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많은 그릇이 있다
어떻게 할 끼니― 답이 없는 인생
더 많은 그릇으로 차려내는 하루 한 끼
식탁에 일회용 그릇들이 부끄럽게 놓인다
그릇이 많은 날은 싱크대가 복잡하다
재기와 폐기의 갈림길에서
그릇마다 늘어놓는 고해성사
지옥과 천국의 경계를 허물 은혜로운 손길로
폭식의 상흔과 과식의 미련을 씻어내며
지난 그릇을 쓰다듬는다
고무장갑을 끼지 않은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어쩐지 물렁해지는 기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그릇들
나는 언제 즈음 이 그릇을 모두 비워낼 수 있을까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면서 지난 그릇에 물기를 닦아 제자리에 놓아둔다
나에게도 그릇이 많이 있다
나를 살 찌운 그릇들이 그윽하다