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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r 21. 2023

벚꽃 핀 거리에서 붕어빵을 사 들고 오는데

  집으로 향하는 길에 붕어빵 파는 게 보인다.

  벚꽃이 피는데도 붕어빵을 굽는구나 싶은 마음에 주차를 하고 지폐 두 장을 챙겨 내려갔다. 이천 원어치를 사면서 앞에서 했던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이상하죠?"라는 말에 "아뇨, 아뇨, 좋지요."라고 말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참 묘한 계절을 느끼면서 올라가는데, 단지 앞 정류장에서 한 할머님이 조심스레 묻는다.

  "전도서 한 번 읽어 보실래요?"

  아, 네. 대답하고 보니, 할머님 손에 작은 전도서와 일회용 마스크 하나가 들려 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전도서에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무시무시한 문구가 적혀 있다. 오른쪽에 염주를 두 개나 하고 있는 나는 지옥에나 갈 운명이구나 생각하니 섬뜩하다.

  종교가 없다고 하면서 어머니가 주신 염주와 직접 산 염주를 하고 다니는 꼴이 어쩐지 우습기도 하다. 십자가도 하나 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십자가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될 듯하다. 불교가 수련이라면, 기독교는 믿음이니까.

  전도서를 받아 든 이유는 "하나님"이나 "예수"를 향한 믿음 때문이라기보다, 이 종이를 모두 나눠주어야 일당을 받을 "할머님"을 위한 마음 때문이다. 만약 신앙심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로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 중에 아주 약은 사람이 있다면, 어딘가에 뭉텅이로 처분하고 일당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예수 믿으세요'나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가 아니라, "전도서 한 번 읽어 보실래요?"라는 말과 함께 조심스레 건네는 할머님의 모습이 내 마음에 큰 울림을 준다. 무엇 때문일까.

  어머니도 동네 공원에 공공근로를 다니신다. 정말 쓰레기가 없지만, 근무 시간을 채워야 해서 하릴없이 벤치나 정자에 앉아 시간을 죽여야 하는 경우가 많단다. 실제로 길을 가다 보면, 반도 못 찬 쓰레기봉투를 들고 길가에 걸터앉아 쉬는 분들을 보고는 했다. 어머니도 저런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주말에 부모님을 만나면, 혹자는 "노인네들이 일은 안 하고 놀기만 하면서 세금 받아간다"라고 비난하거나, 관공서에 신고할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시기도 했다. 씁쓸함이 느껴지지만.


  우리가 청장년층의 생계와 비전을 고민할 때, 노년은 더욱 심각하게 고립되고 생계 위협을 당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 땅의 가난한 박사학위자 가운데 한 명인 나도 우리 사회에 불만이 많지만, 그래도 나는 이러나저러나 아직 자동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고, 무슨 일이든 맡겨지면 할 수 있다. 그러나 노인에게는 설령 힘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변변한 기회가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고통을 안겨줄 가능성이 더 크다.

  노인 생계비를 책임지는 사회 시스템 정착되어야만 그 나라의 '나쁜 불평등'이 해소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노인 빈곤율이 특히 심각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좋은 불평등』).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익힐 수 없는 노인은 젊은 세대와 사회에 부담만 주는 존재처럼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인이 명예롭게 퇴진하고, 이른바 뒷방 늙은이로서 젊은이들의 삶을 가만히 지켜봐 줄 수 있으려면, 그만한 대우를 받음은 물론이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젊은 사람이 자신의 꿈을 펼치고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노인 복지를 위해 사회 재원을 사용하는 게 불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난한 노인이 많고,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갈취한 자식들이나 요양보호사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시대다. 모두가 잘 살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모두의 꿈도 활짝 펼 가능성이 커지지 않을까? 사회 구성원 한쪽이 지나치게 가난하다면, 우리는 모두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공을 던지고 있는 것일까?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쯤 그 할머님은 댁으로 가셨을까? 아니면 교회로 돌아가서 남은 전단지를 돌려주셨을까? 전단지를 어딘가에 모두 버리시지는 않았을까? 사실 중요하지 않다. 나는 예수님(하나님)을 믿지 않으므로 지옥에 떨어질 사람이다. 다만, 그 할머님의 일당만큼은 베풀어 주셨기를 바랄 뿐이다.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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