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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Dec 02. 2022

깊은 상처를 치유하려면 두터운 사랑이 필요하다

앞집에 개 한 마리가 왔다.

나는 동물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모습을 보고 어떤 품종인지 알만큼은 아니다.

그냥 고양이, 강아지, 개, 소처럼 일반 명사로만 부른다.


어쨌든 앞집에 개 한 마리가 왔다.

약 두 달 전부터, 문 열고 나가면 짖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마다 짖는다.

앞집 아주머니께서는 어쩌다가 개가 한 마리 오게 돼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아마, 얼마 전부터 함께 살기 시작한 딸이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아파트 안내 방송에서 층간소음에 관한 주의가 자주 나온다.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앞집에서는

"반려동물 짖는 소리"라는 부분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문을 열고 나서면 어김없이 짖는 개를 다그치는 목소리가 들리고는 한다.

 

오늘 하원하는 아들을 데리러 가려고 나섰다.

앞집 아주머님의 딸도 나왔다.

인사를 나누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개의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그냥 물어본 것이었는데, 다른 뜻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2살이라고 했다. 유기견이라고 말했다. 임시보호 중이라고 했다.

"너무 시끄럽고 불편하시죠? 만약 그러면 꼭 말씀하세요. 빨리 내 보내도록 할게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유기견이니까 사람이 얼마나 무서울지 이해가 된다고 했다.

그래도 앞집 아가씨는 계속 미안함을 전하며 불편하면 꼭 말하라고 한다.


아무래도 내가 개 짖는 소리에 항의하는 주민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

앞집 강아지가 짖을 때 다그치는 것이(사실 윽박지르는 것이)

그 녀석에게는 더 좋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으니 말이다.


시도 때도 없이 짖는 개라면 나도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했을 듯하다.

인기척이 들리지 않으면 짖지 않는다.

그저 사람이 무서울 뿐이다.

사람이 오면, 위험한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오면, 슬픈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무서워지지 않도록 해 주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자신과 함께 있는 몇몇 사람에게라도 충분히 사랑받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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