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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dsbyme Jan 10. 2022

질풍노도의 대학생, 그리고 햄버거

즐거움과 배움은 항상 의외의 공간에서 나온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질풍노도의 시기가 왔던것 같다. 악착같이 버티던 미국 생활이 자리잡아가던 대학교 2학년 약 1년간, 나는 이곳저곳을 혼자 누비며 방황 아닌 방황을 했다. 주말만 되면 연비가 좋은 차를 타고 동네 구석에 있는 작은 식당부터, 3~4시간은 운전해야 갈 수 있는 도시까지 정말 거침없이 돌아다녔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어두컴컴한 집에 돌아오면 깊은 현자타임에 들어서곤 했지만 말이다.


한참 햇살이 따갑던 6월 즈음, 나는 주말을 맞아 졸업한 고등학교가 있는 도시로 아침 일찍 떠났다. 딱히 목적이 있는 여행은 아니었다. 먹고싶은 맛집이 있는것도 아니었고, 만나서 시간을 보낼만한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그냥 왠지모를 공허한 마음을 메꾸고자, 좋아하는 노래를 가득 담은 CD 몇장을 들고 운전대를 잡았다.


4시간동안 아무 생각없이 운전을 해서 도착했고, 괜시리 학교를 한바퀴 돌고 근처 상점들을 구경했다. 그 와중에 돈은 아껴야된다고 생각해서, 1불짜리 맥도날드 버거를 우겨넣으며 허기를 달랬다. 그 해 여느 주말처럼, 의미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나름의 질풍노도 시기를 달래고 있었다.


갈 길이 멀었기에, 저녁 6시즈음 서둘러 살던 집으로 출발했다. 나름 운전을 좋아하고 체력엔 자신이 있던지라, 이날도 야간운전은 어렵지 않을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꼭 지나친 자신감은 방심을 불러오고, 변수를 만들어낸다. 두시간정도 운전했을 무렵부터 급격히 눈이 감기고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1불짜리로 대충 때운 점심덕분인지 배도 고파왔고. 그럴법도한게, 그 주에 나는 시험공부를 한답시고 잠을 제대로 못잤었다.


미국 로드트립을 해본 분들은 알겠지만, 고속도로 중간에는 쉴 수 있는 공간이 정말 없다. 그래서 피곤한 눈을 부릅뜨고 쉴만한 곳을 찾아 사력을 다해 운전했다. 20~30분정도 달렸을까, 나는 불빛이 보이는 이름도 모르는 작은 마을에 들어갔다.


영화 "하우스 오브 왁스"에 나오는 작은 마을처럼 으스스한 곳이었다. 시간도 늦어서 대부분의 가게는 불이 꺼져있었다. 식사는 포기하고 잠시 차를 세워두고 눈을 붙여야겠다 생각했을때, "HAMBURGER"라고 크게 쓰여진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다행히 불도 켜져있었고, 안에 사람 실루엣도 보였다. 아직 하늘이 날 버리지 않았다는 생각과 함께 서둘러 주차를 하고 가게에 들어섰다.


손님들은 평균연령 50세일듯한 중년의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유일한 20대이자 동양인이었던 내가 낯설법도 한데, 주인 아저씨는 살갑게 날 맞이하며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작은 가게였던지라 바 테이블에 앉았고, 주문한 햄버거가 나올때까지 나는 한참을 주인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여년을 군생활을 하다가, 다리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전역을 했다고 했다. 수술만 8~9시간 걸렸고, 겨우 퇴원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땐 모든게 막막했다고 한다. 세상이 자길 버렸다는 생각에 술독에 빠져서 2~3년은 날렸었다고. 그러다가 문득 거울 속 자신을 봤는데, 군인 시절의 각잡히고 멋진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다음날부터 아저씨는 햄버거 가게에 무작정 달려가 일을 배우고 하루하루를 살아왔고, 나중에는 가게를 인수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별 이야기 아닐수도 있는데, 한참 무기력함과 싸우던 나에겐 울림이 있는 스토리였다. 스스로 악착같이 버텨왔다고 생각하며 현실에 안주하고 있던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햄버거 아저씨처럼 어느순간 내가 쌓은 모든게 사라진다면, 지금의 나는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해보았다. 그리고 난 아직 방황보단 달려나가고 이뤄야 할 것이 많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것 같다.


사실 이 날 먹었던 햄버거의 맛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배가 고파 맛도 모르고 먹었던 탓일수도 있으나, 햄버거보다 아저씨의 이야기가 준 작은 깨달음이 더 컸기 때문인것 같다. 이날 이후, 나는 의미없이 돌아다니는걸 멈추고, 주말을 좀 더 나, 그리고 내 미래를 위해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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