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의 슬픔
혹은 super man & suffer man
아버지의 슬픔에 대한 노래는 예전부터 많이 생산되었다. <아빠의 청춘>부터 <슈퍼맨의 비애>를 거쳐 싸이의 <아버지>와 <양화대교>까지.
주지하는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아버지'는 다정다감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말로 전하지 못한 정을 지닌 남자로 나타난다. 그래서 자식에게 친구 같은 존재가 되지는 못해도, 존경받는 인물이 될 수는 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에야 얻을 수 있는 명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말로 전하지 못한 정을 자식이 깨달을 때까지 걸릴 시간이야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남편'은 어떨까. 평소 무뚝뚝하고 냉담하기까지 했던 그가 주머니에서 구겨진 월급봉투를 무심한 듯 내던지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가장들이 보여주는 가장 극적이고 낭만적인 장면이었다. 그 돈은 넉넉하든 부족하든 자신의 모든 행동을 용서받을 수 있는 '치트키'와 같은 것이었고, 아내와 자식도 짐짓 인정해주는 제스처를 취해 주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 이후로 남편의 월급명세서가 매우 투명하게 공개된 덕분에, 월급봉투의 아우라는 사라지고 과거 가장들의 경제적 권위도 약화된 것처럼 보인다. 남편들은 자신의 권위를 찾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그것은 결국 언행의 뻣뻣함과 가족에 대한 무관심 혹은 무심으로 귀결되는 결과를 낳았지만 말이다(과거의 가장들이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가족과의 의도적인 단절을 보여주었던 것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거실에서 함께 있을 수는 있었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퇴근한 가장들이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거실이 아니어도 좋다. 와이파이가 없어도 좋다. 무제한 요금제를 쓴다면, 집 밖으로 나가서 마음껏 게임과 스트리밍 서비스를 즐길 수 있으리라!).
할리우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남편의 모습은 한국의 아버지와 남편을 비판하기 위한 비교대상으로 자주 언급되었다. 일과 가정의 완벽한 균형, 친구처럼 허물없지만 자식에게 존중받는 모습, 아내와의 갈등을 언제나 따뜻한 눈길과 대화로서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이 모든 것들은 완벽한 남자 '슈퍼맨'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예능에서 남편이자 아버지인 남자가 가정으로 복귀할 것을 요구하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통해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이와 같은 방송에서 남자들은 한결같이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 아내에 대한 감사와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 등을 전달한다.
문제는 이러한 슈퍼맨의 서사 뒤에 생산되는 여성에 대한 몇몇 희화화가 아닐까 싶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남자들의 모습이 텔레비전을 장악하면서, 정작 과거의 무능력한 가장과 같이 변해버린 여성의 모습도 등장한다는 말이다. 집안일과 바깥일을 모두 성공적으로 해내는 여성은 해방된 여성이 아니지만(전통(?)적인 젠더에 얽매어 있기 때문에), 집안일에 대한 무관심과 문외한이 발견되고, 음식을 하나도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은 당당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젠더로부터 벗어난 여성의 해방을 말하는 것도 아닌데, 왜냐하면 가정으로의 복귀를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남성들이 바깥일과 집안일을 모두 능숙하게 해내야만 하는 것과 달리, (일부 생산된 이미지로서) 여성들은 단지 바깥으로 나아가 자신의 꿈을 펼치는 과거 가장들의 담론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활동 비율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일을 담당하는 비율은 여전히 남자보다 많다는 통계는 어찌 보면 여성을 집안일로부터 완벽하게 해방시키는 일, 그래서 예전의 남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집안일에는 무관심하면서 바깥일에만 집중하는 모습으로 바꾸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로 생각하게끔 만들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컨대 슈퍼맨 혹은 슈터 대디(기저귀 이름도 있다!)는 전천후 능력자를 가리키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반면, 원더우먼 혹은 워킹맘이라는 단어는 해방되지 못한 여성들을 지칭하는 비판적 개념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 때문에, 여성해방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회는 여전히 남성 사회일 수밖에 없다. 기존의 남성 사회 속으로 여성이 흡수되는 일, 다만 그것을 주체적으로 이루어나갈 뿐이다.
슈퍼맨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남자들은 과거 여성들이 경험해야 했던 슬픔을 갖게 될 것 같다. 과거의 남자들이 가정으로 복귀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남성과 여성의 고리타분한 이분법에 가로막혀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슬픔을 느꼈다면, 이제는 탈이분법 속에서 가중되는 고단함 때문에 느끼는 슬픔으로 전환되는 분위기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비 남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더욱 강하게 느껴질 것만 같다. "저 집 남자는 일도 안 하나 봐? 남편 분은 무슨 일 하세요? 자주 보이시는 것 같아서" 따위의 말들 속에서, 슈퍼맨을 꿈꾸는 남성들이 결국 슬픈 남자로 살아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