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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의 뜰 Mar 24. 2022

자가 격리 3일째 : 아버지의 안암동

[자가 격리 치유 일기]


아버지가 외출을 하신다. 뻔하다.  자가 격리하는 나를 위로하려고 마트에 들러 에이스와 커피를 사고, 어김없이 약국에 들러 타이레놀과 위청수를 살 것이다.

분명 막걸리 한 병은 가슴 주머니 안에 감추겠지.

양손에 봉지를 들고 넘어질 듯 말 듯 뒤뚱거리며 걸어오실 거다.

지난주 나와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던 날, 길을 잃어버려 진료시간을 놓쳐버린 후부터 도통 바깥에 나가지 않으신다.

 

당신의 생의 할 일을 다 마치시고 평화롭게 노후를 즐기면 좋으련만, 기억이 흐려지고 기력이 쇠잔해진 아버지는 요즘 들어 우는 날도 많아졌다. 오십에 중풍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나이 일흔여덟의 아버지가 막걸리 한잔에 우신다. 아버지 외출하신 틈을 타서 얼른 시 한 편 놓고 왔다.

 


“아버지, 아버지 책상 앞 창문에 제가 시 한 편 붙여놓았는데 보이세요?”

“응, 보여”

“그럼, 전화기 끊지 마시고 저에게 지금 크게 읽어 주실 수 있으세요?”

“그까지 것 내가 못할까 봐. 아직 니 아버지 그 정도는 아니다.”

 

살면서 시(詩)라고는 한 번도 가까이해보지 못한 아버지가 또박또박 큰소리로

박준 시인의 [종암동]을 낭독하기 시작하셨다.

 

“종암동 개천가에서 홀로 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냄새가 풍겨와.... ”까지 읽어주시다가

갑자기 전화가 끊어졌다.


그리고 늦은 밤 다시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최동원이 쓰는 아버지에 대한 시 [안암동]

식탁 위에 놓아둔다며.



아, 오늘은 제가 아버지, 하며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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