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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Dec 15. 2022

유년시절의 나

초등학교 6학년 때였을 거다. 여자 아이들과 다툼이 잦았던 것 같다. 조 아무개였나? 그 여자 아이와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다툼을 벌였고, 서로 책상을 밀치는 과격한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당시 여자아이들의 치마를 들추는 식의 장난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조용하고 착한 아이처럼 보였을 듯싶다(당시에는 말이다).


언젠가는 오 아무개라는 아이가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와 뺨을 때리고 간 일이 있었다. 정확한 이유도, 그 친구의 표정도, 나의 표정이나 말, 행동도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저항하지 않았고, 비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하고 우스운 일이기도 하다.


반드시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어야 한다고 믿던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이었던 것 같다. 반 친구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여자 아이를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나에게도 어김없이 그 질문이 돌아왔다. 나는 아무 이름이나 대야 할 것 같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어떤 여자 아이의 이름을 그냥 내질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이는 또래에 비해 성장이 빨랐고 공부도 잘했던 것 같다(집도 부자였나?). 사실, 그 아이와 친하지도 않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받고 싶지 않아, 그냥 그 이름을 내질렀다. 


그런데 당시 친했던 친구 녀석이 "용호는 아무개를 좋아한다!"라고 외치며 놀려댔고, 나에게 사실 여부를 자꾸 확인하려고 했다. 청소 시간이었는데, 창문을 닦고 있던 나는 그 친구 얼굴에 침을 뱉어 버렸다. 결국, 화장실로 갔고, 그 친구는 나를 치려고 했지만 치지 않았다. 운동을 굉장히 잘하던 엘리트 친구였기 때문에 맞았으면 뼈도 추리지 못했을 거다. 실제로 상당히 쫄(졸)았던(겁먹었던) 것 같은데, 그냥 제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얼굴에 침을 뱉다니. 나 스스로 사실이 아닌 사실(거짓 증언)을 말해 놓고, 내 말을 빌려 나를 놀리는 친구에게 거짓말로 괴롭힌다며 보복한 셈이었다.


더 어린 시절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여동생과 나, 그리고 한 살 어린 친구와 동생이 함께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친구의 동생이 내 동생을 놀렸나, 꼬집었나, 때렸나 해서 내 동생이 울었던 일이 있다. 나는 그 친구의 동생을 한 대 쥐어 박았(엉덩이를 걷어 찼나?)고, 부리나케 도망쳤다. 친구의 동생이 울었고, 동생 울음소리에 놀라 나에게 소리치던 그 친구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6학년 때다. 현우라는 친구가 있었다. 말썽도 많이 부리고, 싸움도 곧잘 하는 친구였던 것 같다. 한 번은 그 친구가 나를 놀렸다. 나는 그 친구를 똑같이 놀리고 욕했다. 그 친구가 화가 났는지 나에게 와서 주먹으로 턱을 날렸다. 나는 놀리고 욕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지만 주먹이 아팠는지, 아니면 그냥 바보였는지 그 친구에게 사과했다. 나중에 그 친구도 사과했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다. 급식소가 새로 지어졌고, 언덕 위에 있었던 급식소 담벼락은 좋은 놀이터였다. 사실, 급식소 담벼락이 맞는지, 아니면 폐교 수준의 학교가 아파트 단지 조성으로 인해 학생이 늘어나면서 만든 콘크리트 담벼락이었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아무튼 담벼락을 오르거나 뛰어내리는 장난을 치는 일이 잦았다. 승남이라는 친구가 담벼락에 올라갔는데, 나는 떨어지지 않게 도와주겠다며 그 친구의 발을 받쳐 주었다. 그 친구는 다급하게 비켜라 놔라 했지만, 듣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그 친구는 떨어지고 말았다. 어깨가 탈골됐고 수술까지 받았던 것 같다. 


조금 더 어린 시절에는 넓은 아파트로 이사와 기분이 좋았던 탓인지, 동생 팔을 잡고 썰매처럼 끌어주다가 너무 급히 당겨서 어깨뼈가 빠진 적도 있었다. 엄마에게 엄청 혼이 났던 용호다.


90년대 다이제스티브라는 과자가 있었다. 지금은 다이제라는 이름으로 팔린다. 당시 입이 큰 연예인 손지창 씨가 가로 세로로 과자를 집어넣는 광고가 인기였다. https://youtu.be/p3IIDcy11BI 따라 해 봤는데, 가로 세로 거뜬했다. 그걸 친구들 앞에서 보여줬고, 친구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신이 났던 기억이 있다. 개그맨 이홍렬 씨가 콧구멍에 동전을 집어넣고, 이경규 씨가 눈알을 굴리던 시절이었다. 아마, 소풍 가서 장기 자랑 할 때도 그걸 즉흥적으로 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나에게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렇게 먹어서는 안 된다"라고 몇 번이고 타이르셨다.


시골이었기 때문에, 소풍은 언제나 강가와 들판으로 갔다. 개울이나 계곡 같은 게 많았고, 친구들은 그곳에서 다이빙을 하거나 얕은 물은 빨리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했다. 수영도 못하고, 물을 무서워하던 나는 친구들을 따라 했다. 그런 친구들이 인기가 많았다고 생각했다. 신기해하고 놀라워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 한 번은 목적지로 이동하는 중에 바위 밑에 작은 샘처럼 고인 물이 있었고, 친구들이 그곳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했다. 나도 그들처럼 했다가 모래로 된 바닥을 디뎌 깊이 빠졌다. 하마터면 계속 빨려 들어갈 뻔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은 모든 행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거나,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에도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게 '보일까'를 생각한다. 그러면 결국, 그저 맞고 있어야 하고, 놀림을 당해야 한다. 그렇다고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해서도 곤란하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고, 위험에 빠뜨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참 일관성이 없다. 일관성이 있다면, 상당한 찌질이였다는 것 정도? 친구들을 놀리고 괴롭히다가, 놀림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했다. 그런데 그런 흐름은 당연한지 모른다. 지금은 어떨까, 여전히 누군가를 놀리다가 놀림을 당하고, 괴롭히다가 괴롭힘을 당하면서 살고 있다. 때로는(대체로) 비굴하게, 때로는 제정신이 아닌 듯 멋대로 까불다가 혼쭐나기도 하면서, 그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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