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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r 22. 2023

가지가지하면, 가지가 잘리지

  오전 10시에 수업이 있는 날이면, 아들의 유치원 등원을 함께 지켜본다.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고,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면서 배웅하면, 그날 아침은 어느 때보다 안정감 있다.


  출근을 위해 돌아오는 길, 조경을 위해 잘라냈을 법한 가지들이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잘린 가지를 보면 마음이 이상하다. 그런데 몇 개에는 새잎이 돋아 있었다. 나무로서는 억울하고 한 맺힐 법한 상황이 아닐까. 봄을 맞아 새 생명을 틔워내고 있는 중인데, 아랑곳없이 그것을 잘라내는 인간이라니. 그것도 분명 가로등이 가린다거나, 채광을 방해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을 것 같다. 따지 않은 감이 떨어져서 길이며 자동차가 더러워진다고 잘라낸 감나무처럼.


  문득, 우리가 자라온 과정을 상상해 본다. 우리는 자랄 수 있는 만큼 크게 자라서는 안 되는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살아오는 동안 잘려나갔을 수많은 가지와 그 가지에 매달린 꽃과 잎들. 우리 자신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이유로 잘린 가지도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하지만, 과연 그것을 내버려 두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참 가지가지 한다"라는 말이 이 땅에서 칭찬인 적은 내가 아는 한, 한번도 없었다. 애초에 그 말이 멀티플레이어를 가리키는 칭찬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참 여러 가지 일을 하시네요?"라는 말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해 방황하는 듯 보일 수 있지 않나. 불안정한 삶을 증명하는 듯이.


  아무튼 저 말을 들은 사람은 행동을 자제할 수밖에 없고, 어떤 말과 행동을 하고 싶을 때도 자기 검열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그런 말이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내 어린 아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때가 있다. 아차, 싶다가도 영특한 아들 녀석이, 지금도 그러듯이, 아빠의 잘못을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그때는 왜 그랬어요?"라고 다그쳐 주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집 어딘가에도 잘려나간 가지가 수북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것.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으로 스스로 잘라낸 가지들과, 나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며 억지로 잘라버린 그들의 가지들까지.


  그런 가지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룬다고 생각하면,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 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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