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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바텐더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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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Sep 22. 2015

bartender 2

변한 것들.

내가 인생 첫 바텐더로써 일을 시작했던 곳은 비교적 점잖고 엄숙했던 분위기의 전통 바였다.

물론 그곳도 용모단정한 젊은 여성을 직원으로 고용하여, 주 고객층인 남성들에게 특정한 성을 어필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그 곳에는 정도가 있었고, 이렇게 말하긴 우습지만 '존경'이 있었다. 그것이 그 가게의 분위기였는지 아니면 당시에 전체적으로 흘러갔던 분위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술이라고는 소주와 맥주밖에 구분 못하던 내가 들어가서 처음 배운 것은 위스키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었다.

당시는 발렌타인이 인기였고, 그 외에 조니워커라든가 제이앤비, 지금은 보이지 않는 커티샥 같은 블렌디드 위스키가 사람들에게 위스키라고 불리는 모든 것이었다.


출근하여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는 가게에 비치해 놓은 술에 대한 전문 서적을 읽었다.

위스키 외에도 브랜디나 보드카, 데킬라, 럼 등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양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들의 구분방법, 역사, 제조 과정에 대한 것을 알아갈 수록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전문성을 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TV에서 간혹 보았던 화려한 칵테일 쇼와 같은 것은 할 수 없었지만 칵테일도 만들게 되었다.

어느 해 성탄 전야에는 아마 백 잔도 넘는 칵테일을 만들었던 것 같았다. 그 날은 그 어떤 손님의 서브도 보지 않고 쉐이커와 믹서기 등과 씨름 했던 기억이 난다. (아, 서브를 본다는 것은 손님 앞에 바를 사이에 두고 서서 대화상대를 해 주는 것이다.)

익숙한 칵테일은 손쉽게 빨리 만들었지만, 익숙치 않은 칵테일도 레시피를 무시한 채 어림짐작으로 배합하여 나갔다. 그만큼 바빴다. 하지만 어느 테이블에서도 맛에 대한 불평은 하지 않았다.

제 아무리 고급의 탈을 썼어도 술을 마시는 남성이 주 고객이었다. 성희롱 청정지역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농담 사이사이에 자신이 너무 지나치지 않았나 스스로 점검하는 기색들이 있었다.

우리는 소비되고 있었지만 직업적으로 어느 정도는 존중받았다고 생각한다.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여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큰 차이점 이라면 역시 술을 마실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처음 시작했을 당시에, 바텐더들은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되어있었다.(우리 가게만 그러했을 수도 있다.)

물론 규칙이라곤 해도 서브를 보면서 맥주 한 병, 위스키 한 잔 정도는 예의로 받게 되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그것은 전혀 마시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가게의 매출을 위해 바텐더들은 있는 힘껏 술을 마셔야 한다. 요즈음은 술에 취해 손님 앞에서 벌개진 얼굴로 횡설수설 한다거나 휴게실이나 바의 안쪽 바닥에 길고 늘씬한 다리를 아무렇게나 뻗고 곯아 떨어져 버리는 바텐더들을 종종 본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광경이 이젠 그럴 수도 있는 풍경이 되었다.


술을 많이 마시도록 종용하는 가게도 있고, 아닌 가게도 있다. 오너의 성향, 가게의 분위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바의 바텐더들이 자신의 업무에 술을 마셔서 매상을 올리는 것을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추가 하고 있다. 가게에 따라서는 그것이 바텐더들의 가장 주된 업무라고 강요하는 곳도 있다.

그다지 술을 즐기지도 않을 뿐더러 만취되어 스스로 통제력을 잃는 것을 몹시 혐오하던 나에게 이런 변화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변화를 혐오하고 과거에 지나간 것만을 추억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라는 것이 내 고집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충돌을 일으켰다.(이것은 나중에 또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또한 서브 중 바텐더들의 태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원래 바텐더들은 서브 중에는 앉을 수 없었다.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종종 두 세시간을 꼬박 한 자리에 서서 웃는 낯으로 손님을 응대해야만 했다. 바의 바깥 쪽에는 손님들을 위해 가장 안락고 편안한 의자가 늘어져 있었지만 안쪽에는 작은 간이 의자 하나 없었다. 바텐더들은 우아한 웃음을 지으며  응대를 하다가도 휴게실에 들어가면 다리를 벌리고 앉아 세상에서 가장 지친 여자의 얼굴로 담배를 피워댔다.

서 있는 바텐더와 앉아있는 손님, 눈높이의 차이 때문인지 그 때는 손님들도 좀 더 정중히 바텐더를 대해주었던 듯 싶다.


지금은 어떠한가. 바 안에는 바텐더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들이 항상 놓여있다. 서브를 볼 때 우리는 앉아서 손님과 눈높이를 맞춘다. 직원과 손님이라기보다는 그냥 술상대, 말동무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오빠'라는 호칭이 쉽게 쉽게 나온다. 만난지 한 두 시간 만에 손님에서 오빠가 되고 말이 짧아진다. 그리고 더 많은 술병이 비워지고 더 사적인 얘기들이 흘러간다. 여전히 손쉽게 닿을 수 없는 바의 거리만큼 우리는 떨어져 있지만 말은, 감정은 더 편해지고 격식이 없어졌다.


모르겠다. 나는 이것을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다시 바텐더를 시작한 초기에는 모든 것이 적응되지 않았고 마치 이 직종이 타락한 듯 느껴지기만 했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나는 아직도 완전하게 적응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일에 완벽하게 적응하여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내가 지금 이 일을 필요로 하는 것은 사실이니만큼, 나는 나 자신에게 가면을 씌워 또 다시 바의 안쪽에 선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에 나를 맞추어 갔다. 아직까지는 잘해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나는 변화에 적응한 것이다.

현재 모던바라고 불리는 가게들이 시대의 흐름에 변하였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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