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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Jan 11. 2018

사랑의 종점, 돌아가는 첫차는 언제쯤 오나요?

나희덕의 <숲에 관한 기억>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행복한 일일까? 아마 이러한 물음 자체가 어리석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이 100퍼센트의 행복을 보장한다면, 헤어져야 할 연인은 없을 것이고, 별거나 이혼을 해야 할 부부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더 추해지기 전에 가장 행복한 순간에 헤어지는 것이 더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 요즘에는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전의 서사에는 분명 그러한 일들이 있었다. 드라마에서 소설에서 영화에서 그런 이별 장면은 언제나 아름답게만 느껴졌고, 그들의 사랑이 고귀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요즘 황혼 이혼 대신 (일부에서) 유행한다던 '졸혼'이라는 개념도 생각해 보면 이런 것인가 싶다. 사랑하고 있지만, 별거의 상태로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것. 가끔 보고 싶을 때 만나는 것. 그리고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 이혼이나 별거처럼 보이지만, 아니란다. 얼마나 모순적인가.


아무튼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놓아준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 여전히 사랑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것도 결국 자신의 생각을 기호로써 전달한 것에 불과한 이상, 꾸며진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헤어지자고 말하는 사람이나, 그 말을 듣는 사람이나 그렇게라도 믿고 싶을 따름이겠다. 사랑하지 않아서, 사랑이 사라져서, 사랑이 변해서 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 사람과 함께 했던 모든 일들의 의미를 상실해 버리는 일일 테니까 말이다. 추억 하나쯤은 답례품(혹은 전리품)으로 가져야 헛헛한 마음이 조금은 달래지지 않을까.


너는 어떻게 내게 왔던가?
오기는 왔던가?
마른 흙을 일으키는 빗방울처럼?
빗물 고인 웅덩이처럼?
젖은 나비 날개처럼?
숲을 향해 너와 나란히 걸었던가?
꽃그늘에서 입을 맞추었던가?
우리의 열기로 숲은 좀더 붉어졌던가?
그때 너는 들었는지?
수천 마리 벌들이 일제히 날개 터는 소리를?
그 황홀한 소음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사랑은 소음이라고?
네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던가?
그 숲이 있기는 있었던가?

그런데 웅웅거리던 벌들은 다 어디로 갔지?
꽃들은, 너는, 어디에 있지?
나는 아직 나에게 돌아오지 못했는데?

나희덕, <숲에 관한 기억>


누군가와의 헤어짐을 실감하는 것은 언제일까. 이를테면 매일 밤 귀찮게 울려 대던 메시지와 전화벨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일까. 퇴근하던 길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늘 들었던 그 사람의 목소리가 그리워지는 때일까. 내가 편안하게 말을 걸고 응석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어떤 물건을 바라보면서? 행복한 내용의 드라마를 보면서? 어쩌면 카페에서 우연히 들었던 노래를 길거리에서 또다시 들었을 때, 헤어짐을 실감할지도 모르겠다. 너무 아재 같은 발상이었을까. 요즘의 연인들은 이러한 것들 때문에 마음이 괴로운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람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랑이 크게 변하지도 않았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사랑이 가벼워진(가벼워져 보인다고 말하는) 요즘이라고 해도 이별이 지닌 아픔조차 가벼워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과 이별을 대하는 자세가 유연해졌다고 해서, 사랑과 이별 자체가 지닌 질량이 변질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이렇게 보면 질량 보존의 법칙은 인생의 진리를 담았다).


나희덕 시인의 <숲에 관한 기억>은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슬픔을 쏟아내고 있다. 1연을 가득 채운 의문형 구절들은 사랑에 빠진 순간, 사랑했던 날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도무지 믿지 못하는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사랑한 것은 맞는지, 우리의 사랑이 과연 진심이었는지, 우리가 함께한 날들이 현실이었는지, 그때의 행복은 나만 느낀 것인지, 현재의 아픔은 오직 나만의 것인지, 너 역시 나와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말이다.


역시 사랑은 소음인가 싶다. 달콤한 속삭임은 물론이고, 기대가 배신으로 돌아올 때 목청 높여 싸웠던 기억까지, 그 모든 소리들이 소란스럽게 사랑의 기억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소음이 싫어서, 소음이 사랑일 리 없다고 생각해서 이별을 선택했을 테지만, 이별 이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소음을 제거한 후 찾아오는 침묵이야말로, 그토록 평온한 듯한 고요야말로 사랑의 소멸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질문들을 쏟아내고, 어떤 대답을 찾으면서 우리는 종종 나 자신이 여전히 사랑이라는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는 더 이상 나아갈 정류장도 없이, 종점에 정차해버린 버스 안에서 멍하니 앉아 중얼거리고 있다. 너는 도대체 언제 이 버스에 탔던 것일까. 너는 언제 이 버스에서 내렸던 것일까. 분명한 기억조차 없이 너는 나의 사랑에 올라탔고, 그리고 내려 버렸다. 시인의 말처럼, "나는 아직 나에게 돌아오지 못했는데?"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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