순간들 속에서 내 안 깊숙한 곳에 자리잡았던 공허함이 빠르게 내 머리까지 올라와 내 몸 전체를 잠식해가는 걸 느끼곤 했다. 그 공허함은 나를 아주 깊은 우울함에 빠뜨리기도 했고,  숨이 턱 막힐 정도의 답답함을 느끼게도 했다.


퇴근 후의 삶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도 있고 주말에는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데, 가끔씩(아니 생각보다 자주) 밀려오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내 삶에 대한 공허함과 아쉬움이 가끔씩 내 삶을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드는데 회사와 육아로 꽉 찬 일상 속에서 어떻게, 무엇을 변화시켜야 할지 막막했다. 그렇다고 다시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방황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내 모든걸 걸고 도전하는 것은 망설여지고 새로운 상황이 닥치면 설레임보다 두려움이 더 크게 다가오는, 소심한 안정주의자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안정된 삶 속에서 오는 권태로움일까. 편안함에서 오는 지루함일까. 아니면 정말 꿈이 없기 때문에 공허한걸까. 행복을 찾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언젠간 해야지라고 미뤄왔던 ,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지금의 내 삶에 갖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작고 소소한 것들, 내인생의 틀을 깨지 않고 내 하루 사이사이 빈시간 속에 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나가며 나를 조금씩 채워나가기로 했다. 내가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착실하게 조금씩 나아지자고.
 

이 글은 내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변화시키는 건 아니지만 조금 더 나은 하루를 위해, 내 삶에서 느끼는 그 어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내가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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