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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Jul 11. 2023

착지를 잘하는 곡예사가 살아남는다

  국민체조 처음 동작은 숨쉬기, 마지막 동작은 숨 고르기다. 숨쉬기는 팔을 앞으로 위로 올렸다가 옆으로 아래로 내리면서 숨을 쉰다. 숨 고르기는 팔을 수평으로 올렸다가 내리면서 호흡 한 번, 팔을 120도 남짓 올렸다가 내리면서 호흡 한 번을 한다. 동작을 하기 전 산소를 공급하고, 모든 동작을 마치면서 산소를 공급해 준다. 어릴 때도 사뭇 진지하게 숨을 쉬었던 기억이다. 


  기계체조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착지다. 뜀틀이든 철봉이든 평행봉이든, 아무리 멋진 연기를 선보였더라도 착지할 때 가장 긴장한다. 해설위원도 착지하는 순간에 몰입하며 격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착지가 아쉬웠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공중에서는 결코 실수할 수 없다. 넘어질 수도 기우뚱할 수도 없다. 그러나 땅에 발을 디딜 때에는 기우뚱할 수도 넘어질 수도 있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공중곡예보다, 착지하는 순간의 자세를 더 깊이 각인한다.


  어릴 적 그네를 뛰다가 뛰어내리는 놀이를 하고는 했다. 누가 더 멀리 착지하느냐를 가지고 승부를 겨루던 놀이다. 지금은 놀이터 안전 수칙을 따지는 분위기라 아이들이 잘 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스마트폰을 보느라 바쁘고, 맞벌이하는 부모가 늘어나면서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놀 수 있는 시간도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놀이터가 북적일만큼 아이들이 많지도 않다. 


  아무튼 다른 친구보다 더 멀리 착지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열심히 발을 굴렀다. 겁이 많은 친구들은 앉아서 발장구를 쳤지만, 용기가 대단한 친구들은 서서 무릎을 구르며 그네를 뛰었고, 그렇게 뛰어내리기도 했다. 다치는 친구도 많았다. 그때는 설령 넘어진다고 해도, 턱이 깨지고 팔꿈치가 까진다 해도 다른 친구보다 멀리 나아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든 우리는 여전히 그네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다른 친구들보다 더 멀리 가기 위해서 열심히 발을 구른다. 여전히, 나같이 겁이 많은 친구들은 앉아서 발을 구르고 있다. 그렇게 해서는 더 멀리 나아가지 못한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일어서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건 단순히 겁이 많아서가 아니다. 착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더 멀리 나는 것 자체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친구들보다 더 멀리 뛰는 것, 공중에서 0.5초도 안 되는 시간을 조금 더 머무르는 것, 1m 정도 더 뛰는 것은 결코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놀이터에서 다치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이 집으로 돌아감으로써 완성된다. 놀이터에서의 일이 무용담이 되기 위해서는 안전하게 착지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를 기다리던 엄마를 마주 보며 웃어야 하고, 엄마가 직접 요리했든 배달시켰든 차려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엄마, 있잖아 놀이터에서 내가 가장 멀리 날았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보다 빨리 달리기를 원한다. 높이 날기를 원하고, 그래서 더 멀리 날아가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들이 지나가는 모습만 찰나에 목격할 뿐이다. 그리고 부러워한다. 나도 저렇게 달려가고 싶다, 날고 싶다고. 


  그렇지만, 아주 멋지게 착지했거나, 아주 비참하게 추락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어디에, 어떻게 착지했는지를 확인하지 못한다. 


  겁이 많은 나는 앉아서 발을 구르는 정도였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발을 구르다가 그네에서 뛰어내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착지해도 행복했다. 또다시 차례가 돌아오면 그네에 앉아 발을 구르고 뛸 만큼 뛰었다. 친구들의 멋진 비행을 바라보면서 놀라면서 놀리면서 놀림 받으면서, 나는 행복했다. 니체를 몰랐음에도, 삶이 놀이라는 걸 알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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