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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의 뜰 Mar 23. 2022

격리 2일째 : 키친테이블 레터

 [자가격리 치유 일기]



자가격리를 하다 보니 생전 처음 경험하는 일도 생긴다.

친정부모님과 접촉하거나  대면할 수가 없으니 한 집에 살면서도 할 말이 있으면 전화를 하거나 카톡을 보내야 한다.


"아버지 뭐하세요"

"숙제한다"

강서구 치매센터에서 오전 9시가 되면 인지기능과 치매에 도움이 되는 문제를 카톡으로 보내준다.

아버지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엄마, 뭐하세요?"

"글씨 쓴다"

요즘 엄마는 캘리그래피에 정성을 쏟는다.

아버지 치매 치료를 위해 구매한 캘리그래피 노트였는데, 아버지가 거들떠보지 않자 엄마가 대신 쓰게 된 거다.


식사 식간도 겹치지 않아야 한다. 수저와 그릇, 반찬도 따로 준비해야 한다.

부모님께서 먼저 드신 다음 방으로 들어가시면 내가 먹기로 합의했다.

다 드셨는지 방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점심때가 되었지만 아직 입맛이 없어 커피와 에이스를 준비하려고 주방으로 나갔다.

그런데 식탁 위에 하얀 종이들이 놓여있지 않은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엄마가 오늘 쓰신 캘리그래피 글씨들이었다

원본대로 쓰려고 펜을 바꿔가며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모아 쓰신 게 눈에 훤하게 보였다.


순간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현경아, 코로나 걸렸다고 너무 괴로워하거나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는 오히려 우리 딸 그동안 힘들었으니까 좀 쉬라고 하늘에서 내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커피만 마시지 말고 밥 먹고, 약도 잘 챙겨 먹으렴"


전화를 끊고 나서 식탁 위에 놓인 글씨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담고 가슴에 새겼다.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라'는  표현에서 한 번 멈칫하고,

'괜찮아,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는 글에서 목놓아 울었다.


걱정도 슬픔도 분하고 불안했던 마음들도 울음 끝에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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