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차, 바다에 오는 이유
바다는 다 똑같다.
다만 자기 마음속의 바다가 다를 뿐이다.
묵시아다.
대서양 바다.
바다는 다 똑같다.
다만 자기 마음속의 바다가 다를 뿐이다.
2015년 9월 24일 오후 2시 30분 나는 묵시아 바다에 있다.
산티아고를 걷고, 바다에 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산티아고 길에서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을 배운다.
그 길에서는 함께 어울려 지내는 것, 그리고 서로를 배려하는 것을 배운다.
이곳 바다에서는,
자기를 돌아보고,
혼자 있는 것을 배운다.
그저 또 바다를,
파도치는 것을 바라볼 뿐이다.
또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다.
그저 파도소리만 들을 뿐이다.
그런데,
내 마음 깊숙이에 있는,
잘 보이지 않는 곳 구석 구석이 씻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내 맘 속에서 무언가가 바다로 나가는 것 같았다.
난 그렇게 비워져 가고 있었다.
조금은,
깨끗해진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피스테라 숙소로 배낭 택배서비스를 부탁했다.
내일 피스테라까지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혹시라도 또 어깨에 통증이 오고,
종아리에 근육 뭉침이 올 지도 모른다.
이제 마지막이니 조금은 편하고,
조금은 여유롭게 걷고 싶었다.
다시 밖으로 나갔다.
저녁을 어떻게 해결할 까 고민하며 걷고 있는데, 지난번 숙소에서 만났던 한국인 오누이들을 만났다.
반가워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더니 방금 슈퍼에서 먹을 걸 사가지고 나오는 중이란다.
그래서 나도 사겠다고 했다.
멜론과 와인 그리고 빵을 사서 그들의 숙소로 가서 같이 해 먹었다.
그들이 잡은 숙소는 이제 오픈한 지 한 달 밖에 안 된 숙소로 매우 깨끗했다.
부엌도 예뻤다.
저녁을 해 먹고 싶을 정도였다 .
역시 젊은이들이 감각이 있어 이렇게 예쁜 알베르게를 알아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시지 삶아서 케첩에 찍어먹고,
야채 삶은 거랑 호박부침,
그리고 난 따로 컵라면을 또 먹었다.
거기에 와인까지 곁들이니 정말 진수성찬이었다.
저녁을 먹고 석양을 보러 나왔다.
동생은 빵 만드는 공부를 하고 있고 누나는 직장을 다니다, 캐나다에서 10개월 지내다 바로 산티아고로 왔단다. 둘 다 야무진 오누이였다.
대학을 가지 않고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해 나름 고민이 많은 듯했다. 대한민국이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떳떳하게 열심히 사는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그런 나라였으면 좋겠다.
묵시아는 정말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이들 오누이는 벌써 이틀째고 내일 하루 더 묵은 후 피스테라로 걸은 다음,
포르투갈로 여행을 갈 계획이란다.
포르투갈은 차를 렌트해 구석구석 돌아볼 계획이란다.
이들 오누이의 여행이 무사하길,
이들 젊은이들의 미래가 밝고 환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묵시아는 예쁘고 조용하고, 몇날 며칠이고 그렇게 푹 쉴 수 있는 곳이었다.
나를 푹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다.
2015년 9월 24일, 묵시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