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해, 「고래에게는 터미널이 없다」

서두를 이유가 있을까, 우리는 같은 바다를 공유하고 있는데 말이야.

by 정선생

권영해 시인은 올해 1월에 한국문인협회 울산시지회장(울산문인협회장)이 된 시인이다. 권영해 시인의 시 에는 ‘장생포’나 ‘고래’를 소재로 다룬 작품이 꽤 있다. 특히, 2001년에 출판한 『유월에는 대파꽃이 핀다』라는 시집에는 「꿈꾸는 장생포」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내가 이 시를 접한 것은 『울산문학』 24호를 통해서인데, 시집에 수록할 때에는 제가 읽었던 시 앞부분에 내용이 더해진 모습이었다. 좋은 시이지만, 방송에서 낭송하기에는 길어 보여서 이번에는 선택하지 않았다.


물론 「고래에게는 터미널이 없다」도 짧은 시는 아닐 수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고래 바다 여행선을 타면
그를 꼭 만나야 한다고 기대하지 마라
그건 욕심이다

향유고래를 만나러 가는 일은
고달프고 지친 몸을
잠시 오아시스에 뉘는 것과 같은 것
세찬 모래바람 속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외로운 낙타처럼
고래는 거친 세파를 헤치고 유영하는
한 떨기 그리움일 뿐이다

너무 서두르지 마라
고래는 절대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일렁이는 파도의 속살에는
날개 달린 포유류가 회유해야 할 항로는 닦여 있지만

그가 머무를 정거장은 어디에도 없다
사하라에 급작스레 스콜이 쏟아지면
낙타의 뜨거운 발자국이 흔적 없이 지워지듯이
한바탕 정어리 떼가 훑고 간 바다 어디에도
고래가 지나간 족적은 찾을 수가 없다

바다의 까치놀 속을 낙타가 순례하듯
오늘도 고래는
해무 드리운 사막 위를 신기루처럼 걷고 있다

장생포에 ‘장생포 고래문화특구’가 지정되고 고래박물관을 비롯한 다양한 시설이 운영 중인데, 이곳에서 운행 중인 ‘고래 바다 여행선’은 고래탐사 및 연안 투어를 할 수 있는 멋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고래 바다 여행선’을 타더라도 고래를 보지 못한 채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알고 있다. 고래를 보기 위해 뱃삯을 지불한 사람들은 푸념하는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시는 ‘고래’를 ‘낙타’에, 그리고 ‘바다’를 ‘사막’에 연결하고 있다. 황량한 모래사막을 묵묵히 걸어가는 낙타처럼, 고래는 드넓은 바다를 멈추지 않고 유영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망망대해나 황량한 사막을 살아가는 고래나 낙타를 우연히 마주하기란 지나친 욕심일까. 나아가 그들을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만나기를 바라는 일은 더할 나위 없겠다.


그래서인지, 구모룡 교수는 이 시를 평론하면서 ‘고래가 관광의 대상이 되는 현상을 비판’한다고 말했다. 이런 평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중심주의 비판이라는 거대한 측면에서 이 시를 읽을 때 타당해 보인다. 실제로 고래생태체험관의 경우는 몇 해 전 구모룡 교수와 같은 맥락에서 동물보호단체의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동물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인간의 욕심만을 위해 사육되는 일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구모룡 교수의 지적도 의미가 있지만, 권영해 시인은 ‘울산 장생포’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시인이라는 점을 기억해야겠다. 앞서 말한 권영해 시인의 「꿈꾸는 장생포」에서는 포경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과거 장생포를 회상하면서, 장생포에 ‘새로운 활력’이 넘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꿈’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생포가 옛 시절과 같은 활기를 되찾기를 바랐던 시인이 장생포의 새로운 활로를 전면적으로 비판했으리라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나의 생각에 이 시는 ‘고래 바다 여행선’을 즐기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관광의 대상으로 삼더라도 그 방법은 얼마든지 지혜로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시에 담긴 시인의 생각은 “고래를 보지 못하더라도 아쉬워하지 마라, 그것은 애초에 이루기 힘든 바람이다.” 정도인 것 같다. 간절한 대상을 만나는 일은 굉장히 가슴 벅찬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불한 뱃삯이 반드시 ‘고래를 보는 것’에 대한 비용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돈을 내기만 하면 고래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은 고래 관광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우리가 ‘고래 바다 여행선’을 타는 이유는 고래와 같은 장소를 누비는 즐거움, 고래가 지나갔을지도 모를 바닷길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여전히 공존하고 있음을 느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권영해 시인은 간절히 그리워하는 대상이지만 쉽게 만날 수 없는 고래를 찾아다니는 과정 그 자체야말로 고래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저 고래를 눈과 사진으로 담아내려는 지나친 욕심을 비판한 것처럼 보인다.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사랑이랄까?


그렇기에 권영해 시인은 ‘고래 바다 여행선’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너무 서두르지 마라”라고 말한다. 그것은 결코 고래를 보러 바다에 나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겠다. 장생포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실현된 ‘아버지의 꿈’이 ‘고래와 상생하는 울산시민’의 마음으로 이어져나가야 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원전 6천 년 전부터 시작된 울산의 고래잡이가 1986년 상업포경이 금지되면서, 고래는 비로소 울산 사람들에게 포획물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 듯하다. 그저 자신의 길을 가다가 마주치면, 반갑게 안부를 전하는 오랜 친구처럼 그렇게 지내는 것이야말로, 상업적 의미로만 고래를 대하지 않는 진정한 방법이 될 것이다. ‘고래와 울산’이 상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KBS 울산 제1라디오, <라디오세상 울산만사> 4월 19일에 방송한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keyword
이전 03화최일성, 「주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