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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물결을 따라

by 문성 moon song

알흔에 머무는 동안 몇 번이고 바위투성이 언덕에 올라 바이칼을 내려다봤다. 햇살을 따라 흔들리는 수면. 메마른 흙과 험한 바위 위로 솟은 뾰족하게 솟은 소나무 때문인지 흔들리는 물결은 더더욱 찬란하게 빛나곤 했다. 반짝이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동해의 풍경이 떠올랐다. 7번국도를 따라 달리며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감탄했었다. 아무데서나 차를 세우고 하염없이 지켜보곤 했던 동해바다가 그리워지고 이어서 한국이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웠다. 고작 2개월을 떠나 있었을 뿐인데.
흔들리는 물결을 따라 내 마음도 흔들리고 있었다. 자꾸만 바이칼로 향한 건 낯선 사람들 속에서 갈피를 잡기 어려웠던 탓이기도 했다. 이스라엘, 스위스,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온갖 국적의 서양인이 모여있었지만 한국인은 나 하나였다. 모두가 호의 넘치는 상냥한 사람들이었음에도 어느 순간부터 그들과 나 사이에 거리가 느껴졌다. 그들과 나 사이는 북미대륙과 동아시아 사이만큼, 태평양만큼이나 멀었다.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중국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했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 벤 애플렉을 최고의 이상형으로 꼽으며 그렇지 않느냐고 반문할 때부터는 할말이 없었다. 루시 루우의 섹시함에 대해 덧붙이는 게 나를 배려한 것이었음을 알았지만 그 배려가 고맙지도 유쾌하지도 않았다. 내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도 발음하지도 못하는 걸 매번 고쳐주는 것도 지겨운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 식사 때마다 좌중을 휘어잡으려 하던 미국인들이 러시아인들과 노래로 대결을 펼치기에 이르자 그걸 지켜보고 있느니 바이칼을 지켜보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 흔들리는 물결을 지켜보면서도 사람들 속에 흔들리던 내 마음을 비춰보고 있었다. 외로워하는. 위축되고 주눅든. 낯선 상황 속에 던져진 또 다른 내 모습. 이전의 난 어떤 모습이었나. 내가 바라던 난 어떤 모습이었나. 가장 나다운 나는 어떤 모습인가. 흔들리는 수많은 나 속에서 나를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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