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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의 뜰 Nov 19. 2022

순리와 점점 더 멀어지는

야근 하느라 밤 10시 쯤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찜질방처럼 집안에 열기가 후끈후끈했다.

"우리 딸 추울까 봐 아버지가 따뜻하게 해 놨지"

난방 보일러에 전기 히터, 전기장판까지 다 틀어져 있었다.  추운지 더운지도 모른 채 아버지는 딸이 오기만을 내내 기다리셨던 것이다.


"더우면 보일러를 끄셔야지요, 이렇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계시면 어떡해요!"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다그치고 말았다.

환하게 반기시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방으로 들어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하염없이 슬프고 애처로웠다.


그런데 거실 한가운데 없던 책상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살펴보니 올 1월에 처음으로 치매지원센터 등록하면서 아버지께 사드렸던 컬러링북들이 펼쳐져 있었다.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꽃들과 스토리 책이었다.

선을 넘지 않도록 색연필로 꼼꼼하게 색칠해 놓은 그림들을 한 장 한 장 넘겨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내게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을까.'

그것도 모르고 유난히 더 쌀쌀맞게 했으니...



아버지는 이제 늘 다니셨던 길도 헤매신다. 평생 드시던 약도 잊으셨다.

내가 떠나면 외로워서 어떻게 사나 하시면서 밤마다 눈시울을 적신다.


누구나 다 늙는다. 사람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순리다.

그 순리와 점점 더 멀어지는 게 치매라는 병이다. 기억을 잃고 감정도 잊는다.

자야 할 시간에 일어나고, 먹을 때가 아닌데도 먹을 것을 찾는다.


치매를 앓는 당신 때문에 딸이 속상할까 봐 애써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아버지가 눈물겹게 아름답다.

그게 아버지의 사랑이다.



내 마음이 컴컴한 지옥이었다가도 찬란한 햇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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