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참 많은 아이였다. 어릴 적 별명이 '쨈보'였는데, 툭하면 쨍알거리면서 운다고 아빠가 지어주셨다. 이름보다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린 세월이 꽤 길었다. 성인이 되었다고 그 눈물이 갑자기 사라지진 않았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보거나, 조금만 감성이 건드려지면 눈물샘이 폭발했다.
그렇게 펑펑 울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웃고는 했다. 그런 나를 친구들은 변덕쟁이라고 하기도 했다. 연인과 헤어지고 징징거릴 때도 3일이면 털어버릴 거면서 뭘 그러냐고 하기도 했다.
잘 울던 내가 어느 순간 울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슬픈 영화를 봐도, 감동적인 책을 읽어도 눈시울조차 붉어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울면 당연히 같이 눈물을 흘려야 할 내가 그저 덤덤하게 위로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의 변화가 당황스러웠다.
왜 눈물이 나오지 않을까? 왜 콧잔등이시큰해지지 않는 거지??? 왜 슬프지 않은 거야?
아이들 앞에서 행복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사실,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너무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한 엄마처럼 살고 싶었다. 남편과 남보다 못한 관계로 지낸 세월이 너무 길다. 신혼 때부터 그랬으니, 그 긴 세월 속에 나는 혼자서 연기를 하면서 살았던 것도 같다.
참고 참았던 긴 세월 속, 이혼의 위기가 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평생 행복을 연기했던 나는 다시 아이들을 위해 그 위기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은 경제적인 문제로도 매우 괴로웠다. 생각보다 큰돈을 남편이 날렸다. 여러 사건이 있었지만, 나는 아이들 앞에서 단 한 번도 남편과 싸우지 않았다. 사실, 우리의 관계는 싸움조차 어색할 만큼 멀어져 있기도 했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음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리 없지만, 소리 내 싸우거나 얼굴을 붉히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최선의 노력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 위기들을 거치면서 눈물도 사라진 듯하다. 혼자 있을 때조차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가끔은 펑펑 울고 싶은데, 이상할 만큼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울면 더 약해질 것 같은 마음에 꾹꾹 눌러 참았던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아예 꽉 잠겨버린 것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뜻밖의 순간에 다시 만나게 된다.
나의 슬픔을, 나의 눈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