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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바텐더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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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Sep 25. 2015

bartender 3

바텐더에게 외모란...

바텐더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쉽다. 컴퓨터를 켜고 들어가 아르바이트 구인 사이트에서 19세 이상 인증을 하고 본인의 주변 지역에서 bar를 검색하면 된다.

언제나 모든 가게들이 인력난에 허덕인다. 그리 밉지 않은 외모를 가졌다면 아마 채용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예쁘지 않아도 되나요? 라고 많이들 묻는데... 나도 그리 화려한 외모를 가진 사람은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수수한 얼굴 생김새이다. 꾸미는 것을 즐기지 않는 탓에 대낮에 보면 인파 속에 묻혀버리는, 평범하디 평범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

대신 나에게는 화장과 조명, 그리고 술기운이라는 아주 고마운 도우미들이 있다.

일단 어느 정도 화장의 기술만 있다면 자신의 얼굴 결점 등은 수습할 수 있을테고, 덧붙여 어둠침침한 가게의 붉은 조명등이 당신의 얼굴을 제법 근사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얼마 전 바 사이에 현대적인 분위기를 내기 위한 푸른빛의 차갑고 세련된 조명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인테리어만을 생각한다면 적은 비용으로 고급스럽고 차분한, 정돈된 분위기를 내는데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마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푸른빛은 사람들을 이성적으로 만들 뿐더러(이것은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술을 팔아야하는 업주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치명적인 결점이다!) 그 아래 선 사람의 얼굴을 피곤하고 생기 없어 보이게 한다.


바텐더들은 밤에 일을 하고, 술을 마시는 것이 업무의 일환이다. 그리고 거의 대다수의 바텐더들이 엄청난 골초이다. 나쁜 생활습관은 그녀들의 젊음과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세월은 전자의 편이다.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지친 기색은 푸른 조명아래 적나라하게 보태어져 상대에게 감점요인이 될 것이다. 

정육점의 유리진열장 조명은 어느 가게나 붉은 색이다. (말하기 민망하지만)집장촌의 조명 역시 붉은 계통이다. 고기를 더욱 신선하게 비춰주고 여자를 젊어 보이게 한다. (지독히도 성차별적이고 비인간적인 이 비유를 용서해 주시길...) 

식욕을 돌게 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이성을 살짝 속이며 불안정한 흥분, 어떠한 기대 심리를 발동시킨다.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야 하는 가게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은 효과가 어디 있단 말인가.

고로 나는 붉은 조명의 신봉자이다. 실제 일했던 어떤 가게의 개떡같이 세련되기만 한 청록색 네온 조명을 사장과 많은 설전 끝에 교체해 버린 전적도 있다. 


“분위기고 뭐고 여기만 앉으면 애들 얼굴이 열 살은 더 들어 보인다니까요?!”


결국 이런 시행착오 끝에 많은 바들이 붉은 계통의 조명으로 회귀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고급지고 냉정한 불빛을 고집하는 분들... 흠, 잘해보세요. 

각설하고, 그리하여 화장과 조명, 이 두 가지 요소는 당신을 제법 괜찮은 외모의 여성으로 만들어 준다. 여기까지만 해도 만사 오케이? 하지만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가장 큰 아군이 있다. 


그것이 바로 술이다.

질문 하나를 던져본다.

‘술에 취한 남자에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는 누구일까?’ 

바로 그와 가장 가까이 있는 여자이다. 멀리 있는 절세 미녀보다는 손 닿을 곳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여자가 그들의 이상적인 여인이다. 

간혹 까다로운 상대들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마주보자마자 외모 품평을 시작할 수도 있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의 자존감을 포크레인처럼 푹푹 퍼서 던져버릴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너 따위가’ 라는 분한 마음은 잠시 접고, 거울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도 눌러주자. 어쨌든 이것은 ‘일’ 이니까.(하지만 나는 종종 상대에게 거울은 보십니까 라고 말해줄 때가 있다. 하하하. 농담으로 넘길 수 있는 확신이 들 때 만 쓰도록 하자...)


그렇게 참을성을 가지고 잠시 앞에 앉아 있어 보자. 그들은 자신의 기준에 맞는 아름다운 여자를 찾고 있지만, 기준치에 도달하지 않는 바텐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서 상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매력이 있네.”


혹은,


“처음엔 좀 아니었는데 볼수록 괜찮아 지네요.”


물론 나의 기준치 미달의 외모 뒤에 감춰진 매력을 상대가 뒤늦게 깨달은 것 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변심의 가장 큰 공로자는 술이다.


바를 올 때 1차로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보통은 2, 3차...혹은 마지막으로 오게 되는 것이 바이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부터 그들은 이미 어느 정도 술을 마신 상태이고, 자리에 앉아 더 마시기 시작하면서 냉정한 판단력은 점점 뇌의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고 본능이나 욕구 같은 재미있는 친구들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다.


‘주색’이란 말이 있다. 술과 이성, 두 가지 뜻이 붙어있는 단어이다. 직업 때문에 그런 것인지 참으로 이 것만큼 쿵짝이 잘 맞는 단어도 쉽지 않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술이 오면 색이 따라온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여자가 멀쩡한 상태에서는 성에 안차더라도 시간이 지나서 술에 함락당한 상태라면 그 앞의 여자는 어느새 지금 당장 가장 가지고 싶은 여인이 되는 것이다. 

다정히 내 말을 들어주고 적절한 반응을 해주고 나에게 집중하는 여성 바텐더. 바텐더들은 ‘일’이지만 상대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머릿속에 가능성이 꽃을 피우고, 그것이 박차를 가해 망상은 끝 간 데 없이 달려 나간다.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들을 내뱉고 만다.


“모란씨 정도라면 뭐 사귀어도 나쁠 거 같지 않아요.” (실제로 들은 말이다!)


그렇다. 외모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무난하게만 생겨도 손님으로부터 ‘너 정도면 사귀어도’ 라는 말쯤은 들을 수 있다. 으하하하.


이곳은 외모에 대한 걱정 따위는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고민거리가 발생하는 곳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쁘면야 좋겠지만 바텐더에게 외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 길게 본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따로 있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하지 않겠다.

지금은 읽어봐야 공감하기도 힘들것이고 용납도 안될 것이다. 내가 백편의 글을 쓴다고 사람들에게 이해받을 자신도 없다. 아마 이건 나와 같은 입장의 사람들이 아니면 체감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또 글을 쓸 것이다. 앞으로는 넋두리 하듯, 혹은 일기 쓰듯. 그렇게. 또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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