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살, 미래를 라식하다

눈 앞의 급급했던 지난 날을 뒤로하고 미래로 나아가고자하는 직장인

by wordsbyme

어린시절의 나는 참 꿈이 많았다. 10살도 안된 꼬맹이가 뭘 알아서 그랬겠냐만은, 그때 당시 썼던 그림일기를 보면 난 30살, 40살, 50살까지의 미래를 거창하게 그려두곤했다. 욕심많은 어린 내가 과학자부터 축구선수까지 동시에 성공적으로 해내겠다는 포부를 그려낸것도 우스웠지만, 그보다 내가 가장 신기했던건 그 어린나이에 내 노후까지 꿈을 꾸고 그렸다는것이었다. 당장 다음날까지 내야하는 숙제도 미뤘던 어린아이가, 몇십년 뒤의 모습까지 생각했다니. 글을 쓰는 지금도 요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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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라식수술을 끝내고 처음으로 맞이했던 아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눈도 뜨기전에 습관적으로 안경을 찾던 손이 민망할정도로, 맨 눈으로 보는 세상은 너무나도 밝고 선명했다. 안경이란 작은 렌즈 너머로 힘겹게 보던 세상이, 내 눈으로 볼땐 훨씬 더 밝다는걸 이때 깨달았던것 같다. 안경을 썼을땐 오만상을 써야 보였을 멀리 있는 글씨도, 문명의 혜택을 본 눈으론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수술하고 한동안은 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도 멀리 있는 풍경을 신나서 한동안 응시하곤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밝아진 눈 만큼, 나 역시도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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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어느새 맨눈으로 보는 세상에 익숙해져버렸고, 이젠 멀리 있는 풍경보단 30cm 눈 앞의 이력서와 씨름하는 취준생이 되어있었다. 대학생스러웠던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라는 각오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지 오래였고, 나에겐 당장 내일 모레 잡힌 면접과 평생 백수로 살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만이 가득했다. 라식 수술로 얻은 시력은 여전히 1.8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내 꿈과 세상을 보는 시야는 수술 전 마이너스보다 못한 상태가 되어버린것이다. 꿈은 여전히 있었지만, 어릴때보단 확연히 근시안적이고, 불안했다. 그저 한달 뒤, 번듯한 직장인이 되어 "워라밸" 넘치는 삶을 살고싶다는, 소박한 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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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또 5년의 시간을 흘러보냈다. 매달 꾸준히 통장에 꽂히는 월급을 믿고 이런저런 취미를 가지기도하고, 코로나 전에는 비행기 티켓을 과감하게 질러대며 해외여행도 갔다. SNS와 메신져 프로필엔 그럴듯한 여행과 취미 사진이 가득했지만, 누군가 "넌 꿈이 뭐야?"라고 물어보면 아무 대답도 하기 어려운 그런 상태였다. 몇년 후에 커리어적으로 무언갈 달성하겠다보단, 당장 연말에 나올 성과급이 몇퍼센트 수준일지 목매고있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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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직장생활 5년차에 접어들었던 나는 이대로는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설프게 따라하는 주식과 저축으로는 흔히들 말하는 "파이어족"이 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것처럼, "성공한 월급쟁이"들의 책을 밤새 읽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부"를 가져왔지만, 하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어린 시절의 나처럼, 10년, 20년 후의 목표를 가지고 달성하며 나아갔다는 점이었다.


뒷통수를 한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업무 특성상 제품 하나의 타임라인은 일단위로 짜는 나였는데, 정작 나의 미래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그저 퇴근 후 운동하고, 책 몇장 읽는것으로 스스로 안주하고 잘하고 있다며 위로해왔다. 그리고 이 날 이후, 나는 내 미래를 향한 눈을 "라식"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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