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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펫크리에이터 모리 Dec 25. 2018

뉴욕 가정집 방문기 [제이디와 레바이]

멍멍, 저희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너무나 똑 닮아 촬영 내내 꽤나 헷갈렸던 제이디와 레바이_ New York. 2017. Digital



쌍둥이 개들인 Zadie(제이디)와 Levi(레바이)를 만난 건 작년 이맘때쯤 오늘같이 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이었습니다. 친구의 소개를 받아 반려동물 촬영을 위해 찾아간 곳은 주택들이 즐비한 브루클린의 어느 한적한 동네였어요. 자칭 맨해튼 촌년인 저에게 브루클린 나들이는 아마도 이날이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높은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맨해튼과 달리 예쁜 주택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에 괜히 오늘 촬영이 잘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던 기억도 나요.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일로나의 집 문을 두드리며 “이 집이 맞나?”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 대문 너머로 두 마리의 개가 왈왈 짖는 소리가 겹쳐 들렸습니다. 그 소리가 마치 “맞게 잘 찾아오셨어요!”라고 들리는 것도 같았어요. 대문 넘어에서 만난 덩치 큰 두 마리의 핏불들과 개들의 주인인 Ilona(일로나)와 그의 남편은 한눈에 보기에도 참 선한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말들이 오가고 거실에서 촬영 준비를 하는데, 제이디와 레바이가 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저에게 온 것이 아니라 제가 설치하고 있던 조명을 향해 다가왔다고 해야 할까요. 제이디와 레바이가 3살 정도밖에 안된 어린 친구들이라기에 발랄하고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을 예상했었는데, 막상 직접 만나보니 키가 큰 신사 둘이 점잖게 제가 준비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서있는 모습에 조금은 의외였던 기억이 나요. 곧 있을 촬영에 이 조명들이 빵빵 터질 때마다 혹시나 놀라진 않을까 걱정하는 제 마음을 알기라도 했던 건지, 제이디와 레바이는 촬영 장비들에 그다지 큰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장비 설치가 끝난 뒤 소파에 잠시 앉아 일로나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일로나, 반려동물 촬영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뭐예요?
결혼하고 제이디와 레바이를 입양한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가요. 근데 아직도 제이디와 레바이랑 같이 제대로 찍은 사진들이 없어요. 모리씨가 촬영 모델을 모집한다길래 기쁜 마음으로 찍기로 결정했답니다.
그렇군요! 오늘 촬영 사진들은 언젠가 책이나 잡지에 실릴 수도 있는데, 괜찮나요?
오, 그럼요! 신나는데요? 출간되면 꼭 알려주세요.




“자, 레바이. 너도 차 한잔 할래?”_ New York. 2017. Digital



그렇게 시작된 촬영은 일층 거실에서 시작해서 부엌을 지나 이층의 침실, 그리고 뒷마당을 마지막으로 무사히 끝이 났습니다. 이 날 진행된 다양한 콘셉트의 촬영 중 가장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Tea Time(티타임)” 콘셉트의 촬영은 의외로 점잖은 레바이 신사 덕에 꽤나 수월하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사실은 저도 집으로 직접 찾아가 반려동물 촬영을 하는 건 뉴욕에서 이날이 처음이었던지라 속으로 긴장도 많이 하고 걱정도 많았었는데요, 사진이 이렇게 멋지게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제이디와 레바이, 일로나, 그리고 우리의 촬영 보조역할을 해주었던 그녀의 남편 모두가 한마음으로 촬영을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갑자기 펄펄 내리는 눈에 예정없이 진행한 야외촬영_ New York. 2017. Digital



그만큼 모두가 기진맥진했어야 마땅할 긴 촬영이었지만, 마지막 마당 촬영을 하면서는 모두가 내리는 눈에 마법이라도 걸린 듯 신나게 마당을 뛰어다녔어요. 집에 돌아가면서는 무거운 장비를 짊어진 제 속도 모르고 계속해서 내리는 눈이 참 밉기도 했지만, 촬영하면서는 “굿 타이밍”을 외치며 신나게 셔터를 눌러댔던 기억도 납니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 소파에 앉아 제가 일로나에게 건네었던 질문인 “왜 반려동물 촬영을 하시기로 마음먹으셨어요?”는 사실 저만 일로나에게 물었던 것은 아닌데요. 일로나 또한 저에게 같은 질문을 건넸었습니다.



모리씨는 왜 반려동물 촬영을 하기 시작했어요?
몇 년 전, 어릴 적부터 키우던 동생과도 같았던 강아지를 잃었어요.
이름은 아롱이였는데, 아롱이가 떠나고 나니 사진을 많이 찍어두지 못한 게 어찌나 후회가 많이 되던지. 특히 저와 아롱이가 함께한 모습을 많이 남겨두지 못한 게 제일 후회가 많이 되더라고요. 그 후로는 저처럼 후회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반려동물 촬영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내고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그들의 행복한 시간을 대신 담아주는 역할을 자처한 이후로, 이날처럼 이 일이 즐겁게 느껴진 날이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다시 확인하면서는 더욱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고요. 사람과 반려동물이 함께하는 모습을 담는다는 것. 인간보다 짧은 생을 사는 반려동물을 사진으로나마 기억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제가 반려동물 촬영을 시작하게 된 이유와 계속해나갈 수 있게 하는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일로나와 제이디, 레바이 간의 따뜻한 유대감을 사진에 담기 위해 보낸 시간들은 저에게도, 그들에게도 지금껏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데요. 종종 일로나와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며 안부를 묻기도 합니다. 보니까 제이디와 레바이의 사진을 정말 자주 찍어주더라고요. 이들 쌍둥이는 사진을 많이 남겨주는 주인을 만나 참 행복하겠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요즘은 핸드폰 카메라로 반려동물 촬영을 많이 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저로썬 제가 할 일은 줄더라도 참 다행이기도 한데요.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옆에도 반려동물이 있다면, 지금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한 장 남겨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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