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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락 Aug 12. 2022

엄마도 무서워...

미국에서 1년 살기

이제 진짜 미국에서 일 년 동안 버텨야(?) 한다는 걸 실감한 건 입국심사장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보며 룰루랄라 기내식을 먹을 때도 그저 여행을 가는 듯 들뜬 기분이었다.

아니, 전날 밤을 꼬박 새워 가져 갈 짐을 챙기고 무게 때문에 탈락된 짐은 다락에 올려두면서도, 피난민에 가까운 수하물을 부치느라 전쟁통 같은 발권을 하면서도, 그저 긴~ 여행을 준비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런 들뜬 마음이 한순간에 가라앉고 현실을 자각하게 된 곳이 바로 아틀랜타 공항의 입국심사장이었다.

비행기 가장 뒤쪽 좌석에 앉았던 우리는 여유를 부리며 비행기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내렸고, 입국심사장에는 이미 엄청난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주변의 웅성거림도 전부 낯선 외국어들이었고, 우리는 이게 영어인지 어느 나라 말 인지도 모를 웅웅 거리는 백색소음에 둘러 쌓여 멍하니 앞사람을 따라 줄지어 걸을 뿐이었다.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말소리 중, 아무리 귀를 쫑긋 세워봐도 한국어는 들리지 않았다.

둘째 아이가 내 손을 꼭 잡아오며 말했다.

"엄마... 나 한국 가고 싶어요"

어느새 아이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차기 시작했다.

불안해하는 동생을 보며 첫째 아이는 꾹 참는 듯 보였지만, 금세 입을 비죽거리다 닭똥 같은 눈물을 쏟고 말았다.

'울지 마...... 나도 울고 싶잖아.'

아이들에게 미국에 도착한 첫 느낌이 이런 식이면 안되는데.

뭔가 희망 가득한 설렘 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주눅 들고 겁내면 안 되는데.

벌써부터 집에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하니.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인데.

겉으론 의연한 척했지만, 엄마도 무서워...

그때 제복을 입은 직원 하나가 다가왔다.

앞사람과의 간격을 좁히라고 연신 외치며 줄을 관리하던 직원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 제복 입은 외국인은 전부다 미국 경찰로 보여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미소를 가득 띤 얼굴로 아이들에게 말했다.

"안녕? 예쁜 공주님, 미국엔 처음 오는 거니?"

Yes 라던지 No라고 한마디도 못한 채 눈물을 꾹 참고 있던 아이들은 어느새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사실 진정이 되었다기보단 영어로 계속 말을 걸어오는 외국인을 보고 당황한 나머지, 자기들이 계속 눈물을 보이면 이 사람이 계속 말을 시킬 것 같으니 시선을 주지도 않고 서 있었던 것이다.

내가 대신 웃으며 대답을 해주는 걸로 이 어색한 상황은 정리가 되었고, 그녀는 다시 길게 줄 선 사람들에게 소리치며 자리를 떠났다.

기나긴 줄이 점점 줄어들며 어느새 우리 차례가 되었다.

'무슨 질문을 할까? 버벅거리면 의심한다고 하던데, 잘할 수 있을까? 수상하다고 입국 거부되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의외로 질문은 간단했다.

"가족입니까?"
"미국엔 왜 왔습니까?"
"언제 돌아갈 겁니까?"

"네"

"남편이 1년 동안 공부하러..."

"1년 후에..."


심플하고도 허무한 입국심사가 끝났다.

미소를 지으며 입국도장을 찍어 주는 그를 향해,

"땡큐, 해브 어 나이스 데이."를 소심하게 중얼거리며 입국심사장을 황급히 빠져나왔다.

후아... 이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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