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bout THINGs

2021년 상반기 인연, 울주도서관

울주도서관 기념 문집, 울주도서관에서 펴낸 두 번째 책

by 정선생

울주군에서 자라고 결혼 전까지 생활하면서, 울주도서관에 들를 일은 없었다. 대학 도서관이면 충분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기는 전공 서적을 뒤적여야 하는 입장에서, 대학 도서관만큼 좋은 곳이 있었을까.

작년 가을, 우연한 기회에 찾아간 울주도서관에서 올해 봄까지 강의를 할 수 있었다. 청소년과 청년이 아닌, 소위 중년의 수강생 분과 함께하는 시간은 대단한 경험이었다.

때마침 30주년을 기념하는 문집을 제작한다고 하기에, 졸고를 공모했다. 그리고 수업 결과물로 만든 책. 브런치를 통해 알게 된 부크크 자가출판 서비스를 이용했다. 표지는 도서관에서 구매해 주었다. 도서 구매와 편집은 나 스스로 했다. 나름대로 좋은 결과물이어서 기분이 좋다.

중년의 삶, 혹은 여성의 삶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요즘이다. 그런 만큼 이 책은 대단한 지식이나 정보를 담지 않았음에도 충분히 전해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딸, 아내, 그리고 어머니였을 이들의 삶이 지니는 가치를 헤아려 보면 어떨까 싶다.(★『나의 삶, 나의 글』의 판매 수익금은 울주도서관 기금으로 사용됩니다.)



30주년 기념 문집에 공모한 졸고는 아래와 같다.


우리에게는 ‘글나래’가 있으니 누구보다 자유롭다
-울주도서관 글나래교실에 관한 斷想-

‘글나래 교실’ 창밖으로 고속열차가 내달린다. 오가는 열차에 몸을 실은 그들은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일까. 지역 발전을 위해 건설한 고속열차가 지방 인구가 감소하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열차 소리가 반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곳을 벗어나 화려한 비상을 꿈꾸는 그들의 모습은 오히려, 날갯짓을 할 수 없는 좁은 새장 속에 갇히려는 안타까운 몸부림 같기만 하다.
광역시이기는 하지만 지방도시인 울산, 그 중에서도 이곳 울주군에서 ‘책을 읽는 일’은 정적으로만 보일 수 있다. 구영리에서 자라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울주군이 언제쯤 구로 승격할 수 있을까에 관한 것이었음을 생각하면, 그 시절 사람들도 도시화를 꿈꾸고 있었던 것 같다. 책 읽을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일해야만 하는 도시화가 무엇이 그리 좋았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가만히 앉아 책을 응시하는 사람에게 생명력이 넘치리라 생각하기는 힘들겠다. 보통은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에서 활기를 찾으니 말이다. 어쩌다 책장을 넘기거나 자세를 고쳐 잡는 순간을 목격하지 못한다면, 책상에 앉아 깜빡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활력이 없다고, 현실에 맞설 용기나 힘이 없어 책 속으로 숨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일’은 나만의 방식으로 ‘책을 일구는 행위’이다. 활자 이면에 숨은 의미를 끄집어내는 일이다. 그러나 그 의미도 작가가 의도한 대로라기보다는 나의 관점에서 조정된 의미에 가까운 것이다. 책에 순응하는 독서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책은 독자의 삶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재료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듬지 않은 재료로는 원하는 음식을 만들 수 없다.
‘울주도서관 글나래교실’은 ‘책 읽기’를 넘어 ‘책 일구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자기 마음의 텃밭에서 수확물을 뽑아 올리는 곳이다. ‘책 일구기’라는 말을 사용하며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아무리 강의를 해도 그에 공감하는 경우를 보기 힘들었는데, 바로 이곳에서 나는 ‘책 일구기’를 향한 공감과 실천을 마주했다.
작년 가을 처음 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 내가 더 이상 선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대기적으로 그들은 나를 앞섰기에 선생이었음은 물론이고, 각자의 분야에서 이미 나를 앞서 있었기에 선생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생소하게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대체로 자신의 독서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해석하고 반론하는 과정을 즐겼다. 그들 앞에서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동료였을 뿐이다.
올해도 ‘울주도서관 글나래교실’에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여전히 창밖으로는 이곳을 벗어나려는 고속전철의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는 ‘글나래교실’에 앉아 자신의 날개를 정비한다. 텅 빈 하늘의 충만함을 잊은 채, 그저 지상에 내려앉아 바닥만을 쪼아대는 새들을 안타까워하면서.
아니, 우리는 이미 날고 있다. 가다듬은 ‘글나래’를 펄럭이면서 유유히 날고 있다. 속도에 몸을 맡긴 사람들은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느리지만 깊이 있는 진정한 자유를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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