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는 인생에는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있다면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만약 없다면 나는 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삶의 의미, 즉 목적이 있는 삶을 찾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며,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사유하며 스스로를 성찰해야 합니다. 사유의 긴 기다림 끝에 비로소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그때 희망이 생기며 꿈을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저는 한때 삶의 의미를 잊은 채 그저 살아 있는 좀비처럼 살았습니다. 육체는 분명 살아 있었지만 꿈과 희망이 없어 이리저리 방황하며,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는 돛단배처럼 방향을 잃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많은 것을 가진 듯, 뭔가 있어 보이는 척했지만 속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공허함…. 그 어떤 것으로도 메워지지 않는 깊은 공허함이었습니다. 매일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고 더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제가 설 자리는 점점 사라졌습니다. 중심을 잃은 채 위태롭게 외줄을 걷는 것처럼 언제든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불안하고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버텨온 길을 포기하거나 벗어날 수도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이어온 길을 벗어난다는 것은 곧 제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저는 진짜 자신을 잃고 누군가의 모조품처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시인이 ‘꽃’이라는 이름을 불러주자 그는 비로소 몸짓이 아닌 꽃이 되었습니다. 저의 삶 역시 그저 몸짓일 뿐,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글쓰기를 만나면서 달라졌습니다. 글쓰기는 제 삶에 의미를 불어넣었고, 꿈과 목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빈 껍데기 같던 제 마음에 알맹이라는 씨앗을 심을 수 있었고, 그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 꽃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삶의 퍼즐 조각 중에 단 하나의 조각이 제 의미를 찾으면서, 나머지 조각들 또한 차례차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메말랐던 제 마음에 단비를 내렸고, 곳곳에서 의미라는 새싹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공허함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삶의 의미뿐입니다.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내 삶에 목적과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공허하면 살아갈 이유를 잃습니다. 결국 “살아서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 끝은 우울감과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스스로 살아갈 이유, 삶의 의미를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고, 각자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쓸모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며, 그 가치를 찾아가는 여러 방법 가운데 가장 확실하고 명확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글쓰기입니다. 처음에는 몇 글자 끄적이는 것으로 시작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 깊숙이 내려가 그동안 마주하지 못한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숨겨진 자신을 찾은 사람만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됩니다.
글쓰기는 흔들리는 나에게 언제나 등대가 되어 올바른 방향을 비춰 주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글쓰기를 통해 길을 찾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멀리 있던 꿈과 목표가 점점 가까워집니다. 만약 지금 인생이 좀비처럼 방향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고 느끼신다면, 글쓰기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목표와 가치를 글로 풀어내며 삶에 의미를 새겨 보십시오. 그러면 잿빛으로만 보이던 인생에 한 줄기 빛이 들어와, 살아갈 이유를 더욱 선명하게 비춰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