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무지개떡 다리를 건너 조금 걷자 구조되어 이곳으로 온 동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나타나요. 고래밥이 한쪽 지느러미를 벌려 말합니다.
“영원한 안식처에 도착한 걸 환영해.”
“와.....”
포레와 달쿠미는 눈앞에 펼쳐진 파스텔 톤의 디저트마을을 보며 탄성을 내뱉습니다. 그때 누군가 그들에게 다가와요.
“어, 누렁아저씨! 오랜만이야.”
고래밥이 작은 몸을 흔들며 잿빛 털을 한 개에게 신나게 헤엄쳐 갑니다. 누렁아저씨의 뒷다리에는 있어야 할 두 다리 대신 두 개의 와플바퀴가 달려있어요. 혹시 차 사고를 당했다 구조되었다던, 가족을 구하지 못한 채 돌아와야 했다던 그 개일까요?
“고래밥! 오랜만이구나. 요새 도통 우리 마을에는 놀러 오지 안길래 난 또 지구로 도망간 줄 알았다.”
“하하, 역시 아저씨는 눈치가 빨라. 여기 새로 온 친구들을 소개할게. 여긴 구조되고 나서 친구를 구하겠다고 다시 지구에 가서 진짜로 친구를 구해온 포레, 여긴 포레가 구조해 온 달쿠미야.”
진짜로 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하며 고래밥은 어때? 하는 눈빛으로 누렁아저씨를 바라봅니다. 아저씨의 두 눈은 놀라 휘둥그레져있어요.
“정말이니? 네가 정말 친구를 구해왔어? 정말 인간에게서 이 친구를 구조해 왔다는 거야?”
포레가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맞아요, 아저씨. 고래밥 덕분에 구해올 수 있었어요.”
포레의 말에 누렁아저씨는 연신 세상에-라고 말하며 놀라워해요.
“믿을 수가 없구나. 희망행성에 온 이후로 친구를 구조해 온 동물은 네가 처음일 거다. 사실 나는 예전에 한번 실패한 적이 있거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날린 건 나였지만, 내게도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에이, 아저씨. 또 그 얘기야? 벌써 10년도 더 됐잖아. 아저씨 가족들은 지금쯤이면 벌써 노견이 되었거나 이미 지구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거라고. 아저씨라도 이렇게 다행히 희망행성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안 그래?”
고래밥이 그렇지 않냐는 듯 누렁아저씨에게 묻자 누렁아저씨가 고래밥에게 살며시 미소 지어 보입니다. 하지만 아저씨의 두 눈은 너무나 슬퍼 보여요. 달쿠미는 아저씨의 마음을 잘 알 것 같습니다. 가족과 생이별한 그 마음을 출산한 세 자식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달쿠미도 잘 알고 있거든요. 달쿠미는 이제 막 태어난 지 한 살이 되었을 때 강제로 임신과 출산을 한 뒤 자식들을 주인에게 빼앗겼던 적이 있습니다. 달쿠미의 표정이 아저씨와 같이 덩달아 슬퍼지는 걸 본 포레가 달쿠미를 조용히 어루만져줘요.
“그나저나 고래밥, 너도 그럼 같이 구조를 해온 거냐? 또 아무도 몰래 지구에 몰래 다녀온 게야?”
“아이 참- 아저씨도 나한테 잔소리를 늘어놓을 참이야? 그래도 이번엔 구경만 하다 온 게 아니라 진짜로 이렇게! 달쿠미를 구해왔는데 칭찬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다들 뭐라고 하기만 하고. 흥- 다들 너무해.”
고래밥이 삐져서는 끙- 하는 소리를 내며 물을 찍 뿜어냅니다.
“녀석 참, 다들 네가 걱정이 되어 그러는 거 아니겠냐. 그래, 함께 구조를 해왔으니 그래도 칭찬은 해줘야겠구나. 가서 희망님께 선물이라도 달라고 해보지 그러니. 하하하.”
“뭐라구~? 아저씨, 희망님께는 절대 내가 지구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려선 안 돼! 그랬다간 희망님이 엄마아빠한테 다 말씀드릴지도 모른다구. 그러면 난....”
고래밥이 말을 하다 말고 슬픈 눈빛이 되어요.
“그러면 난 더 이상 무리를 벗어나 혼자 이렇게 다니지 못하게 될 거야. 그럼 아저씨도 날 더 이상 볼 수 없어! 그렇게 돼도 괜찮아? 응?”
고래밥이 누렁아저씨에게 묻자 누렁아저씨가 과장된 손짓을 하며 답합니다.
“아이고, 그래선 안 되지 암 그렇고 말고! 절대 희망님께는 알리지 말거라. 고래밥이 지구에 내려갔다가 달쿠미를 함께 구조해 왔단 사실은 우리끼리 영원히 비밀로 하는 거야. 다들 알겠지?”
아저씨가 고래밥의 장단에 맞춰주려 다소 과장된 표정으로 입에 손을 갖다 대며 모두에게 소곤소곤 말합니다. 포레는 아저씨가 참 좋은 개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쉬멜로우 마을에 놀러 간다는 누렁아저씨와 헤어지고 셋은 마을 곳곳을 더 구경합니다. 저기 잘린 뿔 대신 빼빼로 뿔을 하고 있는 사슴이 사탕 눈깔을 한 사자와 수다를 떨고 있어요. 이곳에서 지구의 먹이사슬은 의미가 없나 봅니다.
“어때? 모두 행복해 보이지?”
“응, 하지만 누렁아저씨처럼 가족을 잃은 기억이 남아있다면 혼자 행복해하는 게 미안할 것도 같아.”
달쿠미는 여전히 아저씨를 생각하고 있나 봐요. 아니, 어쩌면 빼앗긴 자식들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건 아저씨가 가족을 구해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버리지 못해서 그래. 포레 너도 친구를 구하러 다시 내려가 봐서 알겠지만, 다시 지구에 가는 순간 돌아오는 건 무척 어려워. 아저씨가 워낙 좋은 개라 희망님이 아저씨를 도와 다시 구조해 오신 거지, 대부분은 실패하면 돌아오지 못해.”
“정말? 희망님도 못 구하시는 동물들이 있어?”
“그럼, 물론이지. 지구상에는 너무나 많은 동물들이 고통받고 있어서 희망님이 모든 동물들을 구하는 건 불가능해. 그래서 구조해 왔는데도 다시 지구로 내려가겠단 동물들은 스스로 돌아오지 않는 이상 희망님은 더 이상 도와줄 수 없어. 다시 돌아간 동물들까지 살피기엔 첫 구조를 기다리는 동물들도 넘쳐나거든. 희망님은 정말이지 너무 바쁘셔.”
포레는 새삼 포레를 안고 이곳으로 와준 희망님이 너무나 고맙다고 느낍니다. 포레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희망님을 돕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내가 지구에 다시 가야 된다고 했을 때 다들 나한테 계속 정말 갈 거냐고 물어봤던 거구나? 내려가면 못 돌아올 테니까?”
“맞아, 지구로 돌아가려는 동물들에게 질문하는 것도 우리의 일 중 하나기도 하고. 질문에 조금이라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면 절대 보내주지 않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어도 돌아오기 힘든데 확신이 없다면 그냥 여기 있는 게 낫거든.”
포레는 그제야 자꾸만 정말 지구로 돌아갈 거냐고 묻던 희망행성 친구들을 이해합니다.
“너넨 아주 운이 좋았던 거야. 아마 그건 내가 널 아주 많이 도와줘서 가능한 거였겠지만, 앞으로도 없을 거라 생각해.”
“어째서? 날 도와줬던 것처럼 네가 다른 동물들을 또 도와주면 되지 않아?”
포레가 고래밥에게 묻자 고래밥의 두 눈이 실눈처럼 가느다래집니다.
“아니, 그동안 갖은 방법을 써서 도와줘봤지만 모두 실패했어. 다들 용기가 없어 도망가거나 인간에게 다시 붙잡히거나 내 말을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했지. 하지만 넌 달랐어.”
고래밥이 포레의 코앞까지 날아와 두 눈을 가까이 대고 말합니다.
“넌 가슴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았고... 또 용감했어. “
그리곤 갑자기 자리에서 뱅 돌며 흥분해 소리칩니다.
“네가 아이스크림을 인간에게 던질 땐 정말이지!!”
고래밥이 이리저리 휙휙 헤엄치며 말합니다.
“멋졌어!!!”
고래밥의 말에 포레가 겸연쩍은 듯 웃어 보입니다.
“너도 도왔잖아. 너도 멋져, 고래밥!”
달쿠미의 말에 이번엔 고래밥이 부끄러운 듯 뱅 돌고는 웃어 보입니다.
“맞아! 네가 아녔음 우리 둘 다 아직 지구의 철장 안에 갇혀 있었을 거야. 정말 고마워.”
“정말 고마워, 고래밥.”
달쿠미와 포레의 고맙다는 말에 고래밥이 더욱 부끄러워진 얼굴을 하며 우물쭈물 말합니다. 항상 포크아저씨와 누렁아저씨, 허니와 마쉬 등등 어른들에게 잔소리만 들어와서 이런 칭찬이 익숙하지 않아요. 하지만 기분은 참 좋습니다.
“뭘... 나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그때 고래밥이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무언가 생각난 듯 화들짝 놀라며 말합니다.
“이런, 큰일이다! 나는 어서 무리로 돌아가 봐야 해! 저기 저쪽에 케이크들이 쭉 있지? 가운데 딸기랑 바나나가 올려져 있는 케이크가 너희 집이야!”
고래밥이 가리키는 곳에는 정말 동그랗고 아담한 크기의 딸기 바나나 케이크 집이 있어요.
“난 이만 가볼게. 내일 보자!”
“저.. 저기 고래밥!”
고래밥이 슝- 하고 돌아 가는데 달쿠미가 급히 고래밥을 부릅니다.
“응?”
“그게, 아까부터 포레의 도넛이 좀 이상해!”
달쿠미가 초콜릿이 다 녹아 흘러내리고 있는 포레의 도넛을 가리킵니다.
“아차차! 깜빡 잊을 뻔했네. 여기서 찾은 희망 디저트들은 모두 주기적으로 바꿔줘야 해. 배고프면 먹어도 되고 언제든지 뺐다 꼈다 해도 상관은 없지만, 이것들은 영원하지 않아. 마을을 나가 동쪽으로 쭉 나가다 보면 마쉬멜로우 숲 안에 도넛 강이 나오는데, 거기서 도넛을 구할 수 있을 거야!”
고래밥이 속사포로 말을 내뱉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납니다. 고래밥이 떠나며 남긴 물방울들이 공중에서 흩어지는 걸 보던 포레와 달쿠미는 이내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봅니다.
(+ 빼빼로 뿔을 하고 있는 사슴은 지구에서 사자에게 쫓기다 무리에서 떨어졌다. 이후 인간에게 붙잡혀 뿔을 빼앗겼는데, 죽기 직전 희망님께 구조되어 희망행성으로 왔다. 사슴을 쫓던 사자 또한 사냥 총에 맞아 두 눈을 잃었는데, 앞이 보이지 않아 먹잇감을 구하지 못해 굶어 죽기 직전 희망님께 구조되었다. 이후 둘은 다시 희망행성에서 만났는데, 사슴은 너그러이 사자를 용서하였다. 둘은 희망행성의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