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으로도 따뜻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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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생각만으로도
따뜻한 분이 몇 분 계신다
지금으로부터 오래전.
시골에 아는 분이
옥수수 좀 팔아달라기에
온라인에 올려 판 적이 있는 데
클레임으로 전화가 온 적이 있었다
수화기 너머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나이가 좀 있으신 분이셨다
차분하게 아구 사장님 이게 쪄도 쪄도
계속 딱딱하고
어쩌면 좋겠냐고 하면서 말씀을 하시는 데
네. 아 네 그러죠.. 아휴 죄송해요
저도 오늘 농가서 수확한 거
먹어보라고 갖고 왔길래
먹어봤더니 제가 먹어봐도
와 이건 너무 딱딱했다고
이게 수확은 당일 한 게 맞는 데
엊그제 비도 오고 햇볕은 세고
그래서 이게 요즘 날씨에
저절로 쪄지면서 여물어분게 아닌가.. 하면서
웃었더니
편하게 웃으신다. 더군다나 흑찰이라
기후에 좀 민감해서 제가 내일 거기 밭에 가서
만져보고 말랑말랑한 걸로 다시
뜯어서 보내드려 볼게요라고 했더니
아휴 사장님 이렇게 젊으신 사장님이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자기 얘길 믿어준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마켓에서 자주 사보는 데
다른 판매자는 그럴 일 없다고
듣지도 않고 끊어버리는 데
참 이 나이 든 사람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괜찮다고 고생인데 언제 거길 또 가서 직접
뜯어 보내주냐고
돈 주고 사신 건데 해드리는 게 맞다고 하면서
말씀드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와 땡볕에
옥수수 뜯다가 무보수에 난 또 뭔 오지랖
고생인가 . 싶었는 데
보내고 난 다음날 연락이 왔다
그때 그 할머님은 고맙다고 받자마자 쪄서
지금 맛있게 잘 먹고 있다고 얘길 하시면서
이런저런 얘길 하신다
마치 나를 아들 같이 느끼셨을까
손자처럼 느끼셨을까
시골에서 힘들진 않는지
이런저런 말씀을 많이 해주시고
몇 개월 전 동생이 먼저 하늘나라 가서
마음이 참 외롭고
슬프고 그랬는 데 .. 하시면서 이야길 하신다
여러 얘길 하다가 은혜롭단 말씀을 하시길래
여러 단어 중에 이렇게
아름다운 단어가 있구나 싶었다
여기에 대화내용을 다 적을 순 없지만
그날 통화는 꽤 인상 깊었고, 푸근했다
후에 몇 개월 뒤에 고춧가루도 있냐고
전화가 왔을 때는
나는 고춧가루 보다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으셔서 전화하신 그분의 마음을
알고는 이런저런 얘길 해드렸다
그렇게 종종 일 년에 한두 번. 안부를 묻다가
어느 날.
내가 다른 고객 때문에 너무 마음이 상했던 날
그분이 생각나 전화를 하면
마치 손자처럼 다 들어주시고는
나를 다 안다는 듯 많은 이야기 들로
위로를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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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기 바빴을까. 아님 핑계일까
정신없는 나날들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어느새 몇 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때가 서른한둘, 이였을까.
스물아홉이었을까.
그 후로 연락이 한번 왔었던 거 같은 데
그날 일이 생겨 못 드리고
다음날 연락 드려야지 했던 게
그러고는 시간이 꽤 지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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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서른 중반을 지나 후반이 되고
그렇게 해를 거듭할수록,
이번에 연락을 드려볼까 하면서도 드리지
못 했던 이유는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혹시나, 그분이 아닌 다른 분이 할머님의
안부를 말해주실까 봐
내가 그 분과의 헤어짐을 슬퍼한다는 걸
할머님의 연세가..
그 당시에도 꽤 되셨기 때문에
한 해가 지날수록 함께 지낼 날 보다
나에겐 가족들에게도
말 못 할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연중 이유 없이 전화해도 나의 안부를 물어봐 줄
정겹고 따뜻한 곳이 사라질까 봐
그 부드럽고 온유한
할머님의 목소리를 못 듣게 될까 봐
모르고 지내는 게
아직 슬프지 않으니까.
판매자와 고객으로 알게 되었고
뵌 적도 없지만 인자한 얼굴이 그려지듯
나에겐 특별했던 분
지금이라도 전화를 드리면
아이고 우리 000님 하고 결혼은 하셨냐며
왠지 웃으며 반갑게 받아주실
고객님이셨던 할머님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 밤이 될 때면
잘 지내고 계시죠라고 묻고 싶어
핸드폰을 들었다가도,
이내,
머뭇거리다 내려놓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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