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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운트레이크 Dec 01. 2023

100년 인생 닷새로 도전하기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5일 대결

올해는 우리 가족 역사상 처음으로 한해 두 번 이사를 치른 해가 되었다. 기념비적인 대이동이었다. 퇴사 후 분양받은 아파트 두 곳에 들어가 살아보고 다시 이사하는 전형적인 '집장사'의 몸테크이자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누가 뭐 래든.. 어느 날 고액 연봉 생활을 끝내버린 나에게 이 결정은 해야 했고 잘 해내야 했다.


지난봄 5월에 평택에서 원주로 그리고 가을 11월에는 다시 원주에서 퇴사 전 출발점이었던 분당으로 돌아왔다.


"요즘은 어디에서 살아?"


오랜만에 판교에서 회사 옛 동료들을 만났다. 서로 남의 사연 깊이 관여하려 하진 않지만 현재 어디서 살고 있는지, 전에는 어디서 살았는지 정도는 좀 업데이트해야 그동안 못 풀었던 '썰'들을 편하게 풀 수 있는 법이다. 


나의 잦은 이사 이유를 너무 자세히 설명하면 재테크 방법론과 엉켜버려 남들은 내 속뜻을 언뜻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로 아주 대충 말하면 이 사람은 '지금 뭐 하는 삶일까?' 다소 기괴한 '가족 유랑 스토리'가 돼 버린다. 


어쨌든 어제도 서로가 그동안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가 관심 주제였다. 각자 맥주잔을 비워가듯 푹 묵힌 이야기보따리들을 하나하나 꺼내 풀고 싹싹 비워버렸다.


'우리가 사는 모습은 결국 똑같다.. 하지만 각자 이야기의 의미는 다르다.' 


고대 그리스인은 시간을 크게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구분했다. 크로노스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물리적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의미의 시간'이다. 2023년 크로노스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 같이 흘렀지만 나와 우리 가족의 카이로스 시간은 남들과 다른 이주의 반복이었다.


간만의 술자리로 얼굴이 불타오르는 고구마가 되어 들어온 나를 힐긋 쳐다보던 아내가 묻는다.


"당분간 이사 계획은 없겠지? 아니 없어야 돼."

"계획? 작년만 해도 두 번 이사 계획 같은 건 전혀 없었지.."

"그럼 우리가 계획 없이 살고 있는 걸까?"

"아니 그 반대 아닌가? 경로수정을 초단위로 하는 거지."


얼렁뚱땅 합리화하며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해 본다. 근데 왜 멀미가 날까.


'이런 술이 다시 올라오네..' 




살아가며 가끔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쯤 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직장생활 30년을 하고 빠른 졸업을 해버린 지 3년이다. 직장이 만들어주던 주변의 지형지물은 완전히 없어졌고 새 지도 위의 현 위치는 도대체 어디쯤인지..


'뭔가 인생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할까?'


지금 방향점이 될 지도를 누가 만들어 주겠는가. 그나마 50여 년 동안은 다니던 학교나 직장에서 대신 만들어주었던 지도들.. 고마웠지만 이제 그런 지도가 필요 없다. 이제 내가 만들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물리적인 크로노스의 시간들은 흘러간다. 나에게 의미가 있는 카이로스의 시간은 내가 생산자 역할을 해야만 생기는 시간이다. 


흔히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미리 계획을 잘 세우라고 말한다. 올해 계획에 없던 두 번의 이사를 생각해 보면 살면서 '원래 계획'이란 게 과연 의미가 있나? 생각이 든다. 돌아보면 계획대로 산 경우보다 생각과 경로를 계속 수정해서 '어쩌다~아무튼' 풀어가는 삶의 방식이 더 유효했던 거 같다. 그러니 너무 계획에 중독될 필요는 없다. 그런데,


'건강한 인생, 길면 100년이라며..'


계획 없이 살기엔 뭔가 길고 무책임해 보인다. 나는 지도나 나침반이 필요한데.. 정확히는 이제 지도보다 나침반이 필요하다. 멀리 방향점을 안정감 있게 보여주는 나침반은 없을까?


그런데 최근 '주역' 해설서를 낸 윤재근 교수의 한 언론 칼럼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는 말한다.


"내다봐야 할 앞날이란 결코 먼 미래가 아니다. 예전에 '인생 닷새'란 말이 있었다. 그제, 어제와 오늘, 내일과 모레의 5일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오늘로써 그제와 어제를 반추하고 다가올 내일과 모레의 삶을 건강하게 성취하는 것이 주역의 사상이라고 말한다. 나는 주역은 잘 모르지만 '인생 닷새'에 집중하라는 말은 가슴에 꽂혔다. 이게 나침반이 될까.


'너무 먼 미래 걱정 말고.. 인생 닷새에만 집중하자.'


지금 시대는 구글 AI가 800년 걸릴 연구과제를 한 번에 해결해 버리는 시대다. 길어야 '100년 인생' 그 안의 과제들 너무 길게 볼 거 없다. 그냥 '인생 닷새' 키워드로 도전해 본다. 


'오늘 기준으로 앞뒤 인생 닷새.. 카이로스의 시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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